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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는 목을 축이기 위해 맥주와 포도주를 등장시킨 빵로마 시대엔 전문 제분소에서 대규모로 빵과 밀가루 판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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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31  10: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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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말의 힘으로 움직인 로마 시대의 밀 방앗간. 멧돌 두 개가 나란히 있는 것으로 보아 전문 방앗간의 풍경 으로 추정된다. 3세기 경의 조각 작품으로 1826년 로마의 포르타 산 지오바니에서 출토.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문 1 : 매우 쉬운 문제 하나. 빵의 영어는?
답 1 : bread
문 2 : 그렇다면 빵의 포르투갈어는?
답 2 : ‘팡’
문 3 : 마지막으로 빵은 일본어로 무엇이라고 부를까?
답 3: 우리와 똑같이 ‘빵’이라 부른다.

 

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밥과 떡. 식혜와쌀 강정, 그리고 뻥튀기 이외에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면 밀은 라면과 우동, 칼국수와 냉면, 짜장면과 짬뽕 같이 그 종류를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힘든 여러 종류의 국수들에서부터 만두, 수제비는 물론, 과자와 케이크, 그리고 피자 등에 이르기까지 만들 수 있는 음식 수가 무궁무진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밀가루로 만든 가장 대표적인 먹거리를 꼽자면 역시 빵을 빼놓을 수 없다.
근세사를 살펴보니 1543년에 태풍으로 표류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일본에 빵을 전한 것이 동아시아 빵 역사의 효시다. 당시, 포르투갈어인 팡은 일본에서 빵으로 불렸고, 이후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마치 순수 국어처럼 우리 입에 자연스레 들러붙게 됐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더욱 과거로 돌려보면, 빵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보다 무척 오래됐음을 알게 된다. 이미 지금으로부터 4500여 년 전의 고대 이집트에서 빵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B.C. 26세기에 건축된 어느 왕족의 무덤 벽화에 남아 있는 빵 그림이 그것이다. 하지만 왕족의 무덤 벽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당시의 서민들은 결코 먹을 수 없는 사치 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에서 발원한 빵 문화는 이후, 이집트와 활발한 교역 활동을 벌였던 그리스, 로마, 그리고 중동으로 시나브로 퍼져 나갔다. 참, 고대 이집트에서는 팍팍한 빵을 부드럽게 넘기기 위해 밀로 맥주를 만들었으며 맥주를 빵과 곁들여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앞서 네 차례에 걸쳐 소개한 밀은 빵과 맥주를 통해 서양,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이집트의 식탁에서 북치고 장구까지 친 셈이다.

이집트에서 귀한 식료품으로 대접받던 빵은 그리스에서도 역시, 일급 식품으로 다뤄졌다. 그리하여 B.C. 6세기에 대정치가 솔론에 의해 아테네가 황금기를 구가하기 전까지 빵은 귀족들의 전유물로서 결코 서민들이 가까이 할 수 없는 특급 식품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솔론 시대에 아테네가 사상 최대의 부와 영토를 지니게 되면서 대량으로 아테네에 흘러 들어온 밀은 빵으로 구워져 서민들에게까지 공급되기에 이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테네 역시,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목 메임을 줄이기 위해 포도주와 함께 빵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침 식사로. 이후 포도주에 빵을 찍어 먹는 방식은 오랫동안 아테네인들의 전형적인 아침 식단이 되었다.

로마인들도 빵을 무척 즐겨 먹었다. 특히, 로마인들은 아예 밀 방앗간을 대형으로 차려 놓고 대규모로 밀을 빻아 팔았다. 사실,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에 용이하며 보관도 오래할 수 있는 빵은 제조 과정이 대단히 복잡해서 품이 많이 드는 식량이다. 비록, 쌀이 파종에서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88번의 손을 요구한다고는 하지만, 일단 탈곡까지 마치고 나면 냄비에 물을 붓고 불을 이용해서 언제든지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반면, 빵은 쉬운 재배와 어렵지 않은 수확에 비해 제빵이 어려운 식품이다. 쌀알과 달리, 밀알을 가루로 빻은 후, 물을 넣고 반죽한 다음, 다시 가마에 넣고 천천히 구워야 비로소 음식으로 완성되는 까닭에서다.

그렇다면 로마인들이 전문적인 밀 방앗간에서 밀을 대규모로 빻아 팔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는 지금도 이탈리아 곳곳에 남아 있는 수많은 로마 시대 방앗간들이 그 사실을 웅변해 주고 있다. 더불어 방앗간의 멧돌 규모도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서 거대한 숫방아와 암방아의 멧돌질을 감당하기 위해 사람이 아닌 말이나 당나귀들이 하루 종일 방아를 돌려야 했다. 그러고 보면, 성경 속의 ‘삼손과 데릴라’에 등장하는 괴력의 장사, 삼손이 돌린 것도 방앗간의 멧돌이었다.

해서, 지금도 바티칸 교황청의 박물관에는 로마 시대에 열심히 방아를 돌리는 당나귀의 고달픈 모습이 조각으로 생생히 묘사돼 있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당시 로마의 방앗간에서는 빵도 구워서 팔았다. 시쳇말로 요즘의 제빵소에 제분소까지 겸했던 것이 로마 시대의 방앗간이었던 셈이다.

이런 복합 쇼핑몰은 ‘피스트리움’(Pistrium)이라 불렸다. 밀가루 반죽을 의미하는 ‘Pist’에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 ‘-um’이 합성된 용어다. 참, Pist는 오늘날의 Pasta를 뜻하는 고대 로마어, 즉 라틴어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현재 폼페이에만 네 개의 피스트리움 유적이 남아 있다. 더불어, 4세기 말의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에는 무려 274개의 피스트리움이 있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인구 20만 명의 춘천에도 빵집이 270여개는 있을 것 같지 않기에 당시, 로마의 인구 규모와 함께 빵에 대한 로마인들의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로마 제국 역시,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밀과 빵의 사정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공화정 초기에는 국력도 약하고 나라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 빵을 풍족하게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B.C. 241년에 1차 포에니 전쟁을 통해 당시 지중해의 최강대국 카르타고를 물리친 후, 비로소 로마는 밀 곡창지대인 시칠리아 섬을 손에 넣게 된다.

이후, B.C. 31년의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부부를 물리치고 이집트를 속주로 삼은 뒤 밀·빵 경제는 더욱 좋아진다. 비옥한 나일강 곡창 지대의 밀이 모두 제국의 영토가 되었던 것이다.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밀을 주던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빵을 만들어 빈민들에게 나눠줬다. 물을 붓고 반죽해서 구워야 하는 수고까지 덜어준 셈이다. 그러니 민중들이 얼마나 고마워했을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다. 21세기의 한국에서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난 받는 취약계층 무상 지원책들이 2000여년 전의 로마에서도 이미 시행됐던 것이다. 역시 돌고 도는 것이 역사다.

인상적인 사실은 이집트 곡창 지대를 빼앗아 로마 시민들에게 풍족한 빵을 안겨준 옥타비아누스 자신은 위장병 때문에 빵 한 조각만으로 식사 해결했다는 것이다. 역시 황제 복 따로, 먹는 복 따로다. 그래도 그런 소식(小食) 덕분인지 무려 78세까지 천수를 누렸단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문학과 영화, 그리고 속담을 매개로 한 빵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심훈(언론방송융합미디어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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