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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지추(囊中之錐), 드러나지 않았던 진짜 인재(人才)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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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7  1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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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사성어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이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송곳은 그 존재를 아무리 숨기려 해도 끝이 뾰족한 탓에 밖으로 비어져 나오게 마련인데, 그처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 실린 일화를 통해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보자.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이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송곳은 그 존재를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끝이 뾰족한 탓에 밖으로 비어져 나오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을 보면 그 반대의 상황에서 이 말이 생겨났다. 평원군의 식객이었던 모수(毛遂)는 훌륭한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을 추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마천의 기록을 읽어보자.

평원군 조승(趙勝)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공자였다. 공자(公子)는 제후의 자제를 뜻하는 말이다. 그는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이었고 산동성(山東省) 평원현(平原縣) 지역에 봉해졌으므로 ‘평원군’이라 불렸다. 여러 공자들 중에서 조승이 가장 어질고 빈객을 좋아하여 그 문하에 모여든 식객이 대략 수천 명이나 됐다고 한다. 평원군은 조나라 혜문왕과 효성왕(孝成王)의 재상으로 있었는데, 세 차례나 재상 자리를 떠났다가 세 차례 다시 재상 자리에 올랐다. 재상 자리에 세 번이나 오르고 그 밑에 모여든 빈객이 수천이라 했으니, 평원군은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평원군의 문하에 있던 모수는 수천 명의 식객들 중 한 사람일 뿐이었고, 평원군은 애초에 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평원군이 모수를 알아보게 된 데에는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당시 힘이 막강했던 진(秦)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했다. 위기상황을 맞은 조나라는 평원군을 보내 초(楚)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동맹을 맺도록 했다. 평원군은 문하의 식객들 중에서 용기와 힘이 있고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람 스무 명을 뽑아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평원군은 열아홉 명을 선발했지만, 나머지 한 명은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스무 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식객으로 있던 모수가 앞으로 나서서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며 평원군에게 말했다.

“당신은 초나라와 합종 맹약을 맺기 위하여 문하의 식객 스무 명과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사람을밖에서 찾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자라니, 저를 그 일행에 끼워 주십시오.” 참으로 당돌하다. 겸양이 미덕인 시대에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이렇게 나선다는 것은 당시 매우 드문 일이었을 터. 평원군도 놀랐는지 모수에게 대뜸 묻는다. “선생은 내 빈객으로 있은 지 몇 해나 되었소?” “3년 됐습니다.”

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훌륭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빈객으로 3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나 또한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것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만일 내가 모수라면,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어떨까. 기가 죽을 만하다. 평원군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신과 그 주위 사람들이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평원군이 모수에 대해 내린 결론, ‘당신은 재능이 없다’고 한 말은 옳았을까. 모수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저는 오늘에서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 더 일찍이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송곳 끝뿐만 아니라 그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마침내 평원군은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이미 뽑힌 열아홉 명은 모수를 업신여겨 서로 눈짓하며 비웃었으나 입 밖으로 그런 마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모수는 초나라에 가는 동안 그 열아홉 명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들이 모두 탄복했다.

평원군은 초왕(楚王)을 만나, 합종을 할 경우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초왕은 망설였다. 논의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했는데 해가 중천에 이를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열아홉 명의 빈객이 모수에게 말했다. “선생이 당(堂) 위로 올라가시오.”

모수는 칼자루를 잡은 채 계단을 뛰어올라 평원군에게 말했다. “합종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에 대해서는 두 마디면 결정되는데, 해가 뜰 무렵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한낮이 되도록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초왕이 평원군에게 물었다. “저 손님은 누구입니까?” 평원군이 답했다. “저 사람은 저의 사인(舍人 귀족의 측근이나 하인에 대한 통칭)입니다.” 초왕은 큰 소리로 모수를 꾸짖었다. “썩 내려가시오. 나는 그대의 주인과 이야기하는 중인데, 이게 무슨 짓이오?”

모수는 칼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왕께서 저를 꾸짖는 것은 초나라 병사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왕께서는 열 걸음 안에서 초나라 병사가 많은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왕의 목숨은 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이 말을 듣고 초왕은 식겁했을 것이다. 모수가 지금 칼을 쥐고서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은나라 탕왕은 70리의 땅을 가지고 천하의 왕이 되었고, 주나라 문왕은 100리의 땅을 가지고 제후를 신하로 삼았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병사가 많았기 때문이겠습니까? 정녕 세력에 의지하여 그 위엄을 떨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초나라 땅은 사방 5,000리이고, 창을 가진 병사가 백만이나 됩니다. 이것은 천하의 우두머리로서 왕이 될 수 있는 바탕입니다. 천하에 초나라의 강대함에 맞설 만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진나라 장군 백기와 같이 형편없는 자가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와 한번 싸워 언과 영을 빼앗고, 두 번 싸워서 이릉(夷陵 초나라 선왕의 능묘)을 불사르고, 세 번 싸워서 왕의 조상을 욕보였습니다. 이것은 초나라에게는 백 대가 지나도록 잊을 수 없는 원통한 일이며, 조나라에서도 초나라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이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계십니다.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일이지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초왕은 그의 말에 수긍하고 합종을 결정했다.

조나라로 돌아온 평원군은 부끄러웠을 것이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를 고른 수는 많다면 천 명이 될 것이고,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 모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하였다.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백만 명의 군사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그리고는 마침내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평원군 일행이 떠난 즉시 초왕은 구원병을 급파했고, 진나라는 초나라의 구원병이 온다는 말을 듣자 미리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버렸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능력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평원군 같이 어질고 안목이 있는 사람도 모수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훌륭한 인재가 꼭 ‘낭중지추’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때로는 모수처럼 스스로 나서는 용기도 필요하겠다. 무엇보다 그의 재능은 군사력(武)이 아닌 외교력(文)으로 전쟁을 막은 데서 드러났다. 스스로를 추천한 후에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면 ‘모수자천(毛遂自薦)’이란 말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강지희(교양기초교육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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