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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진(秦)의 국가 색은 검은색 2세 황제 호해는 성벽 온통 검은색으로 칠하려 해인도 힌두교의 여신, 칼리는 검은색 피부에 팔 8개 지녀 검을 ‘흑’과 검을 ‘현’ 모두 사물과 사람 형상 딴 상형문자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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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26  12: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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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의 신 칼리는 힌두교 으뜸신인 시바의 부인으로 이름에 걸맞게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온몸이 온통 까맣다. 사진은 인도의 한 전통 시장에 나온 칼리 여신의 탈. 검은색 얼굴에 빨간 눈매와 빨간 혀가 위압적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검은색과 관련된 신화에 대해 알아보겠다. 먼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경에서는 태초에 어둠을 가르는 빛이 있었다고 기술함으로써 어둠이 빛에 앞서 존재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터키에는 인류가 검은 산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어느 동굴 속에 사람 형상을 한 구덩이가 파이고 빗물이 흘러 그 구덩이에 진흙이 쌓였다. 진흙은 오랫동안 햇살을 받으며 조금씩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이윽고 9개월이 지나자 진흙은 인간으로 변하고 동굴에서는 최초의 인간 ‘아탐’이 나왔다.

인도로 눈길을 돌려보면, 무시무시한 여신 칼리가 온통 검은색 피부를 지녔음을 알게 된다. 칼리는 힌두교의 으뜸신인 시바의 부인으로 적들의 해골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은 채, 여덟 개의 팔에는 창과 칼, 뱀과 방패 등을 들고 있는 파괴의 신이다. 인류의 종말을 관장하는 칼리는 지금도 인도 동부의 캘커타를 중심으로 숭배되고 있으며 주술적인 성격이 강한 대중 신앙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신화도 어둠 속에서 시작한다. 태곳적, 하늘과 땅의 구분이 없는 검은 별 속에서 ‘반고’라는 이가 나타나 엄청나게 큰 도끼로 검은 별을 내리치며 둘로 쪼갰다. 그러자 가벼운 한쪽은 하늘이 됐고, 무거운 반쪽은 아래로 가라앉아 땅으로 변했다. 땅과 하늘이 다시 붙으려 하자 반고는 매일 3미터씩 키가 자라며 하늘과 땅 사이를 갈라 놓았다. 1만 8천년이 지나자 하늘은 끝없이 높아지고 땅은 엄청나게 두꺼워졌다. 반고는 하늘과 땅 사이를 지탱하다 기력을 소진하고 죽었는데 그의 육신 중 두 눈은 해와 달이 되었고, 뼈는 산, 피는 강과 바다가 됐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우주가 탄생했다고 믿기 때문일까? 네 개의 글자가 하나의 구절을 이루고 그런 구절들이 250개가 모이는 「천자문」(千字文)의 시작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현황(天地玄黃)’이다.
덧붙이자면, 후한 시대의 경학자 설신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검을 ‘현(玄)’은 ‘아직 덜 자란 아이’를 뜻한다. 하지만, 「한자어원사전」을 펴낸 경성대 하영삼 중국학과 교수는 설신의 풀이가 설득력이 약하다며 검을 ‘현(玄)’은 실타래를 그린 작을 ‘요(幺)’의 변형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작을 ‘요(幺)’는 가는 실 ‘멱(糸)’의 아랫부분을 생략한 형태이고, ‘멱(糸)’은 실 ‘사(絲)’의 반쪽이라고 설명하는 하교수는 실과 관련해 가장 획수가 적은 한자어 ‘요(幺)’가 검붉은 색으로 염색한 실타래를 일컫는다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란색 옥을 늘어뜨린 모양의 누루 ‘황(黃)’처럼 검을 ‘현(玄)’ 역시, 검은색 실타래의 형상에서 탄생한 상형문자다.

말이 나왔으니 검은색 한자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첨가하자면 검을 ‘흑(黑)’도 상형문자로서 얼굴에 ‘묵형(墨刑)’을 당한 사람을 그린 글자다. ‘묵형’은 잔인했던 여러 옛 형벌들 중 비교적 가벼운 형벌로, 얼굴에다 문신을 새기는 벌이었다. 거북이 등껍질 등에 새겨진 갑골문을 보면 사람 형상의 그림에서 얼굴에 십(十)자를 크게 그린 것이 검을 ‘흑(黑)’의 시초였다. 훗날 글자가 바뀌면서 몸통을 위시한 아랫 부분은 불탈 ‘염(炎)’으로, 윗부분은 네모꼴의 굴뚝이나 창문으로 모양이 바뀌어 불을 뗄 때의 그을음이 창문이나 굴뚝에 묻어 있음을 표시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설문해자」에서는 이 자형에 근거해 ‘흑(黑)’이 불에 그슬린 색깔을 말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한편, 검을 ‘흑(黑)’에서 파생된 글자로는 먹 ‘묵(墨)’을 들 수 있다. 검을 ‘흑(黑)’과 달리 형성문자인 먹 ‘묵(墨)’은 흙 ‘토(土)’가 의미부이고 검을 ‘흑(黑)’이 소리부로, 흙에서 나는 검은색 먹을 말한다. 이후, 그을음과 송진을 섞어 만든 붓글씨용 먹을 지칭하게 됐으며 서예나 회화를 비유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검을 ‘흑(黑)’과 관련해 현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로는 ‘흑묘백묘(黑苗白描)’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장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게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흑묘백묘’론은 이후, 중국 공산당의 시장 경제 정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중국인들이 정치에 있어서는 마오쩌뚱, 경제에 있어서는 덩사핑을 떠받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고 불과 40년 만에 G2 국가로 우뚝 선 중국 경제의 시발(始發)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으로부터 시작됐으니 말이다.

사실, 검은색은 중국사에서 빨간색, 노란색과 함께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삼원색의 하나이다. 먼저,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는 국색(國色)이 검은색이었다. 진시황이 국색으로 택한 검은색은 이른바 물의 색깔이었는데, 진나라가 무너뜨린 주 황실은 불의 나라였기 때문에 오행설에 따라 불을 제압하는 물을 숭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진나라 2대 황제였던 호해는 즉위하자 성벽에 검은색 옻칠을 함으로써 진나라의 위엄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했다. 이에 우전이라는 광대가 이를 비꼬며 매우 좋은 일이라 칭찬하면서 비용은 많이 들지 모르나 적은 쳐들어와도 미끄러워서 성벽을 기어오를 수 없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성벽에 옻칠을 한 후, 이를 말릴 건조실인 음실을 만들 도리가 없어 호해의 계획이 무리임을 넌지시 알림으로써 황제가 이 일을 포기하도록 유도했다. 옻칠을 한 제품은 건조실에서 말려야 제대로 광택을 냈기에 이러한 사실을 이용해 황제에게 일격을 날린 셈이다. 당시, 황제는 우전이 한 말을 듣고 웃으면서 계획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는 피살됐고, 우전은 한나라로 귀순했다가 몇 년 뒤에 죽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역사 속의 검은색에 대해 좀 더 알아 본 후, 예술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모두들 추석 명절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보내기 바란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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