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돼지는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유용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장 최근에 가축화가 된 동물이다. 무엇이든 다 잘 먹는 잡식성이라 인류의 가장 큰 먹이 경쟁자 중 하나였고 농경에 있어서도 그 힘을 전혀 활용할 수가 없었기에 집안에 들여놓는 시도가 늦어진 까닭에서다. 그러고 보면, 소의 경우는 온갖 농사일을 떠맡아 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우유도 제공하는데... 마찬가지로 양과 염소도 젖과 함께 털과 가죽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돼지는 식용 이외의 사용처가 마땅히 없는, 제한적 용도의 먹거리 가축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여러 가축들 가운데 가장 늦게 인류의 먹거리 문명에 기여하기 시작한 돼지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방위적으로 활용되는 육류 창고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삼겹살은 서양에서도 베이컨이라는 먹거리로 활용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서양인들은 돼지의 뱃살을 아주 얇게 썰어서 먹고 우리는 두툼하게 잘라서 먹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양의 문학에서 베이컨은 가장 자주 등장하는 먹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베이컨이라는 음식을 미국에 유학가기 전까지 먹어본 적이 없었던 필자는 어린 시절, 서양의 동화나 소설들을 읽으면 자주 등장하는 베이컨이 무엇인지 몰라 항상 궁금해 했다.

당시, 동화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했던 장면은 주인공이 공주를 구하거나 용을 퇴치하기 위해 떠나는 긴 여정에서 반드시 자신의 짐 꾸러미에 딱딱하고 큰 빵 한 덩어리와 소금에 절인 베이컨 한 덩이를 넣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은 돼지의 배 부위를 통째로 구운 뒤 필요에 따라 끝부분부터 가늘게 썰어서 먹었던 모양이다. 물른 소금에 절여 놓은 채로 말이다.

사실, 돼지는 온몸이 삼겹살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방이 많다. 어느 정도로 지방이 많은가 하면 독사에게 물려도 괜찮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산돼지와 멧돼지에게 독사는 그저 맛있는 먹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로 축사에서 기르는 돼지에게 뱀을 던져주면 아주 맛있게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 뱀이 많다고 알려진 지역에서 돼지를 기르면 독사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지방으로 뒤덮인 돼지의 체지방이 의외로 높지 않으며 그 비율은 10% 안팎이라는 것이다. 스모 선수들의 체지방 비율이 20%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모 선수보다 체질적인 면에서는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몸 전체가 두터운 지방층으로 덮여 있는 돼지의 체지방 비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정답은 돼지의 지방 속 몸이 온통 근육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뚱뚱한 연예인들이 체지방을 재는 TV 속 건강 진단 장면에서 근육이 많아 체지방 비율이 낮은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다시 말해 체지방 비율에 있어서는 지방 밑에 덮여 있는 근육의 비율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새끼 돼지의 경우는 체지방 비율이 9%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더 많은 살과 지방을 얻기 위해 돼지를 좁은 곳에서 키우면 돼지의 체지방은 20% 정도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각설하고, 베이컨과 삼겹살에서 벗어나 갈비와 안심, 등심은 물론, 목살과 뒷다리살, 앞다리살로 넘어가면 돼지에 대한 탄수화물 오디세이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돼지의 내장도 순대와 국거리로 활용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돼지 몸의 안팎을 샅샅이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뼈조차도 버릴 것이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감자탕에 사용되는 돼지 등뼈. 감자탕에서 국물 맛을 내는 돼지 등뼈는 두둑한 살점까지 덤으로 제공하고 있어 돼지 등뼈 없는 감자탕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이름은 감자탕이니, 돼지로서는 그저 감자가 부러우며 억울할 수밖에.

참, 서양에선 결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먹거리 부위도 한국인들에게는 최고의 요리로 각광받는다. 족발 이야기다. 하지만, 멕시코인과 중국인도 돼지 족발을 즐겨 먹는다고 하니, 돼지 족발의 맛을 아는 이들이 지구상에 비단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 돼지의 여러 부위 가운데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특이한 부위로는 볼 살도 있다. 한 마리 당 몇 백 g밖에 나오지 않는 희귀한 볼 살 부위는 지방이 적고 담백해서 한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함께 앞다리와 연결된 가슴 부위인 항정살도 돼지의 여러 부위 가운데 삼겹살과 더불어 절찬리에 팔리는 부위이다.

하지만 한국이 돼지를 둘러싼 활용의 백미는 역시, 돼지 머리다. 외국인들이 기겁을 할 장면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만한 돼지 머리 활용은 어떤 시각에 따라서는 엽기에 가깝게 느껴질 만하다. 개인적으로 고기 가운데에서는 돼지 고기를 가장 좋아하는 필자이지만, 고사에 등장하는 돼지 머리만은 선뜻 수용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 성공 등을 위해 자주 동원되는 돼지 머리는 전통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부적 같은 존재다. 사업의 승승장구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돼지 머리는 웃는 상을 할수록 당연히 값이 더 비싸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고사용 돼지 머리의 가격은 생각보다 훨씬 저렴하다. 크기와 얼굴 모양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긴 하지만 싼 것은 1만5천원부터 시작하고 비싼 것은 5만원 정도 한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돼지를 둘러싼 활용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놀이에 있어서도 온몸을 바쳐가며 인간, 아니 한국인에게 봉사하는 대상이 돼지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돼지 오줌보이다. 나이 지긋하신 노인들은 모두 한두 번의 경험을 지니고 있는 것이 돼지 오줌보를 이용한 축구다. 마을에서 돼지를 잡으면 나오는 오줌통은 바람을 넣을 경우, 상당히 탄력이 좋은 고급(?) 축구공으로 변신을 한다. 실제로 필자의 아버지는 당신이 어렸을 때에 돼지 오줌보를 가지고 축구를 한 기억을 수도 없이 말씀하곤 하셨다. 워낙 부드러워서 발끝에 닿는 감촉이 좋다보니 하루 종일 공을 쫓아다닌 기억이 지금껏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당신께서는 놀이 종료의 순간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줌보가 터지면 게임 끝이야!”

그럼, 다음 시간에는 돼지고기 요리를 둘러싼 이야기로 돈육 오디세이의 향연을 마치고자 한다. 혀, 소금, 쌀 등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소재로 연재를 해 왔는데 어느덧 12월과 종강이 코앞이다.

/심훈(언론방송융합미디어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