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심훈 교수의 '식탁위의 인문학']수퍼곡물 옥수수에 걸맞는 수퍼대륙이 아메리카 캐나다, 미국, 브라질 등 거대 국가 즐비 마야, 잉카, 아즈텍 뒤이은 21세기 수퍼국도 미국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9.08  11:01:0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페루, ‘성스러운 잉카의 계곡’이라 불리는 지역의 주말 장터에 나온 다양한 종류의 옥수수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아시아 대륙에 쌀이 있고, 유럽 대륙에 밀이 있다면, 아메리카 대륙에는 옥수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물에 의지하는 쌀 문명을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비트 포겔이 ‘수력학(水力學)’ 문명이라고 웅변한 것처럼 수퍼 곡물이나 다름없는 작물이 바로 옥수수이기에 아메리카 문명을 ‘수퍼’ 문명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듯하다. 실제로 중남미에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잉카 문명의 정수, 마추픽추나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 등은 모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건축물들로 유명하다. 이와 함께, 캐나다,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국가들이 그득한 곳 또한 아메리카 대륙이다. 참고로, 국가 면적에 있어 캐나다는 세계 2위, 미국은 3위, 브라질은 5위, 아르헨티나는 8위, 멕시코는 14위다. 여기에 21세기의 초강대국이 미국이라는 사실도 ‘수퍼 곡물에 수퍼 문명’이라는 조합을 어색하지만은 않게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미 역사를 살펴보아도 귀하게 대접 받아 마땅한 곡물이 옥수수이다. 제임스 타운과 미국을 구한 것이 옥수수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주의 제임스타운은 1607년 북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영국 주민의 정착지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디즈니의 ‘포카혼타스’는 이 제임스타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존 스미스라는 백인 선장을 구출한 백인 추장의 딸이 바로 ‘포카혼타스’였다. 제임스타운 부근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은 영국에서 막 건너온 이방인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옥수수와 고구마 심는 법을 알려주었다. 청교도들이 탄 메이플라워호 역시, 길을 잘못 들어 자신들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한겨울을 나야 했다. 이때 추위 속에 굶주린 청교도들을 구한 이들 또한 인디언들이었다. 미국 인디언들은 옥수수 씨앗을 나눠주며 재배 방법을 알려주었고 무사히 겨울을 난 청교도들은 다음 해에 추수한 옥수수로 감사제를 올렸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탄수화물의 절대적인 공급원으로 역할 했던 옥수수는 원주민들로부터 대대손손 귀한 대접을 받아 왔다. 옥수수의 이런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 그네들의 전설과 신화이다. 아마존 유역에서는 하늘의 별이 여신으로 현신해 인간에게 옥수수 심는 법을 가르쳤다고 믿고 있다. 에콰도르 지역에서는 여자로 변한 앵무새가 인간에게 옥수수 씨앗을 건네주었다고 하고 북미 대륙의 나바호족은 옥수수가 신비의 암컷 칠면조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로드아일랜드의 인디언들은 까마귀가 떨어 뜨려주었다고 전하고 세미놀족은 옥수수 신인 파스타치가 가지고 왔다고 여긴다. 또 톨텐족은 깃털이 있는 뱀이 주고 간 선물이라고 믿는다. 어느 지역의 신화나 전설이건, 신이나 신의 동물을 통해 옥수수를 건네받은 것은 똑같다.

생각해 보면, 한국과 일본 신화에서 신이 건넨 물건은 거울이나, 옥, 청동검 같은 신물(神物)이었던데 한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옥수수가 신의 선물이었다. 식물학자들에 따르면, 옥수수는 쌀이나 밀, 보리 등 자연의 일반적인 곡물들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수수께끼와 같은 식물이라고 한다. 모르긴 해도 그 같은 특성이 옥수수에 관한 창조 신화를 다양하게 만들었으며 또 창조 신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대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서는 옥수수를 숭배 대상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수퍼맨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하듯이 옥수수에게도 극복할 수 없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시간에는 옥수수의 어마어마한 지력(地力) 소모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옥수수가 지닌 또 다른 약점은 없을까? 지력이야 땅을 놀리면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옥수수가 지닌 또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은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가 결핍돼 있다는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옥수수 스스로는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미노산이라는 성분이 있다. 간단히 말해, 인체의 3대 영양소 가운데 하나인 단백질을 구성하는 핵심 입자다. 그리하여 아미노산들이 모인 것이 우리가 아는 단백질이 된다. 이러한 아미노산은 결합 구조에 따라 수십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이다. 참고로, 트립토판은 고기에 무척 많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인간이 고기를 섭취하게 되면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게 된다.

