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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시인으로 살다 간 한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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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3  1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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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기의 시인 이달(李達: 1539-1612)은 서얼로 태어나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주지 않고 평생을 시만 쓰다가 떠난 시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으며 특히 한시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지어 우리 문학사에서는 최경창·백광훈과 함께 그를 소위‘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고 부른다.

그는 서얼 출신이라는 평생의 울분을 달래기 위해 지금의 강원도 원주 손곡리(蓀谷里)에 은거해 호를‘손곡’이라 하고 시창작과 제자교육으로 여생을 보냈다. 특히 그는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에게 시를 가르쳤는데, 이들은 이달을 통해 서얼 차별의 부당함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달에게 시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는 단 하루도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삶의 구원자요, 살아가는 힘이요, 또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당나라 때의 저명한 시인 맹교는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의 재주를 아끼고 그의 불운을 안타까워했던 한유는 그를 떠나보내며 유명한 말을 남긴다. “마음에 평안하지 않음이 있어야 울게 된다.[不平則鳴]”시인이 시를 쓰게 되는 근본적인 동기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말한 사람이 있었을까? 다음 시는 이달이 남긴 시편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 중 하나이다.

외로운 학이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추운 밤에 다리 하나를 들고 서있다
가을바람 괴로이 대숲에 불어 대는데
몸에 가득 가을이슬 맺혀있다.

獨鶴望遙空 夜寒拳一足
西風苦竹叢 滿身秋露滴
『蓀谷詩集』권5,「畵鶴」

‘화학(畵鶴)’이라는 제목의 시다. 제목은 학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시인 본인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시는 학 한 마리가 홀로 저 멀리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조선시대에 서얼들은 외로운 존재였다. 양반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중간자였다. 또한 서얼들은 언제나 소수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항상 홀로였고 외로웠다.

제2구는 이 시의 절정이다. 어느 가을날 추운 밤에 학이 다리를 들고 서있다. 얼핏보면 이는 학의 평상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학은 보통 다리 하나를 몸속에 숨기고 나머지 다리 하나로만 서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이 세상에 불안정한 자세로 서있는 시인의 모습이자 서얼들의 자화상이다.

마지막 3-4구는 차가운 바람도 모자라 이제는 가을이슬까지 온 몸 가득 뒤집어 쓴 학을 그리고 있다. 아마도 대숲에서 학은 홀로 깨어 밤을 지샌 것 같다. 신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 고통을 온 몸으로 견디는 것밖엔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시를 쓰는 일이었다. 시는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유토피아요, 구원의 세계였던 것이다.

   

 

 

   
 

/하정승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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