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색깔의 인문학] 英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랑한 색, 보라 대관식 때도, 장례식 때도 줄곧 애용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10.30  09:26:1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유럽서 ‘사치금지법’ 폐지되자 비로소 일반인들도 착용 가능해져
대학 졸업복에 보라색 사용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보라색 한풀이

   
▲ 사진 설명. 졸업식에서 보라색 가운을 걸친 졸업생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가 않다. 사진은 뉴욕대의 한 학생이 사진 공유 사이트인 위키피디아 커먼스(Wikipedia Commons)에 올린 자신이 졸업식 사진. 금테로 장식한 보라색 가운이 인상적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소개하고 로마가 채택한 ‘색깔의 왕’, 보라는 중세 유럽에서도 왕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대영 제국의 기초를 닦은 엘리자베스 1세는 1559년에 거행된 자신의 대관식 무도회에서 보라색 옷을 입었다. 물론 44년 뒤인 1603년, 그녀가 사망했을 때에도 보라색 벨벳 천이 그녀의 관을 감쌌다. 당시, 보라는 왕족에게만 허용됐으며 공작과 백작, 후작은 망토 안감에 한해 보라색 사용이 허용됐다. 이윽고 17세기 들어 유럽 전역에서 ‘사치금지법’이 폐지되자 비로소 주교와 대학 교수, 박사 학위 소지자를 비롯해 여타 귀족들도 보라색을 사용할 수 있었다. 서울대를 비롯해 국내외 유수의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의 졸업 가운에 보라색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동양의 보라색은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 먼저 중국의 보라색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 ‘바이두’를 찾아보니, 중국 역시 유럽처럼 보라색이 제왕과 관련된 사물을 일컫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더불어 도교에서는 도가 사상의 창시자인 노자가 보라색을 지니고 있었다 해 보라색을 숭상하고 있다. 그리하여 도교 전설상의 가장 높은 신선은 ‘자황(紫皇)’, 즉 ‘보라색 황제’, 자황이 머무는 궁궐은 ‘자궁(紫宮)’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 도교는 황제들의 비호 아래 세력이 강해지면 중국 황실에도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관청과 의복, 의관이 보라로 염색되곤 했다. 황제의 정실 부인인 황태후가 거처하는 방도 보라색으로 꾸며져 ‘자방(紫房)’이라 불렸다. 그래서일까? 보석 가운데 석영의 일종인 ‘자수정’은 보랏빛 우아함으로 인해 중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으며 보라색 옥 역시, 상서로운 물건으로 여겨져 왔다.

보라색 구름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라색 구름이 나타나면 중국인들은 성군이나 성현이 곧 출현할 것으로 여겼다. 특히 보라색 기운은 동쪽에서 온다고 믿어졌으며 그런 까닭에 자신들을 해가 뜨는 나라라고 믿었던 일본에서는 중국 문화를 계승해 보라색을 숭상했다. 때문에 지금도 일본 황실에선 보라색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니, 중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보라색은 선진(先秦) 시대 한비(韓非)의 저서, 「한비자」에 나온다. 선진 시대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직전의 시기로 법가 사상의 거두, 한비자는 진시황의 천하 통일에 결정적인 정치 철학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그런 한비의 저서 「한비자」 중 ‘외저설편 상(上)’이란 곳에서는 춘추 시대의 첫 패자(覇者)가 된 제(齊)나라 환공(桓公)에 얽힌 일화 한 토막이 소개된다. 당시, 제환공이 보라색 옷을 즐겨 입자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보라색 옷을 따라 입게 되어 흰 비단 다섯 필로도 보라색 비단 한 필을 바꿀 수가 없을 정도로 값이 치솟았다는 고사(古事)가 그것이다. 그런 까닭에 보라색은 사회 질서를 어지렵히는 요망한 색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때문에 전한(前漢) 왕조를 전복하고 ‘신(新)’이라는 왕조를 개창했다가 곧 죽임을 당한 왕망(王莽)에 대해 후한 시대의 역사가 반고(班固)는 그가 붉은색을 해치는 자색(紫色)과 같다고 비판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자색이란 보라색의 한자어이다.

돌이켜 보면, 보라색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이는 비단 반고만이 아니었다. 일례로 「논어」(論語) ‘양화(陽貨)’ 편에는 “자색이 붉은빛을 탈취함을 증오한다”는 공자의 말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서 공자는 요란한 정(鄭)나라의 음악이 궁중악인 아악(雅樂)을 몰아내고 있다며 이는 마치 자색인 보라색이 붉은색을 해치는 일과 비슷하다고 언급한 것이다.

사실, 보라색을 정색(政色)이 아닌 간색(間色) 또는 잡색(雜色)으로 간주한 것은 보라색이 빨간색과 파란색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데서 유래한다. 이와 관련해 수(隋)나라의 소길(蕭吉)이 쓴 음양오행서 「오행대의(五行大義)」에서는 다섯 가지 정색(正色)으로 푸른색(蒼色), 적색(赤色), 황색(黃色), 백색(白色), 흑색(黑色)을 꼽으며 그에 대비되는 다섯 가지 간색(間色), 즉 잡색 중 하나로 자색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붉은색을 흐리는 아류(亞流)로서 인식할 때의 평가일 뿐, 그 진귀함과 오묘함으로 인해 보라색은 도도한 중국사 속에서 대부분 큰 사랑을 받아왔다. 더불어 보라색에 대한 사대부와 지식 계층의 간헐적인 멸시는 보라색이 지닌 희소성과 그에 따란 사치 풍조를 경계하기 위함에서였고.

그렇다면 이쯤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유럽에서는 보라색 염료 생산이 지극히 까다롭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요구했기에 이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왜 보라색을 사랑한 것일까? 실제로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는 자초(紫草)라는 이름의 식물을 통해 보라색 염료를 어렵잖게 얻을 수 있었다.

희소성이나 가격 면에서 그다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는 보라색은 북극성의 색깔이 보라색을 띤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널리 사랑받아 왔다. 말하자면, 하늘의 천자가 북극성이요, 북극성의 색깔이 보라색이기에 도교가 됐든 중국 황제가 됐든 지상 최고의 색도 역시 보라색이 된 것이다. 북극성에 대한 이런 관념은 공자의 어록에서도 단적으로 증명된다. 「논어」 위정 편의 첫머리에 나와 있는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 이중성공지(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란 구절이 그것으로, “정치란 덕으로써 행해야 하며, 그럴 경우 북극성을 좇아 모든 별들이 그 주위를 돌 듯 뭇 백성이 어진 군주를 따를 것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중국의 보라색에 대해 마저 알아보기로 하자. 어느덧 11월이 시작됐다. 모두들 새로운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별탈없이 잘 지내도록 하자.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전공박람회, 53개 전공 1천여명 상담 진행
2
[보도] 학생생활관 1인 사생실 시범 운영
3
[보도] 해외 취업의 길잡이 ‘글로벌 주간’ 특강
4
[보도] 한강을 따라 인문학을 되짚어 보다
5
[보도] “자기 삶의 주체가 돼 방향성 잡아가야”
6
[보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25일, 명사특강 열려
7
[기획] 전공능력 중심 교육체계, ‘Hi FIVE’ 운영된다
8
[보도] 동아리들의 잔치 ‘클립 오락관’
9
[보도] 봉사시간 채우고 학점 받자 ‘자율형봉사인증’
10
[시사] ‘루나ㆍ테라’ 폭락… 무너지는 코인 시장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