일반적인 트립토판은 체내에 흡수되면 우리 몸에서 생산해 내지 못하지만 3대 영양소와 함께 반드시 섭취해야만 하는 비타민으로 변환된다. 그리하여 고기만 먹어도 자연스럽게 단백질은 물론, 비타민까지 챙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옥수수에 들어있는 트립토판은 안타깝게도 다른 화학 물질과 결합돼 있어 그 결합을 끊지 않으면 체내에서 비타민으로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고기, 우유, 콩 등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고 옥수수만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경우에는 비타민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타민이 바로 ‘니아신’이라는 이름의 ‘비타민 B3’이다. 결국, 여타 단백질의 보충 없이 옥수수만 줄창 먹어 대다가는 니아신 결핍증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니아신 결핍증은 어떤 질병을 유발하게 될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비타민 A가 부족할 경우에는 야맹증과 안구 건조증, 비타민 C가 부족할 경우에는 괴혈병에 걸리게 된다. 괴혈병이란 모세 혈관이 약해짐으로써 피부나 모종 등에 쉽게 출혈이 생기는 현상으로 잇몸에서 피가 나고 잇몸이 물러지며 치아가 흔들거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니아신이 부족할 경우에는 피부염과 설사, 심하면 정신 이상까지 유발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미를 정복한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옥수수를 유럽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런데 스페인 정복자들을 비롯해 유럽인들은 옥수수를 미개한 인디안들이 먹는 음식, 즉 '인디안 밀'이라며 주식으로 먹는 것을 꺼려했다. 사실, 스페인 정복자들 스스로가 중남미에서 옥수수를 말에게 먹였다. 원주민들이 그것을 신에 대한 모독이라며 매우 언짢아했던 것은 당연지사다. 유럽인들이 ‘아시아인들의 밀’이라며 쌀을 말에게 먹인다고 상상해 보라. 아니면, 우리가 역으로 ‘유럽인들의 밀’이라며 소와 돼지에게 밀을 먹인다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 정복자로 군림하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유럽인들의 오만함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참, 유럽 사람들은 더 나아가 옥수수를 '터키 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 이들이 사탄처럼 혐오하던 이들이 이슬람인들이었고, 그 이슬람의 대표 주자가 바로 이스탄불을 점령하고 있던 터키였기에 그들이나 먹는 음식으로 폄하했던 것이다.

그렇게 유럽에서 혐오식품으로 취급되던 옥수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식탁에 오르는 기회를 얻기 시작한다. 18세기 들어,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네덜란드와 영국에 제해권을 내주며 무역이 급격히 쇠퇴하고 국가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자 빈민들의 옥수수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자연 재해까지 겹치며 밀이 귀하게 되자, 옥수수는 더욱 그 입지를 넓혀가게 된다. 그리하여 고기를 전혀 섭취하지 못한 채, 옥수수만으로 탄수화물을 충족하던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옥수수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서히 병에 걸려갔다. 정신이 멍해지는 가운데 얼굴에 나비 모양의 반점이 생겨 '나비 인간'으로 불린 펠라그라병 환자가 그들이었다. 결국 이 병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1730년대의 일이다. 한데, 이러한 펠라그라병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과연 어찌하여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올해의 한림인’, 한자리에 모이다
2
소속변경ㆍ복수전공 및 전공배정 신청 25일까지
3
[한림의 천사를 찾아서] 아이들에게 사랑을 채워주는 ‘채움천사’
4
우리 대학 글로벌협력대학원, 세계를 향해 ‘약진 앞으로’
5
정행인의날:빛과밤 ‘동문멘토링’ 인기
6
대학생 2명중 1명 아침식사 걸러
7
내년 총학ㆍ동연 회장단, 각 두 팀씩 출마 ‘각축’
8
단과대학선 인문대 등 2곳만 두팀간 경쟁
9
[심훈 교수의 식탁위의 인문학] 식인 풍습에서 인류 구원해준 고마운 닭 매년 600억 마리 도축되는 최고 단백질원
10
[한림원] 인슐린에 의한 간암세포 성장 촉진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찬미(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