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복수전공 의무화가 실시되는 첫 학기가 열렸다. 우려와 비판이 적지 않은 가운데 결정된 이 제도가 조기에 안착할 수 있을지, 혼란이나 부작용은 없을지, 그리고 이 제도의 장점은 본부의 주장대로 잘 나타날지 등에 대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총학생회의 설문조사에 나타난 첫 학기 수강 신청 풍경은 매우 어지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학생들의 불만, 짜증 및 분노가 마구 뒤섞인 아우성을 듣노라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생생한 목소리를 일부나마 간추려 본다. 1. 과목 수와 과목 당 수강 인원은 늘지 않고 수강생이 몰려들어 수강 신청이 안 되거나 어렵고, 전공 필수과목의 경우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2. 복수전공 선택률이 높은 전공에서는 학생들의 쇄도로 강의의 질 저하를 우려한다. 3. 복수 전공을 위한 설명과 안내가 태부족이다. 4. 주전공만 해도 벅찬데 2전공까지 해야 하는 마당에 2전공의 수강 신청에서부터 애룰 먹고 강의를 따라가지 못해 좋지 않은 성적을 받을까 걱정한다. 5. 원하지 않아도 복수전공을 해야 한다는 것에 이해할 수 없다거나 분개한다. 6. 복수전공생이 몰리는 전공의 경우 수강이 어려워 졸업을 제때 할 수 있을지를 주전공생과 2전공생 공히 걱정한다. 7. 서버가 자주 다운되는 통에 수강에 애를 먹거나 실패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곡절이야 어쨌든 복수전공 필수화가 결정된 후 상당한 준비 시간이 있었음에도 본부의 준비가 너무 부실했음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토로하는 걱정과 불만의 대부분은 이 제도의 실시 여부를 두고 상당수 교수들이 우려했던 내용과 거의 일치하기에 본부의 책임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제도 시행 첫 학기임을 감안하고 본부 교무팀의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학생 중심을 내세우며 결행한 이 제도가 학생들의 원성의 대상이 된 데 대한 본부의 책임은 감해지지 않는다.

본부는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깃든 실망, 불만과 분노에 귀 기울여 개선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학생 일부의 불만에 불과하다고 치부해선 안 될 것이다. 수강생이 몰린 교과목의 이후 수업 풍경도 심히 걱정된다. 주전공생과 2전공생 사이의 심리적 갈등 같은 것 말이다. 귀를 열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 큰 뜻을 안고 행하는 것이라고 구성원과 타협 없는 행정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글은 한림학보사가 ‘시시각각’이란 코너를 새로 꾸며 거기에 한림학보에 실린 학내 주요 관심사나 이슈에 대해 교수평의회 소속 평교수들의 다양한 시각을 릴레이로 싣고 싶다는 기획 취지를 흔쾌히 받아들여 내가 먼저 쓰게 된 것이다. 이제 칼럼 쓰기의 바톤을 다음 교수에게 넘겨야 하는데, 내가 쓴 글이 예기치 않게 무거위진 것 같아 이어받을 분에게 조금 면구스럽다. 연구년을 보내며 원기를 담뿍 충전했을 심리학과 이 주일 교수님에게 바톤을 넘기니 힘찬 기운과 예의 날렵한 재기를 발휘하여 분위기 쇄신을 해주시기 바란다.

/김번(영어영문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