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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불가역적’에서 ‘돌이킬 수 있음’으로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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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1  07: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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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1월 21일 수요일,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로 화해치유재단이 해산 절차를 밟게 됐다. 이름과는 다르게 불화와 상처의 코드가 된 재단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결정은 다행스럽다. 그간 재단은 존재만으로도 피해 당사자들에게 돌이키기 힘든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사실 2015년 당시 우리 정부와 일본은 어느 날 불쑥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들이대며 평생 말 못 할 것 같았던 침묵의 시간을 깨고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와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었던 분들에게 또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이후 끝내 살아생전 어떤 뉘우침과 용서의 청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머님들의 영혼은 어떻게 위로받을 수 있겠는가!

이제 재단의 해산을 선언했을 뿐 청산절차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듣기까진 아직 오랜 투쟁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1992년 1월 집회가 시작한 후 현재까지 1362회, 26년간 매주 수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지속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힘없이 가물어가던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는 위대한 역사적인 작업이었다. 전쟁범죄에 대한 기록을 철저히 감추고, 기억의 저항을 무력화하려 시도하던 일본은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온몸을 던져 기록해온 ‘기억의 항쟁’을 이길 수 없다는 인식하에, 양국 정부 간의 합의라는 새롭고도 파렴치한 ‘기록’을 가공해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시도는 힘이 빠진 것 같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불가역적이라는 말로 부당한 속내를 드러낸 합의를 원점으로 돌림으로써, 침묵을 깨고 말이 되어 나와 그 누구도 ‘번복할 수 없는’ 위안부 할머님들의 진실한 증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증명한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불가역적 합의’라는 문구는 매우 일본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자료에 의하면 ‘-적’이라는 접미사에 대해 “개화기 이전 우리말에서 접미사 ‘-적’의 쓰임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접미사가 붙은 말이 용법이나 의미 면에서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어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 때문에 일본어식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적’이 붙은 말들이 활발히 사용되고 있어, ‘-적(的)’ 대신 쓸 말이 뚜렷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그 쓰임을 잘못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다만 ‘-적’이 붙은, 어려운 한자어는 순화하여 쓸 것을 권하고 있다. 말하자면 ‘불가역적(不可逆的)’이라는 표현은 ‘돌이킬 수 없는’과 같이 풀어 쓸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이 칼럼에서도 접미사 ‘-적’을 완전히 피하고 글을 쓰기 어려웠다. 그만큼 36년간의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시간임이 분명해 보인다. 내년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생존해 계신 할머님들께 무언가 위로가 되고 그분들의 한을 풀고 모진 시간을 어느 정도나마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생기는 원년이 되길 기원한다.

/이황석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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