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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20세기 들어서는 반항과 저항의 상징이 된 보라 경찰국가선 보라색 물대포로 시위대 검거하기도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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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05  07: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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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2003년 베를린에서 공연했던 영국의 록그룹 ‘딥 퍼플’의 모습. 자신들의 그룹명 답게 무대를 보라색으로 꾸민 것이 인상적이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보라색 합성염료 이후, 얼마 안돼 2000여개 합성 염료 등장
파장 짧은 보라색보다 파장 더 짧은 자외선은 에너지 가득


빅토리아 여왕 시기는 보라색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재임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보라색 유행이 절정에 달해 상류층 여성들이라면 보라색 사용을 의상 이외로 넓혀가며 자신의 가문을 과시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화룡점정이 미 시카고 태생의 메리 빅토리아 라이터였다. 훤칠한 키에 도도하기 그지 없던 그녀는 커즌 남작과 결혼해 남작 부인이 됐으며 훗날 남편이 인도 총독으로 부임하자 인도에서 가장 높은 여성이 되었다. 그런 메리 라이터는 보라색에 광적으로 집착해 식탁보는 물론, 집안의 꽃들도 보라색으로 꾸몄다.

한편, 전 세계를 보라색 열풍에 빠뜨리며 억만장자가 된 퍼킨의 성공담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많은 화학도들로 하여금 합성염료 시장에 도전하도록 강하게 유도했다. 이후, 세계 염료 시장은 그로부터 불과 수십 년 만에 약 2,000종의 합성염료가 등장하는 것을 목격했고. 재미있는 사실은 그 과정에서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과 각종 비료, 향수와 의약품, 폭약과 식품 방부제 등이 줄줄이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보라색은 이전의 신비로움과 우아함, 슬픔과 우울함이라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이념적으로 새로운 상징을 부여받게 된다. 덧붙이자면, 이전까지 이념과 연관되는 대표색이 공산당의 빨간색과 평화의 흰색이었다면 1960년대 중반부터는 보라색이 반항과 저항의 대표색으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미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한 반전 운동으로 기성세대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히피 문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보라색은 ‘반항’과 ‘탈출’, ‘저항’과 ‘반발’의 색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더불어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영국의 록 그룹, ‘딥 퍼플’의 등장이었다. ‘짙은 보라’라는 의미의 ‘딥 퍼플’은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개척자인 동시에 이들 장르의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뮤지션으로서 1968년, 영국에서 결성됐다. 이를 전후해서 각종 집회와 시위에 보라색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한 가운데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퍼플 헤이즈(보라색 안개)’라는 노래로 몽환적인 가사를 전달하며 보라색은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이한다.

보라색 안개가 자신의 뇌를 가득 채우고 있다며 낮인지 밤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몽롱한 의식 속에 매일을 보내는 어느 한 젊은이의 일상을 노래했던 지미 헨드릭스의 ‘퍼플 헤이즈’는 마치 대마초를 피운 듯한 느낌의 가사 전달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더불어 이에 호응하듯, 패션 산업은 재빨리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통용되는 양성용(兩性用) 보라색 의료를 내놓으며 보라색 돌풍에 가세하게 된다. 당대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톰 울프는 이 시기를 ‘보랏빛 시대(The purple decade)’라고 일컬으며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보라색은 그 절정을 맞이한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미디어를 앞세운 기성세대들의 비판으로 저항 문화가 급격히 사그라들면서 보랏빛 유행도 빠르게 퇴색했다. 그럼에도 보라색은 간헐적으로 꾸준히 등장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곤 했다. 지미 헨드릭스가 죽은 지 15년 뒤, 그의 후계자라는 평을 받았던 미국 가수 ‘프린스’는 온통 보랏빛 차림으로 ‘퍼플 레인’이라는 싱글 앨범과 영화를 함께 들고 나타나 이전보다 칙칙해진 80년대식 보랏빛 열풍을 일으켰다. 참고로 ‘퍼플 레인’은 1984년 작품으로 프린스의 최대 히트작이며 자신이 직접 주연한 자전적 동명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기도 했다. 프린스의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 24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미국에서만 1300만 장이 팔려 ‘썩어도 준치’라는 보라색의 위용을 과시했다.

저항의 상징이었던 보라색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았던 정부가 시위대에 착색시켜 시위 주동자와 참가자들을 발본색원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물대포용 물에 보라색 염료를 집어넣고 시위자들에게 살포한 남아공에서는 보라색 염료를 뒤집어쓴 이들을 잡아다가 재판 없이 바로 구금했다. ‘아파르트헤이트’로 유명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한 이들이 그 대상이었다. 이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보라색 물대포는 이후, 여러 경찰국가에서 고스란히 모방해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무차별로 살포하는 용도로 활용됐다. 게빈 에번스가 지은 「색깔의 인문학」을 찾아보니 보라색 염료를 사용한 적이 있는 국가들로는 인도와 우간다, 인도네시아와 이스라엘 등을 꼽아볼 수 있다. 이들 국가가 보라색 염료를 뿌린 대상은 임금 인상 시위를 벌이던 인도인들과 독재 정권에 반대한 우간다 야당 지도자들, 가자 서안 지구 등에서 시위를 벌이던 팔레스타인들이었다.

연약하고 병적이며 신비롭고 컬트적인 이미지마저 풍기는 색이 보라색이지만 뜻밖의 에너지를 지닌 색 또한 보라색이었던 셈이다. 그런 보라색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제가 바로 자외선이다. 가시광선 가운데 파장이 가장 짧아 빨강이나 노랑, 주황이나 파랑에 비해 인간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이 보라색인 까닭에서다. 해서, 보라색보다 파장이 짧은 광선에 붙인 이름이 이른바 ‘자외선(紫外線)’이다. 보라의 바깥에 위치한 색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구성된 자외선은 파장이 짧은 탓에 에너지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화학선’이라고도 불린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외선에 많이 노출되면 강한 에너지에 노출된다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자외선은 살균 등에서 매우 효과적이지만 역시, 피부에 오래 노출되면 유해한 광선이다. 말하자면 병도 주고 약도 주는 경계에 위치한 색이 ‘보라’라는 것이다.

그럼, 이것으로써 보라색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에는 한국인들이 ‘살색’이라고 부르는 갈색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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