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남상(濫觴), 민산(岷山)의 물이 장강(長江)을 이루듯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5.20  11:51:4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이번 고사성어는 술잔을 띄울 정도의, 또는 술잔에 넘칠 정도로 적은 양의 물을 뜻하는 ‘남상(濫觴)’이다. 어떤 일의 시작을 가리키는 말인데, 『순자(荀子)』「자도(子道)」편에 실린 공자와 그의 제자 자로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외양보다는 내실에 치중해야 한다는 교훈에 대해 생각해보자.

‘남상(濫觴)’의 ‘남(濫)’은 ‘띄우다’ 또는 ‘넘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상(觴)’은 술잔을 가리킨다. 따라서 ‘남상’은 ‘술잔을 띄우다’, ‘술잔에 넘치다’라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술잔을 띄울 정도의, 또는 술잔에 넘칠 정도로 적은 양의 물을 뜻하는데, 어떤 일의 처음이나 시작을 가리키는 말이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양의 물이었는데 그 물이 흐르고 흘러 하류에 이르면 거대한 강을 이루고 그 위에 배를 띄울 수 있으니, ‘넘칠 정도’보다는 ‘띄울 정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이 말은 공자와 그의 제자 자로(子路)의 대화에서 유래했다.『순자(荀子)』「자도(子道)」편과 『공자가어(孔子家語)』 「삼서(三恕)」편에 실려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순자』에 실린 내용이 좀 더 자세하다. 원문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자.

자로가 옷을 잘 차려입고 공자를 만나 뵀다. 공자가 말하기를 “유(由)야! 이렇듯 성대하게 차려 입은 것은 어째서이냐? 옛날 장강(長江)의 물이 민산(岷山)에서 나왔는데, 그 처음 흘러나올 때의 수원(水源)은 술잔을 띄울 정도였다. 그러나 저 강나루에 내려와서는 배를 타지 않고 또 바람을 피하지 않고서는 건너지 못하니, 이는 하류의 물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지금 네가 옷을 이렇게 성대하게 차려 입고 얼굴에 뽐내는 기색이 넘친다면 천하에 또 누가 너에게 잘못되었다고 충고해주려 하겠느냐?”라고 했다. 자로가 종종걸음으로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들어갔는데 안색이 태연했다. 그랬더니 공자가 다시 말했다. “유야! 기억해 두어라. 내가 너에게 말해주마. 말을 신중히 하는 자는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행동을 신중히 하는 자는 자랑하지 않는다. 아는 척하고 유능한 체하는 자는 소인(小人)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니 이것이 말의 요체이다. 능한 것을 능하다 하고 능하지 못한 것을 능하지 못하다 하니 이것이 행동의 지극함이다. 말함에 요체가 있으면 지혜로운〔知〕것이요, 행동함에 지극함이 있다면 어진〔仁〕것이다. 이미 지혜롭고 어질다면 어찌 부족함이 있겠는가!”

이 이야기가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추측컨대 아마도 자로가 공자의 제자로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이거나 혹은 벼슬을 시작한 초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자로가 성복(盛服), 즉 옷을 잘 차려입고서 공자를 뵈러 왔다. 왜 옷을 잘 차려 입었을까. 공자의 문하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그랬다면 스승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을 수 있다. 혹 벼슬을 시작한 초기에 그랬다면 좀 더 폼 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어쨌거나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하는 즈음에 옷부터 신경 쓴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좀 더 잘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자로의 이름이 ‘중유(仲由)’이기 때문에 공자는 그를 ‘유(由)’라고 불렀다. 공자는 유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옷을 차려입고 왔느냐? 그리고는 장강(長江)의 물 이야기를 한다. 장강은 양자강(揚子江)의 다른 이름이다. 그 수원지(水源地)는 민산인데, 처음에 민산에서 물이 흘려 내려올 때 그 물의 양은 겨우 술잔을 띄울 정도의 적은 양의 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물이 흐르고 흘러 나루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면 거대한 강이 된다. 배를 띄우지 않으면 건널 수 없고 바람을 피하지 않으면 배가 뒤집힐 수도 있는 그런 거대한 강물. 그런데 그 시작은 겨우 술잔을 띄울 정도의 졸졸졸 흐르는 보잘것없는 물이었다. 공부를 시작하는 지금, 또는 벼슬을 처음 시작하는 이때에 그렇게 화려하게 차려입고 잘난체하는 얼굴로 다닌다면, 네가 혹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누가 기꺼이 그것을 알려주고 간언하려 하겠느냐.

