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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일 만에 모습 드러낸 세월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김병모 선임기자  |  kbm0505@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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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1  10: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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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을 비극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 비통한 참사는 304명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더 나아가 전 국민의 가슴 한 켠에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안겨줬다. 대다수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이 경악할만한 사고 그 자체가 아니다. 어쩌면 애초에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설령 사고가 났다 하더라도 신속한 조치와 적절한 대응으로 더 많은 인명을 구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의 분노다.

슬픔과 분노가 공존한 채 세월호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1000일하고도 73일이나 흘러서 말이다.

 

세월호 침몰에서 인양까지 그 1,080일간의 기록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군 병풍도 앞 해상에서 침몰해 476명의 탑승자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의 미수습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다. 특히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 학생 324명이 탑승해 학생들의 피해가 많았다.

세월호 침몰 사흘 후인 19일, 검경 합동수사본부(합수부)는 이준석 세월호 선장을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고 5월 열린 대통령 대국민담화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해양경찰청 해체를 발표했다. 11월 11일, 정부는 세월호 수색작업을 공식적으로 종료했고 탑승 476명, 172명 구조, 사망 295명, 실종 9명으로 최종 발표했다. 선체 수색작업이 종료됨에 따라 세월호는 선체 인양 단계로 넘어갔다.

침몰 371일만인 2015년 4월 22일, 정부는 세월호 인양을 공식적으로 결정했고, 해양수산부는 8월 4일 세월호 인양업체로 상하이샐비지컨소시엄을 최종 결정했다. 11월 12일 대법원은 이준석 세월호 선장을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나머지 14명의 선원 모두 징역형이 확정됐다.

2016년부터는 세월호 인양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인양업체로 선정된 상하이샐비지는 세월호를 인양하기 위해 선체 밑에 리프팅빔(받침대)을 설치해 끌어올리는 방식을 제시했다. 하지만 세월호 밑 지반이 단단해 선미 부분에 빔을 삽입하기 위한 공간이 부족했고, 결국 리프팅빔을 삽입하기 위한 굴착에 실패했다. 이에 상하이샐비지는 선체 늑골에 고리를 걸어서 선미를 살짝 들어 올린 뒤 리프팅빔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리프팅빔 설치가 완료된 후 상하이샐비지는 입찰과정에서 다른 업체들이 제시했던 재킹바지선과 반잠수식 선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인양 방식을 변경했다.

2017년 3월 7일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기상이 좋아지는 4~6월에 세월호 인양을 시작할 것’이라 발표했다. 19일에는 세월호 인양을 위한 최종 점검이 완료됐고, 22일 시범인양 시행 후 본인양에 돌입했다. 그리고 23일 수면에서 세월호 선체를 처음으로 관측할 수 있었다. 24일 세월호가 수면 위 13m까지 인양됐고 25일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 마린’ 호에 선적 후 31일 목포신항에 최종 도착했다.

 

인재인가, 사고인가

세월호 참사는 하나의 원인이 아닌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먼저 체계적이지 못한 한국의 안전 관리 문제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참사 당시 세월호는 무리한 화물적재와 증축으로 논란이 됐었다. 검경의 조사 결과, 세월호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무게는 987톤이었지만, 사고 당시의 세월호에는 철근 등 약 2,142톤의 화물이 실려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골든타임을 허비하기도 했다. 세월호는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가 아닌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로 최초 신고해 대응시간을 허비했고, 심지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는 세월호가 관할 해역에 진입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출동한 해경도 선내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었음에도 내부로 진입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또한 선장을 비롯한 몇몇 승무원의 무책임함이 사건을 더욱 크게 키웠다. 사고 이후 세월호는 탑승객에게 ‘객실 안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배 밖으로 나와 제일 먼저 구조됐다. 순직한 승무원이 지속적으로 퇴선 명령 여부를 조타실에 문의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세월호 사고 관련 대책본부가 10여 개에 달하는 등 통일된 대책본부가 구성되지 않았다. 침몰 직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공지를 하거나 대책본부의 장이 결정되지 않는 등 혼란이 극에 달했다. 또한, 모든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개하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필요한 대형참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의혹만을 키웠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정부의 대처로 네티즌 자로의 ‘괴물체 충돌설’이나 미군 잠수정 충돌 등 다양한 음모론이 언론 보도를 타기도 했다.

 

해경 해체 3년, 부활의 움직임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해경은 해체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약 한 달 후인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해경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이어 “수사 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해양구조 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국가안전처가 맡는다”고 밝혔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해경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긴 했지만 해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실제로 바뀐 점은 해양경찰에서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정식 명칭이 변경됐다는 점이다. 또한 해양수산부의 외청이었던 과거와 달리 신설된 국민안전처의 하부조직으로 변경돼 중앙행정기관의 지위를 상실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해경 해체 발언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실제로 담화 발표 직전인 5월 17일과 18일 이틀간 열린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도 이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해경에서 ‘해경 구조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개혁안을 내놓았다고 전해진다.

해경 해체 이후 2014년 752명이던 해경 수사ㆍ정보 인력은 올해 314명으로 줄었고, 2013년 5만 718건에 이르던 해상범죄 검거 건수는 2015년 2만 7,031건으로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우리 고속단정을 침몰시킨 사건도 발생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해경 해체가 ‘대통령 파면’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여러 정치인도 해경 부활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시점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안전처에서 소방방재청과 해경을 독립시켜 각각 육상과 해상의 재난을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당의 안희정 충남지사는 “해경 조직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으나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해경 부활을 통해 해경의 독립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유승민 후보는 “해경은 문책을 엄격히 하되 조직 해체가 아니라 더 강화했어야 한다”며 “재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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