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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도쿄대 교수 이시하라가 적록색맹 검사표 만들어 운동장, 도박장, 병원은 물론 달러마저 제패한 녹색군의관 당시 군 요청으로 정확성 높은 색맹 검사표 만든 이시하라 달러가 초록색된 이유는 화학, 물리적 저항에 가장 강한 색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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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5.29  07: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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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사진은 1달러짜리 지폐의 앞면과 뒷면. 20세기부터 지구촌의 기축 통화로 등장한 달러는 1929년부터 초록색 잉크로 인쇄돼 독특한 색감을 자랑한다.(이미지 출처: 구글)

지난 시간에는 적록 색맹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번엔 그 후속편과 함께 초록색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보았다.

먼저, 색맹을 판별하는 검사는 보통 초등학교 신체 검사때 이뤄지는데, 이때 ‘색맹 검사표’라는 이름의 책을 들여다보면서 수많은 색색의 자그마한 원들 사이에서 다른 색깔로 이뤄진 원들이 만들어내는 숫자를 만나게 된다. 물론, 적록 색맹인들에게는 이 가운데 특정 숫자들이 보이지 않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가장 오래됐으며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이 색맹 검사표가 도쿄대 교수이자 안과 의사였던 일본인 시노부 이시하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발명 당시, 군의관이기도 했던 이시하라는 이전의 색맹 검사표가 적중률이 낮아 이를 보완한 검사표를 1917년에 출판했으며 검사표의 우수성으로 인해,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각설하고 우주에서 보면 ‘푸른 구슬’처럼 보인다 하여 ‘블루 마블’로 불리는 지구는 정작 지상에서 녹색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그린 마블’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극지와 사막을 제외하면 육지의 대부분을 장식하는 녹색이 적록 색맹인들에게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참고로, 사람과 몇몇 동물을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대부분의 생물들은 우리와 같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쨌거나 초록색은 산과 들, 정글과 밀림 같은 자연뿐만 아니라 극적인 승부가 엇걸리는 도박판과 경기장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필드로 알려진 야외 운동장에는 천연잔디 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게 마련이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1990년대 초, 필자가 20대 중반이던 시절, 필자는 유럽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당시, 여러 나라를 거쳐 스위스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필자의 눈에 비행장 인근의 초록색 잔디 축구장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는 천연 잔디구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기에 그러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참으로 신기하게 한참 바라봤던 기억에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에서도 여기저기에 한두 개씩 잔디구장 또는 인조잔디 구장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도 초록색 잔디는 시나브로 익숙해지게 됐다. 더불어 지금은 초록색 잔디 운동장들이 더 이상 낯설지가 않아 초록색 구장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역시, 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비단 운동장뿐만이 아니다. 도박장의 테이블 역시, 블랙잭이든 바카라든 트럼프 카드와 주사위가 놓여지고 던져지는 테이블들은 온통 초록으로 치장돼 있어 도박인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과 함께 행운을 부른다는 암시를 걸고 있다.

초록색은 심지어 병원에서도 사랑받는 색깔이다. 한때 외과의사들은 평상복 차림으로 수술을 했지만 청결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부턴 하얀 앞치마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흰 앞치마는 어떤 색보다 피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였고 이 때문에 수술장은 마치 도살장처럼 보여지곤 했다. 시각적으로도 빨강과 흰색은 서로 대비되는 색깔이기에 오랫동안 이를 바라보면 집중력이 흐트러뜨지며 눈도 쉬이 피곤해졌다. 이에 따라 제시된 해결책이 초록색 수술복이었다. 초록색은 빨강색의 보색이기 때문에 초록색 수술복에 피가 묻어도 피는 검게 보였고, 그 결과 눈이 받는 부담도 훨씬 줄어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운동장 규모를 축구장에서 탁구장과 당구장으로 옮겨와도 여전히 초록색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런 고로 인류가 활약하는 모든 장소는 초록색에 의해 지배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전통적으로 비옥함을 상징했던 초록은 유난히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깊은 사랑을 받아온 색이다. 식민지 이전에 초록은 중남미에서 비옥함을 상징했으며, 멕시코의 아즈텍인들은 케찰이라는 새의 풍성한 무지갯빛 초록 깃털을 풍요로움의 표식으로 삼았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미국의 달러 지폐가 녹색이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메리카에 근거를 두고 있는 미국이 중남미의 전통을 이어받은 셈이라고나 할까? 인터넷을 뒤져 보니, 미국에서 녹색으로 달러를 찍어내게 된 것은 1929년부터인데 당시 미 조폐공사에서 화학적, 물리적 반응에 가장 저항력이 강한 색이 녹색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녹색 잉크로 지폐를 찍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 인류 문명에 있어 패권 국가 미국의 지폐마저 평정한 초록색이 색깔의 진정한 왕자라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초록색이 한국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 하나 더. 초록색이 온라인 포털 사이트의 패자(霸者)인 ‘네이버’의 상징색인 까닭에서다. 1999년에 첫선을 보인 ‘네이버’는 창립 초기,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썼으며 그 때문에 ‘네이버’의 로고인 모자 역시 유치원생의 노란 모자처럼 생겼었다. 이에 안팎에서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네이버’는 결국 상징색을 녹색으로 바꾸며 녹색창으로 한국 인터넷을 평정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어떤가? 이 정도면 인류 문명사가 가히 초록색으로 시작해서 초록색으로 끝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그럼, 이것으로 이번 학기의 초록색 여행을 마치고자 한다. 이제 곧 기말고사다. 모두들 마지막까지 코로나와 관련해 건강을 빈틈없이 잘 챙기기 바라며 기말고사도 잘 치르기 바란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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