자로는 공자의 말뜻을 금방 알아차렸고, 걸음을 재촉하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원래 입던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들어갔다. 안색이 태연했다는 것은 공자의 말에 당황하거나 화가 난 기색이 전혀 없었음을 보여준다. 스승의 말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다. 제자로서 자로의 훌륭한 자질은 이런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공자는 자로에게 “기억해 두어라! 내가 너에게 말해주마” 하면서 좀 더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준다. 말을 신중히 하는 자는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다. 행동을 신중히 하는 자는 자랑하지 않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말이 많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은 말에 신중하지 않은 사람이고, 입만 열면 자기 자랑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행동이 신중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실제 지혜롭지도 유능하지도 않으며 다만 그런 척할 뿐이다. 공자는 그런 자들을 ‘소인’이라고 단정했다. 도량이 좁고 간사하며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대체로 ‘소인’이라 부른다. 소인의 반대는 ‘군자’이다. 군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또 자기 능력이 미치는 범위의 일이면 할 수 있다고 하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솔직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쉬운 일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몰라도 아는 척, 능력 밖의 일이어도 할 수 있는 척, 없어도 있는 척 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중에 ‘있어빌리티’라는 말이 있다. ‘있다’와 ‘어빌리티(ability)’의 합성어로,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이란다.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인데,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아는 척, 있는 척 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돼 버렸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니 아마 공자와 자로가 살던 시대에도 이렇게 ‘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그런 사람을 못난 사람, 소인이라고 했다.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 즉 ‘군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능력이 미치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나이를 막론하고, 상하에 관계없이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세, 즉 ‘불치하문(不恥下問)’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말에 신중한 사람은 요란스럽게 떠들지 않고, 행동에 신중한 사람은 쓸데없는 자랑을 늘어놓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말과 행동을 보여줄 뿐이다. 이것을 공자는 말의 핵심이고 행동의 지극함이라 했고, 그것 자체를 ‘지(知)’와 ‘인(仁)’이라고 했다. 이 두 가지를 갖췄다면 그는 인격적인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외양보다는 내실(內實)에 치중하고, 허영심이나 과시욕 같은 겉치레는 처음부터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마음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커져서 결국 너를 삼키고 너를 망치게 될 것이다. 공자가 ‘남상’의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이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은 지 열흘 남짓 됐다. 자못 기대가 된다. 지난 몇 년간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왜 공자가 ‘겉치레’에 치중하는 사람을 그토록 경계했는지 알겠다. ‘의전(儀典)’만을 그렇게도 중시했다던 그 사람. 그녀가 평소에 보여준 삶의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의 진정성에 왜 좀 더 주목해야 했는지 알겠다. 그 모든 것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 그 ‘남상’이었기 때문이다.

/강지희(교양기초교육대·강사)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30년 만에 이뤄지는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 열려
2
한림과학원, ‘정인재 교수 초청’ 수요세미나 개최
3
강의보충기간을 설명해드립니다
4
음식물쓰레기 배출, 이렇게 하세요!
5
춤바람난 춤바람
6
하반기 취업성공패키지 참가자 모집
7
교내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세요
8
학생생활관으로 ‘와라!’ 제60회 열림제 개최
9
창업과 사회공헌활동 접목한 위드사람컴퍼니 한승후 대표를 만나다
10
“우리 아이들은 혐오 시설이 아닙니다”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학생복지관 9315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주(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