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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대학교육의 위기④우리는 지금 대학을 다니는가?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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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0.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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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부에서는 ‘대학교육이 위기’라는 주제로 네번에 걸친 학술기획을 싣는다. 대학교육의 현실태와 대안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①‘대학교육의 위기’에 대한 담론
②대학교육이 갖는 본래의 역할과 현 실태
③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현실
④대학교육의 올바른 방향 모색

  고대 희랍이나 로마에는 철학, 법률, 수사학 등에서 매우 수준 높은 고등교육이 있었으나  그것은 학문 전달은 위한 영속적 기관의 형태로 조직되지는 못했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대한 교사도 졸업증서를 준 일이 없었던 것이다. B.C. 4, 5세기경에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소크라테스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한 플라톤이 아테네에 세운 아카데미아(akademia)와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케이온(lykeion)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있었으나 이들은 모두 철학학교였다. 그 후 로마에도 산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생기기는 했지만 이들 모두 현대적 의미의 대학이라고 볼 수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학부나 학과과정으로 대표되는 교육의 전체기구, 그리고 시험이나 졸업식을 하거나 학위 등을 수여하는 근대적 대학의 형태는 12, 3세기 경에 파리와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볼로냐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가 학문의 발상지라고 하면 파리와 볼로냐는 대학의 발상지라고 하겠다. 볼로냐 대학은 12세기에 세워져, 로마법의 연구로 유명해 졌는데 전성기에 있어서는 1만명의 학생이 로마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이 대학의 특성은 학생의 대학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17세에서 40세까지의 연장자가 많았으며 부유하고 사회적 신분이 높았기 때문에 교사가 생도를 훈육한다는 관념이 싹틀 수는 없었다. 교수는 자신의 강의에 출석하는 학생들의 청강료에 의하여 생계를 지탱하고 있었으므로 학생이 교사에 대하여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학생단(universitas)을 조직하여 교수단에 항의했으며 시당국에 압력을 가하여 학생들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오늘날의 대학은 studium generale이라고 불렸는데 studium generale란 모든 국가, 지방, 계급의 학생이 모여 학문연구를 하는 장소, 즉 모든 기독교도에게 공개돼, 국가를 초월한 전문적 학문(법학, 신학, 의학)의 연구소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늘날 universitas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학생들의 조합(guild)이란 점에 연유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collegium이란 조합이 있었는데 이것은 교수단의 조합을 뜻하고 있었다. 오늘날 이universitas(university)가 종합대학교로 collegium(college)이 단과대학으로 호칭되고 있는 것은 교수와 학생의 조직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이 보다 조금늦은 12세기 말에 성립된 파리 대학은 교수의 대학인 점이 달랐다. 파리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학부(faculte)를 중심으로 완전한 독립된 법인체로 발전해 교수내용을 정하고 교사면허를 발급하며 학위를 수여하고 교수를 임면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그 이후 옥스퍼드나 캠브리지같은 대학이 12세기 말에서 13세기에 걸쳐 파리 대학을 모방해서 만들어졌는데 이 두 대학은 중세의 길드조합적인 학문집단으로서 존재했으며 독자적인 재판권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대학은 문예학부,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로 구성되었는데 문예학부의 과정을 수료한 사람만이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에 진급하는 체계로 돼 있었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상급학부인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에 비해 문예학부의 규모가 가장 컸다. 이러한 체계는 전 유럽 대학의 표본으로 자리잡게 됐는데 근대에 와서는 문예학부가 철학부로 되면서 4개 학부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처럼 중세에서 근대까지 이어지는 봉건사회 속에서 대학의 기능은 소수의 부유층 자제들을 교육시키고 연구하여 법률가, 신부, 승려, 의사 등의 엘리트 집단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자본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의 매체이자 진리의 상아탑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변화한다. 「고등교육의 대중화」를 기치로 걸고 세계의 각 대학들은 인문학과 대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각 분야의 전문인 양성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중적 고등교육이란 허울일 뿐 대학은 거대한 사업장으로 전락했고 더 이상 그들에게 학생은 진리의 탐구자라기 보단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당연히 무분별한 학생의 증가와 캠퍼스의 확장으로 내실있는 학문의 발전은 가로막혔다. 이에 따라 거대화된 대학을 multiversity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게 되는데 본래 대학의 역할이라 여겨지던 전인교육을 통한 인재양성 기능이나, 초등교육이나 중등교육과는 구분되는 연구기능을 통한 대학내부의 공동체 구성, 대학의 연구기능과 교육기능에 의한 결과를 직접 사회에 적용해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봉사기능 또한 상당부분 붕괴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심각한건 인문학의 몰락이다. 지금껏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전체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서슴없이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정책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대학은 전문직업인의 양성소로 돼버렸으며 예산부족과 교수진 부족, 대학의 자치침해 등으로 이상적인 대학상과는 먼 전문직업인 양성에만 급급한 감이 있다. 학생은 진리탐구라는 이상보다도 당장의 취직을 위해 소위 비젼있다는 인기학부로 몰리고 있다. 불행히도 그런 학부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하루종일 토익, 토플이라는 영어와 씨름 중이다. 심지어 호서대학교의 경우에는 올해 철학과를 없애고 인터넷관련 학부의 인원을 늘렸으며 전국대학협의회의 예상으로는 앞으로 몇 년후에 철학과를 위시한 인문학부가 남아있는 학교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해왔던 국가는 지금껏 뭘 했단 말인가. 우리나라의 인문학은 이제 종언을 고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대학의 개혁방안은 없는 것인가? 우선 이러한 병폐는 대학의 기업화로 인한 학생의 대량생산 교육에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대학이 진정한 교육, 연구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 직업인의 양성은 전문대학이나 교양대학에서 끝내고 진정한 학문연구의 상아탑은 대학원 대학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우리 눈에 펼쳐진 현실은 냉혹하다. 대학관리당국은 국수주의적, 실제적, 공리적, 기술적 성과만을 기대하여 순수학문이라던가 기초과학 진흥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으며 등록금을 착취해서 자기들의 배속을 채우기 급급하다. 학생들 또한 학교를 사회진출의 명함을 만드는 공장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대학이 바뀌어야 할 때다. 대학은 진리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하며, 세계에 개방되어야 하며, 역사를 지향해야하고, 국가나 국민을 초월한 인류 세계에 공헌하는 연구 교육기관이 돼야 한다. 우리 눈 앞에 이러한 현실에서 떠나 고유의 연구기능을 궁극적인 문제에까지 파고 들어가는 연구기구로서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교수와 교수,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과의 만남의 장소로서 중요성을 가져야 한다. 연구자들은 자기의 인식의 한계에 부딪쳐서 좌절하는 것을 매개로 해 다른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공동체로서 인격적 교류가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교수나 학생이 원자화되어 지리멸멸돼 있는 곳에서는 학문의 연구와 진리탐구는 불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 대학은 지식인을 가장한 자만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울타리가 학문에 머무르고, 학생에 머무르는 시대는 지났으며 지역사회와의 연대를 기반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전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함은 우리의 소명이다. 대학의 개혁은 대학의 원 이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학적 탐구의 정신을 관철하는 것에 의하여 근원적인 물음을 발하고 근원적으로 알려고 하는 의욕을 자극해 나가는 동지적 결합조직으로 부활하는 것만이 대학의 살길이라고 하겠다. 대학이 지나치게 현실에 집착해서는 안되며 미래를 향하여 탐구하고 계획하는 기능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 학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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