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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침류(漱石枕流), 과도한 자존심의 자기 함정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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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3  10: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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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사성어는 돌로 양치질하고 시냇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의 수석침류(漱石枕流)이다. 말도 안 되는 근거를 끌어다 대며 억지 주장을 한다는 의미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배조(排調)」 편에 실린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실수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과, 견강부회를 통한 자기합리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말이 있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이치에 닿도록 하는 것을 이른다. 어떤 주장을 펼치거나 논문을 쓸 때 주의해야 할 점으로 흔히 ‘논리의 비약’과 더불어 ‘견강부회’가 꼽힌다. 말도 안 되는 근거를 끌어다 대며 억지 주장을 한다는 것인데, 그런 경우의 좋은 예가 ‘수석침류(漱石枕流)’이다. 돌로 양치질하고 시냇물을 베개로 삼는다니, 얼핏 들어도 맞지 않는 이야기다. ‘침석수류(枕石漱流)’, 즉 돌을 베개로 삼고 흐르는 물에 이를 닦는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수석침류’라고 했을까? 진(晉)나라 손초(孫楚)가 이 말을 한 경위는 『세설신어(世說新語)』「배조(排調)」편에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돼 있다.

손자형(孫子荊)은 젊어서부터 은둔할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한번은 왕무자(王武子)에게 “당침석수류(當枕石漱流: 마땅히 돌을 베개로 삼고 흐르는 물에 이를 닦아야 할 것이다. 은거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라고 해야 할 것을 “수석침류(漱石枕流)”라고 잘못 말했다. 왕무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흐르는 물은 베개로 삼을 수 없고, 돌로는 양치를 할 수 없네.” 그러자 손자형이 대꾸했다.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것은 귀를 닦기 위함이요, 돌로 이를 닦는다 함은 이를 갈고 싶어서이다!”

‘자형(子荊)’은 손초의 자(字)이고, 왕무자는 그의 친구인 왕제(王濟)를 말한다. 왕제는 황제의 사위로 구경(九卿 장관)을 지낸 최고의 귀족이었다.『세설신어』의 다른 기록과 『진서(晉書)』 「손초전」을 보면 손초의 위인(爲人)됨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의 부친과 조부는 상당한 고관에 이르렀고, 손초 역시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성품이 강직하고 고집불통인 탓에 사람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젊은 시절엔 ‘광부(狂夫 미친놈)’로 자처하며 속세를 떠난 은자처럼 살았고, 마흔 살이 돼서야 벼슬길에 나아갔다. 당시 사람들 눈에는 상당히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쳤을 듯하다. 이런 손초의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문재(文才)를 잘 알고 있던 사람이 바로 친구인 왕제였다.

당시는 과거제가 생기기 이전이어서, 향리(鄕里)의 인물평판을 근거로 관리를 등용하던 때였다. 왕제가 인사책임자가 됐을 때, 인재 등용관이었던 대중정(大中正)이 손초의 품장(品狀 향리의 인물평판)을 작성하려 했다. 그러자 왕제가 말했다. “손초는 향리의 평판으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람이니, 내가 직접 짓겠다.” 그리고는 ‘영특한 천재, 발군의 재주.(天才英特, 亮拔不群)’라고 썼는데, 그 덕에 손초는 지방장관의 직을 얻을 수 있었다.

‘수석침류’의 고사는 손초가 젊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은자의 생활을 동경하던 그는 자연 속에 살고 싶다는 희망을 왕제에게 이야기하면서 ‘침석수류’를 ‘수석침류’라고 잘못 말했다. 명민했던 손초가 은거하는 삶을 ‘침석수류’로 표현해야 함을 몰랐을 리 없다. 듣고 있던 왕제는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인가? 흐르는 물은 베개로 삼을 수 없고, 돌로는 양치질을 할 수 없다네.” 정확한 지적이었지만 손초는 자신의 말을 바꾸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아니야. 내가 애초에 하고 싶은 말이 ‘수석침류’였다고!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것은 귀를 닦기 위해서이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것은 이를 갈고 싶다는 뜻일세!” 이 말에서 ‘침류(枕流)’의 의미를 좀 더 따져보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

