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Google Arts&Culture

누구의 수염일까? 주인공은 조선의 21 대 임금 영조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 화는 한국 전쟁 와중에 불타버려 대부분 사라졌는데, 다행히도 영조의 것은 남았 다. 자세히 보니 수염 한올 한올은 불론, 흰수염까지 정밀하다. 한국사 시간에 ‘조 선시대 초상화는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라고 들었던 설명이 눈에 쏙 들어온다.

이 사진은 초상화를 어마어마한 해 상도로 스캔할 때 가능한데, 구글의 Arts&Culture 사이트에서 가져왔다. 몇 년 전에 ‘안방에서 고흐의 그림을 붓 터 치까지 볼 수 있다’고 화제가 됐던 바 로 그 사이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상 이 막혀버린 요즘, 가상 박물관 또는 가 상 미술관처럼 들러보면 일품이다. 기사 를 읽은 후에 직접 들어가 어마어마하게 구축된 세계 예술품을 감상하시길.

여기서는 감상보다 생각을 해보자. 영조의 초상화에서 수염을 볼 수 있게 된 사실은 예술품에 현미경을 장착한 것이 다. ‘Google Earth’에서 피라미드를 확 대해 보고, VR로 심해를 경험하는 일은 망원경에 해당한다. 판타지에서나 가능 했던 천리안과 축지법처럼, 인간의 오감 은 시공간에서 크게 자유로 워졌다. 그 자 유는 인간에게 선(善)한 과일 일까. 악(惡)한 과일일까.

또 하나 드 는 생각. 안방 박물관이 가능 해지면 진짜 박물관은 어떻 게 될까. 박물 관 종사자 중 에 ‘전시된 실 물과의 교감 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이 아직까 지 만만찮다. 일리가 없지 않은데, 문제 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까지 돈 들이 고 발품 팔아봐야 <모나리자>는 잠깐 밖 에는 볼 수 없으니, 구글로 안방에서 충 분히 감상하시라’는 주장 앞에 입지가 좁아지리라는 점이다.

박물관은 울며 겨자먹기로 구글의 스 캔 제의를 받아들여 사이버 공간에서 만 나는 일은 이제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과정의 끝에는 박물관이 구글에 대한 종 속이 있는 게 아닐까. 이게 박물관 만의 운명일까. 대학 은? 정부는? 유 튜브에 창조물 을 올리는 개 인들은?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깊어 지는 법. 요즘 식으로 비유하 면 슈퍼 히어 로 있는 곳에 슈퍼 빌런 나 온다 할까. 감 각은 유례없이 확대됐지만 선 택편향을 늘었 고, 구글이 만능이 되는 순간 기존 정보 들의 종속성도 깊어진다. 구글 번역기가 언어 장벽을 넘게 하지만, 인간을 여러 언어로 갈라치기 했던 신(神)의 의지에 반해 구글은 새로운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게 아닐까.

/한림과학원 이경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