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이 끝난 지 2년 뒤인 서기 1600년 10월 21일. 일본 기후(岐阜)현 세키가하라(関ヶ原) 벌판에서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가 벌어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이끄는 동군(東軍)과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오른팔이었던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선봉에 선 서군(西軍)이 열도의 패권을 놓고 자웅(雌雄)을 겨룬 것이다. 당시, 전국의 모든 봉건 영주들이 두 패로 갈려 전투를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은 10만 명, 서군은 8만 명이 참전해 교전 병력만 18만 명에 달했다. 결국, 하루 동안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승리를 거두고 이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근거지인 오사카(大阪)성을 함락시키며 에도(江戶) 막부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두 차례에 걸쳐 7년간 동북아시아에서 조선과 중국을 상대로 국제 전쟁을 벌였던 일본이 어떻게 종전 2년 만에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를 벌일 수 있었을까? 두 차례에 걸친 왜란에서 수많은 장정과 백성들을 잃으며 인구가 급감했던 조선은 약 40년 후에 병자호란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도 정규군의 수가 3만5천 명을 넘지 못했는데······.

이유는 바로 한국과 차원이 다른 일본의 쌀 생산량 및 인구 규모에 있었다. 2016년 현재, 세계 10위의 쌀 생산국으로 781만 톤을 생산하는 데다 인구 역시, 1억2600만 명으로 세계 11위의 인구 대국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쌀 규모만으로 보면 한국의 2016년 생산량인 419만 톤보다 86%나 많으며, 인구 대비로는 한국의 5000만 명보다 152%나 많은 수치다. 그래서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선사 시대 이래 동북아시아에서 일본 열도의 인구는 언제나 한반도에 대해 우위를 점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처럼 인구 조사가 정밀하게 시행되지 않은 수천,수백 년 전의 기록인지라 정확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필자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일본의 인구 수는 한반도의 2~4배를 유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기원 전인 조몬(縄文) 시대에 이미 10만 명에서 26만 명 정도가 열도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서기(西紀)로 넘어오는 야요이(弥生) 시대에는 약 60만 명이 열도에 터를 잡은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일본 인구는, 특히 우리나라의 통일 신라에 해당하는 나라(奈良) 시대에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부산 인구를 약 100만 명 정도 상회하는 450만 명에 다다랐던 것으로 학계는 파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인구 수 약 200만 명 정도의 고려와 동시대인 헤이안(平安) 당시에는 일본 인구가 약 550만 명 정도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양국 간의 인구 수 격차는 더욱 벌어져서 임진왜란이 발발한 1500년대 말에는 조선의 인구가 400만 명에 불과했던 데 반면, 일본의 인구는 12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덧붙이지면, 한반도의 거주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은 것은 겨우 100여 년 전인 1900년대 초의 일이다.

그런 연유로 일본은 두 번의 국제 전쟁 이후에도 18만 명의 군인들을 금방 동원할 수 있었다. 대규모 전투를 재개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로는 일본 특유의 사무라이 문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지배 계층은 대부분 문관이었던데 반해, 일본 전체 인구의 6% 정도를 차지했던 지배 계층은 무관인 사무라이들이었다. 단순히 계산해 보면 임진왜란 당시의 1200만 일본인 가운데 80만 명 정도가 사무라이들이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전투 가능한 청장년층이라고 볼 경우, 그 수는 40만 명에 달했던 것이다. 이들 중 15만 명 정도는 조선으로 침략 원정을 떠나고 나머지 25만 명 가량이 본토에 대기했기에 왜란 종전 2년 후에 18만 명이 참전한 대규모 전투가 벌어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듯 한반도의 인구를 훌쩍 넘는 일본 열도의 비결은 무엇일까? 도쿄(東京)에서 전철을 타고 동쪽이나 서쪽으로 향할 경우 차창을 통해 남북 양쪽으로 시야가 탁 트이는 전경을 상당히 오랫동안 목격하게 된다. 동서 길이가 130㎞에 이르며 남북 길이도 100㎞에 달하는, 면적 1만5000㎢의 간토(關東) 평야가 그것이다. 충청남·북도를 모두 합친 크기에 해당하는 이같은 면적은 한국에서 가장 넓다는 호남 평야가 1600㎢ 정도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무려 10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이에 대해 전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교수는 그의 저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통해 무사시노(武藏野) 들판의 광활함을 거론하고 있다. 무사시노 들판이란 도쿄 서부에 있었던 평야 지대로 지금은 대규모 주택단지가 조성된 지역. 그렇다고 드넓은 평지가 일본 본토인 혼슈(本州)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홋카이도 역시 네무로(根室)와 구시로(釧路)에 걸친 광대한 들녘, 곤센겐야(根釧原野)를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인 간토 평야는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열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 준 병참기지였다. 17세기 초, 간토 평야가 생산할 수 있었던 쌀의 양은 일본 최대 규모에 해당하는 연간 200만석이었다. 현대의 무게 단위로 환산해 보면 30만 톤에 가까운 대단한 규모. 참고로 쌀 한 석이란 성인 남자 1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분량으로, 20kg들이 쌀 포대로는 약 6~7개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성인 200만 명을 1년간 먹여 살릴 수 있는 간토 평야의 저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만 명의 정규군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간토 평야의 광활함을 부담스러워 한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는 간토 평야가 끝나는 남쪽 끝, 삼면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가마쿠라(鎌倉)에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을 세웠다. 마치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인왕산과 북한산, 남산과 낙산으로 둘러싸인 한성에 도읍을 정한 것처럼.
간토 평야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날개 하나를 더 달아준 것으로는 간토 평야 밑바닥에 깔려있는 화강암 풍화토를 들 수 있다. ‘간토 롬’이라는 불리는 비옥한 화산회토는 그렇지 않아도 넓은 평야에 넘칠 정도로 풍부한 농산물을 양산해 내는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했다. 한데 그와 같은 호조건 속에서도 소식(小食)하는 일본인들의 전통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세상사라는 생각이다.

/심 훈 (언론방송융합미디어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