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시대정신의 척도다. 진리를 가르치고 당대 흐름을 선도하며 사회를 이끌어갈 지성인을 배양하는 곳, 한국 사회는 대학을 그런 곳으로 인식해왔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대학생이 앞장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독재 정권의 압제에 맞서 학생회를 구성하고 운동의 선두에 서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 국정농단 사건 때도 대학은 시국선언과 촛불시위로 생명력을 증명했다.

명색이 무색하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대학은 개인주의와 정치 무관심으로 돌아섰다. 몇 년째 대학가의 총학생회 선거가 단독 출마로 치러지고 있는 게 그 증거 중 하나다. 가톨릭대학교의 경우는 2018년도 중앙 선거 후보자 등록이 0명인 채로 마감돼 선거 자체가 무산됐다. 총학생회를 비롯해 총동아리연합회장, 전 단과대학 학생회 입후보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아 학내외에 충격을 안겨줬다.

우리 대학도 그 모습을 크게 비껴가지 않았다. 2018년도 학생자치기구 대표자 선거에서 경영대학만이 경선으로 진행됐으며 그 외 모든 단과대학 및 총학생회, 동아리연합회 선거는 단일후보였다. 그나마 후보가 나온 것이 어디냐며 자위할지 모르겠으나, 몇 년째 경선보다 단독 출마가 더 익숙한 선거 분위기로 보아 우리 대학도 곧 출마자 없는 선거를 맞닥뜨리는 건 아닐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많은 학우들이 학생회에 대해 ‘정치질’이라는 폄훼의 표현을 사용하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학생대표자들의 활동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넘어 자신이 학생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는 학우들의 의식을 나타낸다.

학우들의 정치 무관심은 투표율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이번 선거의 전반적인 투표율은 50%를 조금 웃도는 수치였다. 사회과학대학의 경우 투표율이 50%를 넘기지 않아 연장투표를 통해 겨우 투표를 마칠 수 있었다. 학과 대표자 선거는 정도가 더 심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의 경우 투표율 미달로 후보자 재등록 및 재선거를 진행했다. 애초에 정식 선거를 하지 않는 학과도 많았다. 종강총회에서 거수로 과반을 물어 학과 대표자를 선출하는 곳도 있었으며 심지어 정족수 미달 상태에서 거수 표결을 진행한 학과도 있었다.

낮은 선거율이 학생들의 정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중앙선거 기간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의견을 밝혔다. ‘무투표도 의사표시다. 반대표를 던져봤자 투표율만 높여줘 당선을 돕는 꼴이니 나는 투표하지 않겠다.’ 즉, 후보자를 탈락시키기 위한 투표 포기 역시 나의 권리이므로 침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선거 기권은 ‘진짜 의사표현’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단독 출마는 애초에 당선 확률이 높다. 그 와중 반대표는 단순히 후보자를 떨어트리기 위해 던지는 게 아니다. 반대표의 방점은 ‘당신이 당선되더라도 나는 당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한다는 데에 찍혀야 한다.

낮은 투표율, 그러나 높은 찬성률로 당선된 이들은 찬성표만을 기억하게 된다. 높은 득표율, 하지만 높은 반대표와 함께 뽑힌 자들은 반대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당신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전달해 그들이 모든 학우를 아우르고 만족시키는 행보를 이어나가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책임감 있는 자세일 것이다. 그러한 애씀 없이 ‘내 권리이므로 선거 독려를 하지 말라’는 것이 과연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학우들은 다시 한 번 고민하길 바란다. 반대표를 통해서도 당선자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적극적인 선거 문화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