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여름, 출장길에 우연히 들른 바르셀로나는 아름다웠다. 화사한 풍경, 멋진 건축물 그리고 즐거운 사람들, 도시 전체가 정말 한 송이 꽃과 같았다. 꼭 다시 가야지 생각했던 그 곳에 올해 초 다시 갈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겨울의 바르셀로나는 내가 기억하는 그 곳이 아니었다. 사방이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은, 거기에서 만난 세 명의 천재들 덕분이었다.

처음 만난 천재는 파블로 피카소였다. 오래된 뒷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가 유년기에 그린 그림을 비롯한 수많은 초기작들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피카소가 자신의 대표작인 <시녀들>을 그리기 위한 습작들이었다. 1957년, 나이 일흔여섯의 피카소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을 무려 58회나 따라 그린다. 수없이 다양한 새로운 시도 끝에 마침내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전통을 잇되, 자기 자신만의 <시녀들>을 완성한다. 전시실의 벽면을 가득 채운 습작을 따라 하염없이 걸으며, 완성에 이르는 대가의 여정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는 건축의 천재 안토니 가우디였다. 가우디의 건축은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이 가장 유명하지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까사밀라나 까사바트요와 같은 주택들이었다. 신의 피조물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건축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그는 나뭇잎, 도토리, 돌조각 등 주변의 어느 하나 소홀히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나 유려한 건축물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자연의 빛은 누구나 똑같이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까사밀라 한가운데에 내정(內庭)을 만들어, 하녀들의 방에도 햇빛이 골고루 들게 하였다. 다른 건축물에서도 가우디는 경비원들을 위한 공간,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등을 위한 건물의 설계에 특별히 유념하였다. 모두를 위하여 배려하는 천재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세 번째 만난 것은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였다. FC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직접 보고 싶어서 예매를 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경기는 아니라고 해서 메시가 나오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메시가 주전으로 출전하였다. 그날은 메시의 경기를 ‘직관’하느라, 사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전후반 90분을 꼼짝 않고 보았는데 가장 놀란 것은 그의 집중력이었다. FC바르셀로나가 무려 5:0으로 이기고 있는 경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 메시는 단 한 순간도 소홀하지 않았다. 끝까지 매순간 모든 슈팅과 패스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은 놀라웠다.

천재는 하늘이 내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세 천재, 연습하는 피카소, 배려하는 가우디 그리고 끈질긴 메시의 모습은 천재가 단지 하늘에서 내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기회가 되면, 바르셀로나에 들려 천재들과 만나 볼 것을 권한다. 단, 되도록 여름에 방문하시기를.

/이지혜(교양기초교육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