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특검 조사를 받을 당시, 조사관은 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여 탕수육을 시켜주겠다고 했지만, 이 부회장이 제안을 거절하고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는 기사를 봤다. 이에 언론은 ‘적응왕 이재용’ 이라는 제목을 달아 마치 이 부회장이 탕수육 대신 짜장면을 먹은 것이 대단한 일인 양 떠들었다. 이 사례는 사람의 가치가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해 도덕적 가치를 이야기하며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일단 감정에 호소하는 반론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이 책의 저자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에 대해 의심한다. 그가 사람의 가치에 관해 던지는 의문은 이렇다. “대기업 CEO와 일반 근로자는 정말로 그들의 연봉 차이만큼의 가치 차이가 있는가?” 미국의 경우 대기업 CEO의 연봉이 평균적으로 일반 근로자의 200배를 훌쩍 넘는 일이 많다. 그렇다면, 대기업 CEO와 일반 근로자는 200배 만큼의 능력 차이가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로버트 라이시는 말 한다.저자 로버트 라이시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으로 일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을 맡은 경험이 있다. 게다가 이미 4권 이상의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 책을 써낸 저자이기도 하다.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2016)는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다. 그러나 이전 책들에서도 본질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해온 듯 보인다. 이 책은 지금까지 연구해 온 결과를 좀더 완성도 있게 써내려고 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 책은 크게 1부, 2부, 3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선 시장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에 관해 설명한다. 개념 설명에 책의 3분의 1 정도를 할애하는 것으로 봐서 경제 비전문가들을 주요 독자로 생각하고 책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핵심개념부터 설명하기 때문에 경제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 있다. 2부에선 현재 미국 자본주의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사회 통념이 된 실력주의, 월스트리트의 속임수, 비근로 부유층의 부상 등이 주요 주제다. 이 부분에선 실제 사례를 아주 많이 제시한다. 하지만 모두 미국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 독자로서는 모든 내용을 공감하고 이해하기는 힘들 수도 있는 대목이다. 3부는 총정리 및 저자의 해결법이 담겨있다. 3부에선 결론부답게 메시지를 명확하고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내용의 핵심은 모두 3부에 담겨있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노동조합, 대항적세력, 중산층, 부자증세, 복지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대항적 세력을 키워서 중산층을 살리고, 최상위 계층이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현재 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는 ‘대항적 세력’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 ‘노동조합’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문제해결 방안으로는 부자 증세, 최저소득 지급, 특허권 혹은 저작권의 보호 기간 단축 등을 주장한다.이 책은 그래프나 통계자료의 활용이 두드러지는데, 이를 바탕으로 실제 기업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이 한 해 로비자금으로 쓴 돈과 알게 모르게 받은 정치적 혜택들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저자는 대기업이 어떤 방법으로 시장을 독점하고 그 부담이 서민들에게 돌아가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발한다. 결국, 기업은 독점과 로비를 통해 경제적인 힘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힘까지 얻게 되는데, 이는 최상위층 계층이 시장을 구성하는 규칙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게 한다. 이 사실에 근거해서 저자는 “‘시장’이냐 ‘정부’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 한다. 정부나 시장의 확대 또는 축소 대신 그는 ‘규칙을 정하는 주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거듭 반복한다. 정부의 규칙 없이는 애초에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며, 중요한 사실은 시장을 구성하는 규칙이 소수의 사람이 유리한 방향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가장 큰 이유로 대항적 세력의 쇠퇴를 꼽는다. 노동자의 힘이 약해지니 기업은 임금을 줄여 수익성을 높이고 그에 따라 중산층이 몰락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노조 조직률은 시간이 흐르며 계속해서 감소했고 2013년 OECD 통계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10.8%, 한국은 10.3%를 기록했다. OECD 평균에 약 6%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재 미국에서 기업의 CEO와 일반 근로자의 연봉 차이는 약 200배에 달하고, 한국의 경우 최대 62.6배에 달한다(2017). 경제 성장률과 근로자의 평균임금 변화율 그래프가 인상적이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반면 근로자의 임금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버는 돈은 그대로인데 경제는 계속 성장하는 상황. 그는 이 현상을 여성의 노동 참여, 근로시간 연장, 주택담보대출로 설명한다. 이를 2008년 금융위기로 연결하기도 한다. 보통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대마불사에 근거한 월스트리트 거대 투자은행들의 무분별한 투자와 과도한 금융공학에 초점을 맞추곤 하는데,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노동자들의 임금 정체에서부터 인과를 연결 짓는 점이 참신하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부자 증세와 노동조합의 확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먼저, 그는 부자 증세가 경제 성장률을 해치지 않는다는 근거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높은 세율 속에서 경제가 꾸준히 성장한 것에서 찾는데,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오늘날보다 경제성장에 유리했다는 반박을 피하기 힘들다. 또한, 미국과 한국은 현재 주주를 경영의 초점에 두는 ‘주주 자본주의’ 체제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확대되고 직원들의 임금을 크게 높이게 될 경우 회사 수익률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이는 주식회사의 궁극적 목표인 ‘주주 이익의 극대화’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 추가로, 한국의 경우에는 낮은 노조 조직률보다도 비정규직의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청년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서라면 ‘열정 페이’까지 마다하지 않고 노동을 하는 요즘 ‘대항’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대항적 세력이 확대되려면 중산층이 아닌 가장 밑바닥에 있는 빈곤층 노동자들이 먼저 위로 올라와야 한다. 그때 비로소 중산층은 대항할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전현수(재무금융ㆍ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