중국 고대의 은사(隱士) 중에 소보(巢父)와 허유(許由)라는 이가 있었다.(사람 이름에 들어간 ‘父’는 ‘부’가 아닌 ‘보’로 읽는다) 당시 성천자(聖天子)라고 추앙 받던 요(堯) 임금이 노쇠해 후임자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소보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천하를 그에게 넘겨주려 했다. 그러나 소보는 거절했다. 이에 요 임금은 허유를 구주(九州 중국 전역을 가리킴)의 장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허유는 기산(箕山)의 깊은 골로 숨어버렸고, 그것만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며 영수(穎水)라는 강가로 가서 귀를 씻었다.(지금도 ‘세이(洗耳)’ 즉 ‘귀를 씻는다’는 표현을 종종 들을 수 있는데,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들었거나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어야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때 마침 소보가 송아지를 끌고 와 그곳에서 물을 먹이려다가 귀를 씻고 있는 허유를 보았다. “자네,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귀를 씻고 있는 중일세.” “왜 귀를 씻는가?” “나더러 왕이 되라고 했단 말이야!” 소보는 허유의 이 말을 듣고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자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구먼. 이런 것도 다 남들 보라고 하는 거 아닌가.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이런 행동도 다 옳지 못한 것이야! 자네가 여기에서 귀를 씻었으니 송아지가 이 물을 먹으면 그 입이 더러워지겠군.” 말을 마친 그는 송아지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그곳에서 물을 먹였다.

소보와 허유는 모두 세속의 부와 명예, 권력 등을 뜬구름처럼 여겼던 사람들이다. 특히 소보는 귀를 씻은 허유의 행동조차도 명예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자신의 송아지가 그 귀 씻은 물을 먹을까봐 상류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했다.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이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찾아보기도 힘들 뿐 아니라 이해할 수도 없는 인물들이다. 그만큼 그들이 살던 시대는, 사람들은 욕심이 없고 임금은 성군(聖君)의 모범이었던, ‘태평성대’, ‘순수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허유와 소보의 고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시냇물을 베개 삼는다’는 말에 대한 손초의 설명을 단박에 알아들었을 터이다. 왕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을 했을 것 같다. 물론 억지로 근거를 끌어다 댄 것이지만, 굳이 이해하려 들면 못할 것도 없다. 손초 자신이 은둔자로 살아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를 관직에 추천한다거나, 임금이 벼슬을 내린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도 허유처럼 강에 가서 귀를 씻을 거라는 의도로 한 말일테다. 그런데 문제는 ‘수석(漱石)’ 즉 ‘돌로 양치질 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근거로 가져올 고사가 없다는 것이다. 치아를 돌에 갈다니, 누가 들어도 갸우뚱할 말이다. 손초는 재치와 순발력으로 자신의 말실수를 덮으려 했지만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 셈이다. 그런데 ‘수석’이 설명되지 않으니 ‘침류’에 대한 설명도 어설프게 되고 말았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손초의 성격만 더욱 도드라졌을 뿐이다. “내가 말을 잘못 했네. 자네 말이 옳아. ‘침석수류’라고 해야 할 것을 ‘수석침류’라고 했구먼. 허허.” 애초부터 이렇게 시인했다면 서로 웃고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상대방에게 지기 싫어서 구차한 설명을 하다 보니 손초의 ‘수석침류’는 ‘견강부회’의 대표적인 예로 남고 말았다.

손초도 느끼지 않았겠는가. 언어의 논리로는 상대방을 이겼을지 몰라도, 상식의 논리로는 그 자신이 패했다는 것을. 그런데 이런 말실수는 사실 사소한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말을 해야 하는 지식인, 정치인, 사회지도층의 인사라면 이런 태도에 대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은 ‘집단지성’과 충돌하기 마련이고, 그ㅈ런 기만적인 행태는 결국 역사가 기억하고 심판하기 때문이다. 실수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사과하는 태도는 상호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한다. 그러나 견강부회를 통한 자기합리화는 상대방에게 용납되기도 어렵고 실망과 불신만을 초래할 뿐이다.

/강지희(교양기초교육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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