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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하늘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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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1  16: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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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중간을 지나가고 있다. 뒤에 달랑 한 장만 남은 달력이 봉급날을 기다리는 지갑처럼 얄팍하다. 이마에 닿는 아침 공기가 알싸하게 차면서도 1급 청정수 같다. 아침에 학교로 걸어오던 중 어느 가게 주인이 가게 앞 은행나무의 잎사귀를 장대로 떨어뜨려내는 걸 보았다. 매일 같이 낙엽들을 치우기가 성가셔 아예 한꺼번에 다 털어버릴 모양이었다. 잎사귀가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음, 낙엽의 서정을 발본색원하는 듯함이 안타까웠다. 아니, 나무를 통째로 뿌리 뽑거나 베어내지 않는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근래 들어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목과 어깨에 이상이 생겨 운동을 하느라 아파트의 운동 기구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길을 걸으면서도 수시로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 올리기도 한다. 야밤에 아파트의 긴 의자나 운동기구 위에 몸을 낙낙하게 뉘고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그 아득한 거리와 어둠이 전하는 서름서름한 기운이 몸으로 느껴질 때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면 내가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있다는 걸 오랫동안 잊고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곤 했다. 또 내가 그동안 습관적으로 머리를 숙이고 지내왔다는 상념도 고개를 치켜들었다. 언젠가 어느 지인이 구부정하게 고개를 수그리고 걷는 나를 보곤 땅바닥에 떨어진 돈을 찾느냐고 했던 농담도 떠올랐다. 나는 그 누구들에게, 그 무엇들에 머리를 조아렸던 것일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최근 성악을 전공하는 둘째 아이가 음악과 시의 연관성이란 주제로 과제물을 쓴다면서 조언을 요청했다. 시를 대중음악으로 옮긴 예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해 같이 찾던 중에 박두진 시인의 ‘하늘’이란 시를 참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양희은과 서유석이 함께 부른 동명의 노래도 간만에 들었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여릿여릿/머얼리서 온다”로 시작하는 그 시와 노래는 하늘과 내가 하나로 합해지는 것 같은 아찔한 환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시에 잠재된 가락을 탁월하게 뽑아낸 서유석의 상상력과 슬픔이 한 자락 깔린 청아한 양희은의 목소리가 하모니의 압권을 이룬다. 특히 “여릿여릿”이란 대목에서 두 번째 ‘여릿’의 변주는 순간 듣는 이의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며 하늘과 나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축지법처럼 단축시키는 듯하다. 시의 나머지를 마저 옮겨본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호수처럼 푸르다//호수처럼 푸른 하늘에/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가슴으로, 가슴으로/스미어드는 하늘/향기로운 하늘의 호흡//따가운 볕/초가을 햇볕으로/목을 씻고//나는 하늘을 마신다/자꾸 목말라 마신다//마시는 하늘에/내가 익는다/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이 시와 노래를 반복해 읽고 들으면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나의 행위도 한낱 몸짓 이상의 의미를 획득한 기분이었다. 곧 추위가 닥치고 모두 어깨를 곱송그리며 월동 준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목을 씻고 하늘을 마시는’ 일을 잊거나 게을리 하지 말 일이다.

/김번(영어영문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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