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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유럽 국기에선 별로 찾을 수 없는 검은색 해 강한 중동과 아프리카에선 상당히 많아태극기에서도 건, 곤, 감, 리의 사괘 색은 검정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사무라이 의상이 검은색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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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07  11: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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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지하철 광고판에 부착된 일본 남성들의 전통 복장. 한국의 선비에 해당하는 사무라이들이 검은색 전통복을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자 촬영)

역사상 검은색을 높이 받든 나라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나라는 국색(國色)이 검은색이었다. 물의 덕인 수덕(水德)의 나라가 진이었는데 물의 색은 검은색으로 인식됐기에 물의 색이 곧 진나라의 색이었던 셈이다. 진나라는 오늘날 중국의 섬서성에 자리했으며 이곳은 중국 역사의 중심지였던 산동, 산서, 하북, 하남의 네 개 성(省)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진나라는 황하가 크게 굽이쳐 흐르는 곳 안쪽에 자리하며 최대의 곡창지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불어 중원으로 이어지는 진나라 동쪽에는 험준한 요새, 함곡관(函谷關)이 자리하고 있어 물과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형이 진나라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산과 함께 물은 진나라에 있어 더없이 고마운 존재였다. 해서, 진나라 사람들은 검은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 다녔으며, 훗날 진시황은 검은색을 통일 중국의 국색으로 정하고 의복, 깃발, 휘장에 전부 검은색을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만일 이 당시부터 국기가 존재했더라면 오늘날 빨갛기만 한 중국 국기가 검은색으로 대체됐을 법하다.

사실, 국기에 검은색을 사용하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유럽을 살펴보면, 기껏해야 독일과 벨기에, 그리고 에스토니아 정도가 눈에 띈다. 반면 유럽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색깔은 흰색과 빨간색, 그리고 파란색이다. 그런 맥락을 감안하면 세 가지 색깔이 수평으로 놓여 있는 독일 국기에서 검은색이 맨 위를 차지하는 것도 대단히 이채롭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검은색은 인권 억압에 대한 비참함과 분노를 나타낸다. 이와 함께 빨강은 자유에 대한 동경을, 노랑은 진리를 상징한단다. 반면, 독일 국기와 같은 색깔들이 사용되고 있는 벨기에의 경우는 검은색의 의미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벨기에의 국기는 ‘브라반트’라는 공작 가문의 문장(紋章)에서 유래됐는데 브라반트 공작 가문의 문양은 검은 바탕에 황금사자가 빨간 혀를 내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브라반트 문장의 검은색 바탕이 오늘날 벨기에 국기의 검정색 수직선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한편, 발트 3국 가운데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국기에서 검은색은 대지를 상징한다. 세 가지의 수평색 가운데 맨 위에 있는 파란색은 하늘을, 맨 아래에 있는 흰색은 지난 역사에 대한 상기를 의미하고.

해가 뜨거운 중동과 아프리카에 검은색이 상대적으로 많이 눈에 띄는 현상도 특이하다. 먼저, 중동의 경우에는 시리아,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이라크, 쿠웨이트, 예멘, 팔레스타인이 검은색을 자국 국기에 사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혹자는 검은색을 하얀색, 초록색과 함께 범아랍색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아프리카는 지구촌 약 200개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국가인 54개 국가가 몰려 있는 곳이다. 해가 뜨거운 가운데 국가도 많아서일까? 아프리카 역시, 검은색 국기가 많이 보인다. 먼저 북아프리카에서는 수단과 시리아, 이집트가 검은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중앙 아프리카에서는 남수단,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케냐, 앙골라, 우간다, 차드, 남아프리카에서는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이 검은색을 사용하고 있다. 범아프리카 색은 빨강과 노랑, 초록과 검정이라니 실로 곳곳에서 눈에 띄는 국기 색이 검은색이다.

검은색이 사용된 국기로는 태극기도 빼놓을 수 없다. 태극기는 빨강과 파랑, 흰색과 함께 검은색을 사용하고 있는데, 검은색은 사괘(四卦)인 ‘건’ ‘곤’ ‘감’ ‘리’의 채움색으로 동원되고 있다. 사실, 태극 문양은 원래 흰색과 검은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흰색은 양, 검은색은 음을 상징하고 있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태극의 색깔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돼야 한다. 하지만, 태극기가 만들어진 당시, 세계의 국기를 참조한 박영효는 태극 문양을 빨강과 파랑으로 채택하고 흰색은 바탕, 검은색은 괘로 정함으로써 오늘날의 태극기가 탄생됐다.

그렇다면 국기가 아닌 실생활에서 검은색을 사용해온 국가로는 어디를 꼽아볼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인류사에 있어 검은색을 보편적으로 사용해 온 국가로는 일본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과는 반대로 검은색을 숭상해온 나라가 일본인 까닭에서다. 특히 지배 계층인 사무라이의 경우, 검은색 옷을 입는 전통을 지니고 있어 필자가 일본에서 이를 처음 접했을 때,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한국은 백의민족이라 칭할 정도로 하얀색을 사랑했건만 이웃나라 일본에선 검은색이 지배계층의 색으로 대접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상류층 여성들이 치아를 검게 물들이고 있다는 문화적 사례도 일본을 방문한 여러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폭력적인 집단의 색깔이 검은색이었다는 것은 과거뿐 아니라 현대에서도 수많은 사례들이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자원입대자로 구성된 선봉 진격부대 ‘아르디티’가 검은 셔츠를 입었다. 이들은 전후 국제연맹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했는데, 그들의 검은 옷은 이후 무솔리니의 엘리트 경호부대 ‘무스케티어’의 유니폼이 됐다. 훗날 이들의 검은색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운동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 물론, 무솔리니 역시 검은 옷을 애용했다. 검은색은 또한 파시스트가 주도하는 여러 국가 행사에서 자주 동원됐다. 하인리히 히믈러의 나치 친위대 SS는 대중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검은 제복을 입었으며, 영국에서도 잠시 존재했던 파시스트 연맹도 검은 옷을 입었다.

그럼, 다음에는 예술 속의 검은색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어느덧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부쩍 벌어진 일교차 속에 감기 조심하기 바란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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