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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물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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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9  14: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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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분자입니다. 맞습니다. 산소 하나와 수소 두 개가 결합한 단순한 분자죠. 지구만큼 액체 상태의 물이 흔한 행성은 태양계에 없습니다. 지구 표면의 70% 정도를 뒤덮고 있는 대양은 우리의 주무대입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 현상의 근원에는 바로 우리가 있죠.

전 적도에서 멀지 않은 태평양의 따뜻한 해류 속에 동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기후 현상은 예측하기도 힘들고 다양한 변수와 요동이 지배하는 불확실성의 세계입니다. 제가 놀던 곳 근처의 기압이 낮아지면서 그곳의 공기를 위로 끌어올리더군요. 비어가는 그곳으로 주변의 공기들이 다시 몰려들며 수증기도 함께 몰아서 올려 보냅니다. 바로 태풍의 눈이 만들어지는 현장입니다.

바다에서 우리 물분자들은 조밀하게 모여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있으나 서로가 서로를 느끼고 당기며 액체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런 우리들을 떼어내 수증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따뜻한 바다는 그 에너지의 공급원이 됩니다. 잠열이라 불리는 에너지를 받아 힘차게 솟구친 우리는 고향 바다를 떠나 하늘로 솟구치며 태풍의 일원이 됩니다.

하늘로 올라온 우리는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다시 물방울로 응결됩니다. 이때 우린 해수면에서 흡수했던 에너지를 다시 내놓습니다. 그 잠열은 주변의 공기를 데우며 저기압의 상태를 강화합니다. 이것이 저 아래 바다에서 끊임없이 내 동료들을 수증기로 끌어올려 우리와 합류시키고 다시 잠열을 내놓게 합니다. 태풍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힘을 강화시키며 괴물과 같은 존재로 성장합니다. 태풍이 육지로 상륙해서야 힘을 잃기 시작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줄 수증기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강한 세력으로 성장한 태풍이 한반도를 향하고 있네요. 날씨 예측은 워낙 변수가 많고 카오스적 성격을 띠고 있어 태풍의 진로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구의 자전이 미치는 코리올리 힘과 기압분포가 태풍의 진로 예측의 기본이지만 이를 포탄의 궤적처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태풍이 휘몰아온 엄청난 비구름 속에 있던 나는 이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비로 내려갑니다. 저 아래 오래전 나를 바다로 안내했던 강이 보이네요. 태풍의 위력은 보통 원자폭탄 수십만 개 정도에 해당한다는군요. 엄청난 풍속과 수백 밀리미터에 달할 폭우가 저 아름다운 강산을 어떻게 할퀴고 지나갈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에 출몰하는 빈도는 더 잦아질 것이라 합니다. 급격한 기후 변화는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바다의 수온도 덩달아 올리고 있습니다. 따뜻해진 바다와 풍성한 수증기는 태풍의 씨앗이 만들어질 최적의 조건을 형성합니다.

해가 갈수록 줄어가는 북극의 얼음, 녹아내리는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 훨씬 잦아진 산불 역시 기후 변화에 동반돼 변해가는 지구의 모습입니다. 이제 지구인들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는지도 모릅니다. 나처럼 평범한 물분자가 수시로 태풍으로 변모하는 요즘이 기후 위기의 티핑포인트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노융합스쿨 고재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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