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깃밥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에게 있어 매우 크고 애틋하다. 밥 한 공기가 그러하고 고봉밥이 그러하며 이밥이 그러하다. 고봉밥이란 산봉우리처럼 높게 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또한 이밥은 북한에서 부르는 흰쌀밥을 뜻한다. 북한의 초대 국가 주석인 김일성이 한국과 한창 체제 경쟁을 벌일 당시, 북조선의 모든 인민들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유명해진 단어다. 한국인들 중에는 빈곤에 허덕이던 이들이 김일성의 사탕발림에 속아 월북을 한 경우도 종종 있었을 정도로 호소력이 강했던 체재 선전 구호였다. 물론, 그러한 김일성의 바람은 지금껏 이뤄지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한 공기 밥그릇이 마음 속의 양식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이웃나라 일본에선 밥 한 덩이에 김 한 장 달랑 붙인 주먹밥, ‘오니기리’가 이른바 ‘소울 푸드’다. 2006년 일본에서 개봉된 ‘카모메 식당’에서는 그런 일본식 소울 푸드에 대한 이야기를 핀란드 헬싱키의 한 일식 식당에서 풀어내고 있다.

일본의 구전 동화에서도 ‘오니기리’는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주먹밥 데굴데굴’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주먹밥 동화에서는 나무를 베러간 노인이 점심으로 가져간 주먹밥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행운을 얻게 되는 스토리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비탈길을 따라 굴러 내리던 주먹밥은 어느 나무 아래의 구멍에 쏙 빠졌고 이를 꺼내려 애쓰던 노인 역시, 구멍 속으로 함께 빠진다. 구멍 속에서 흰 쥐들이 주먹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본 노인은 자신의 점심을 쥐들에게 양보하고 이에 쥐들은 노인에게 답례로 조그마한 장롱을 선물한다. 그 다음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전개. 장롱을 집에 들고 온 노인이 장롱을 열자 금은 보화를 얻게 되고 이를 시샘한 이웃집 노인이 똑같이 주먹밥을 굴려 쥐로부터 장롱을 빼앗아 오지만 결국, 장롱 안에서는 고약한 도깨비만 잔뜩 튀어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네 공기밥과 일본인들의 주먹밥에 해당하는 서양의 소울 푸드로는 무엇을 꼽아볼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독일인들과 아일랜드인들에게 있어서는 감자가 아닐까 싶다. 전통적으로 감자가 주식이었던 이들 양국에서는 19세기 중반과 후반에 각각 감자 대기근을 겪게 되자 대규모로 미국 이민을 감행한다. 감자는 오늘날까지도 이들 국가에서 소세지, 맥주와 함께 가장 널리 소비되는 대표적 먹거리인 동시에 배 곯던 시절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프랑스에서의 소울 푸드는 닭이라는 것. 영국과의 100년 전쟁 이후, 프랑스의 경제가 피폐하고 백성들이 굶주리자 국왕 앙리 4세가 전 국민들이 주말마다 닭 요리를 식탁에 올릴 수 있도록 농가 살리기 장려 정책을 편 까닭에서다. 앙리 4세의 이 같은 복지 정책에 힘입어 프랑스의 생활 경제는 급속도로 좋아졌고 이후, 프랑스에서 닭은 북한에서의 이밥에 고깃국 같은 소울 푸드가 됐다. 해서 지금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닭이다. 영국과의 독립 전쟁 당시 그런 프랑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서일까? 미국 역시,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이 되면 커다란 칠면조를 구어 온 가족이 함께 먹는다.
각설하고 지난 시간에 소개했던 대로 벼 문화의 시조 국가인 중국에서 쌀과 밥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예를 들어, 「논어」 옹야에서는 공자의 수제자 안회가 하루 종일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만 마실 정도로 곤궁할지언정 흔들리지 않고 어짊을 실천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다. 공자의 과격했던 제자, 자로 역시 자신은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100리 밖에서 쌀을 지고 와 어머니를 봉양했으며 「대학」과 「효경」의 저자로 알려진 증삼은 몸소 농사를 지었다.

한편, 문학사에 있어 벼와 쌀을 거론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 미국 소설가, 펄 벅의 「대지」다. 가난한 농사꾼이었다가 신해혁명의 와중에서 극적으로 재산을 모아 대지주가 되는 주인공 왕룽, 그리고 그 일가의 역사를 그린 「대지」는 총 3부작의 대작이다. 농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빈농 왕룽이 홍수와 가뭄, 메뚜기의 내습 등 온갖 천재를 겪으며 폭동과 사변, 혁명과 전쟁이 소용돌이치는 격동의 중국 대륙에서 끝까지 삶의 터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선교사의 딸로 생후 3개월 만에 중국으로 이주했던 펄 벅은 중국 농민들의 고난과 고초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인물로 어느 서양인보다 중국 농민들을 깊이 이해했던 이. 그런 그녀의 「대지」는 발간과 동시에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후 펄 벅에게 여성 작가 최초의 노벨문학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필자 역시, 유년 시절 접했던 책과 영화에서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은 메뚜기 떼가 수확철의 대지를 덮치자 농민들이 자신들의 논과 밭을 지키려고 불을 지피고 그물을 휘두르며 악전고투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국 문학사로 눈을 돌려보면 채만식의 「논」이 유명하다. 20마지기로 충분한 논을 가지고 있었던 한생원은 아버지 한태수가 동학교도로 몰리자 그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을 원님에게 13마지기의 논을 갖다 바친다. 이후 7마지기의 논만으로는 도저히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없게 되자 일본인에게 시세의 곱절을 주고 모두 넘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비아냥 속에 논을 팔아버렸다는 죄책감으로 “일본인들이 쫓겨나면 내 논을 되찾을 수 있다”라며 허세를 떨고 다닌다. 그러는 와중에 가세는 더욱 기울어서 종국에는 남의 논을 일구고 밥을 얻어 먹는 소작농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광복이 되어 자신의 논을 찾으려 하자 자신의 논을 샀던 일본인이 다른 한국인에게 그 논을 팔았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독립됐다구 했을 제, 내, 만세 안 부르기, 잘했지”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그렇게 해방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할 수밖에 없었던 소작농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쯤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도대체 한 마지기의 땅은 얼마 정도의 크기일까? 인터넷을 통해 알아 보니, 지역에 따라 150평에서부터 300평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 비록 지방마다 그 크기가 들쭉날쭉 하긴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한 마지기의 논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은 한 섬이라는 것. 참고로, 한 섬은 성인 1명이 일 년 간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 마지기에서 생산되는 쌀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역사를 통해 조선 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니 세종 때에는 300평 땅에서 63.kg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다섯 평에서 1kg, 한 평에선 0.2kg 정도가 생산되었던 셈이다. 하지만 농사 기법이 발달한 21세기 현재는 한 평에서 2kg 정도 생산되고 있다. 300평을 기준으로 보자면 600kg으로 80kg들이 쌀 가마가 일곱 개 이상 나오는 엄청난 양인 것이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쌀이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는 물론, 국가의 흥망까지 좌지우지했던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심훈(언론방송융합미디어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