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심훈 교수의 '식탁위의 인문학']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 증명한 ‘너는 내 운명’의 ‘소’자식을 대학에까지 보내주던 귀하디 귀한 동물. 가축화는 가장 늦었지만 농경 문화를 일으킨 장본인. 고기는 물론, 우유와 가죽, 그리고 쟁기질까지 제공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5.19  11:25:5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사진 설명 농경 민족에게 있어 소의 가축화는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물소를 이용해 밭을 경 작하는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지난 시간에 소개한 대로, 이번엔 인류의 먹거리 식탁에서 돼지의 최대 라이벌인 ‘소’ 이야기다. 비록, 인류의 식탁을 풍부하게 해 준 가축들 가운데 가장 늦게 합류했지만 인류가 지구상에 번성할 수 있도록, 아니 벼 농사를 지반으로 한 아시아의 문명이 활짝 꽃 피울 수 있도록 매개한, 고마운 짐승 이야기이다.

인류학자와 생태학자들에 따르면, 소는 6,000년 전에서야 비로소 서남아시아와 인도, 북아프리카에서 가축화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고고학적인 증거를 통해 볼 때, 대형 포유류 가운데 가축화가 가장 먼저 이뤄진 동물은 다름 아닌 개로 이미 15,000년 전부터 인간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 다음으로 양과 염소, 돼지가 8,000년 전에 서남아시아에서 가축화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의 경우 가축화 과정에서 예전보다 더욱 작아졌으며, 젖의 양은 늘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필요에 따라 계속 선택적으로 소의 진화(?)를 유도해온 까닭에서다.

이러한 소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사육되기 시작한 이후, 서서히 동서 방향으로 퍼지게 됐다. 하지만, 돼지와 함께 양대 가축에 속하는 소는 아메리카 대륙에선 사육되지 못했다. 비록 빙하기 시절에, 극동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이 연결돼 있었다고는 하나 너무 추운 극지방의 기후를 소와 돼지가 견디지 못한 까닭에서다. 소가 돼지와 함께 아메리카에 성공적으로 상륙하지 못했고 유럽이 배를 통해 직접 실어 나른 16세기 이후부터였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세기의 도서, ‘총, 균, 쇠’를 살펴보니, 전 세계에서 가축화가 가능한 대형 초식 포유류는 148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최종적인 테스트를 통과한 동물은 단 14종이었으며, 그 가운데 5종이 어느 문명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사육되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에서도 인류의 문화를 번성시켜준 가장 고마운 동물은 소였고.

그렇다면 여기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140여종에 달하는 전 세계의 대형 야생 초식성 육서 포유류 가운데 어찌하여 14개 종만 인류의 선택을 받게 되었을까? 소위 말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따온 것으로 이 소설의 서두에 나오는 글귀에서부터 시작됐기에 불리는 법칙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의 불우한 삶을 그렸던 소설에서 첫 문장을 통해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바는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즉, 연인들은 서로에게 성적으로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며,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되는 것은 물론, 종교도 동일하며 양가 부모님을 비롯해 친인척 등과의 관계가 무난해야 한다는 등 수많은 문제들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리하여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불행한 결혼은 수많은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금새 그 충분조건을 만족시킨다. 돈이 없거나 서로 사랑하지 않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한다거나 따위의. 마찬가지로,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러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인류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동물의 가축화에 대해 설명해 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얼룩말이나 멧돼지처럼 가축화에 적합해 보이는 수많은 대형 야생 포유류들은 가축화가 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가축화에 성공한 가축들은 거의 대부분이 유라시아산이었다는 점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따르면 450kg짜리 소를 키우려면 옥수수 4500kg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육식 동물은 그렇게 자란 초식 동물 4500kg이나 먹어야 하니, 애당초 육식 동물을 가축화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못해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동물원에서 사자 한 마리가 1년에 먹는 사료 양과 비용를 생각해 보라. 성장 속도 역시 중요했다. 고릴라나 코끼리의 경우는 다 자라는데 15년이나 걸리는 반면, 소는 3년, 돼지는 6개월이면 성우와 성돈이 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가축 대상 동물의 성격이었다. 필자가 사랑하는 KBS TV의 ‘동물의 왕국’을 보라. 회색곰과 아프리카 들소, 하마와 코뿔소, 코끼리와 얼룩말이 얼마나 거칠은지. 그러고 보면, 돼지도 무척 거칠다. 직접 사육하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특히, 발정기에 접어든 숫퇘지는 정말 사납고 무섭다고 한다. 반면, 소의 경우는 가축들 가운데 양이나 염소처럼 온순하기 짝이 없다. 덩치는 가장 큰 녀석이 성격까지 온순하니 6,000년 전의 인간들이 소를 어찌 그냥 두었겠는가?

소가 가축 가운데 으뜸이라 하는 까닭은 말이나 돼지, 양, 염소가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을 고르게 제공하는 까닭에서다. 일례로 돼지는 노동력과 젖을 제공하지 못하며, 양과 염소는 노동력을 주지 못한다. 말 또한 고기와 젖을 제공하지 못한다. 물론, 말 젖을 먹거나 이를 이용해 요리를 하는 민족들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말은 주로 노동력과 운송 수단으로 주로 활약해 왔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소는 고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젖을 비롯한 유제품과 육상 운송, 노동력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가죽과 함께, 한국의 경우에는 꼬리와 발마저 살뜰하게 건네준다.

그런 소는 특히 노동력으로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한 마지기 논을 경작하는 소작농에게 소는 사실상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귀한 소가 임신을 해서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를 잘 키운 후, 장에서 비싼 값을 받아 팔며 대학 간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한 것이 우리 조상들의, 아니 우리 할아버지들의 삶이었다. 그럼, 다음 시간에도 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보고자 하다.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들 힘 내기 바란다.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인터뷰] “진실을 향한 진심” 1세대 프로파일러 표창원 교수 만나다
2
[보도] ‘표창원 특강’ 170여 명 참석해 성황리에 마무리
3
[보도] ‘217종 잡지부터 전 세계 논문까지’ 학우들에게 제공
4
[보도] 인문·체육비전 장학생 모집, 내달 5일까지
5
[기획] 한림학보, 취재력 기르고 특징 찾아야
6
[보도] 학생예비군, 홍천 아닌 춘천에서 실시
7
[보도] 취미·스포츠 활동하고 기숙사 상점받자
8
[인터뷰] 한 분야 연구에 열정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지원해보길
9
[시사이슈] 중국서 ‘억울한 옥살이’ 손준호 무사히 한국땅 밟아
10
[시사상식] 신문에서 보는 시사상식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성민(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