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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플랑드르의 화가, 반 다이크는 ‘갈색의 화가’ 프랑스의 늦깎이 화가 고갱도 갈색 즐겨 써갈색으로 타히티 그린 고갱은 상징, 원시, 야수주의에 영향 까만 눈의 화가로 유명한 모딜리아니도 갈색 그림 즐겨 그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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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30  08: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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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월이다. 중간고사를 전후해 3주 만의 재회다. 독자 여러분의 기억을 돕기 위해 중간고사 이전에 게재했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지난 시간에는 ‘갈색의 재발견’에 기여한 화가로서 이탈리아의 코레지오와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에 대해 알아봤다. 이번에는 그 후속편.

렘브란트 이전에 활약했던 또 한 명의 바로크 갈색 명장으로는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안소니 반 다이크를 꼽을 수 있다. 지금의 벨기에를 일컫는 ‘플랑드르’는 반 다이크가 활약하던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반 다이크는 그와 마찬가지로 ‘플랑드르’의 화가이며 바로크의 거장인 루벤스의 제자였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탓에 루벤스의 수제자이자 협동 제작자로서 스승과 손발을 맞추며 수많은 그리스 신화를 생생하게 재연해 냈다. 여기에서 협동 제작자란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용된 조수 등을 의미하며 서양화에서는 살아 있는 동안 약 2,000여 점을 남긴 루벤스가 미술 사상 최초로 공방을 운영하며 협동 제작자들을 적극 활용해 작품을 대량으로 생산한 바 있다. 당시, 루벤스는 유럽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날렸기에 유럽 전역에서 쇄도하는 수요를 도저히 감당히 내지 못하자 현대의 컨베이어 벨트라인에 해당하는 협동 제작 방식을 고안해냄으로써 자신이 스케치를 하면 수많은 제자와 협동 제작자들이 밑그림과 채색을 맡고, 마무리는 루벤스가 하는 식으로 수많은 대작들을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루벤스 밑에서 숱한 명작들을 함께 완성했던 반 다이크는 갈색 염료를 너무나도 잘 다뤘기에 그가 염료로 사용했던 숯의 일종인 ‘캐셀 어스’는 ‘반 다이크 브라운’이라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반 다이크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워낙 많은 그림에서 갈색이 다량으로 동원된 까닭에 ‘갈색의 화가’로 불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한편, 시계 바늘을 약 3세기 뒤로 돌려 19세기 말로 무대를 옮기면 이번엔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갈색 사랑’이 눈에 들어온다. 고흐와 같은 시기에 활약했기에 종종 고흐와 함께 언급되는 고갱은 증권회사에 다니다가 35세에 비로소 그림에 눈을 뜬 늦깎이 화가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늦은 입문 탓이었을까? 좀처럼 세간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는 19세기 말의 유럽 문명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처분한 뒤, 프랑스령 식민지인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홀연히 떠난다. 그의 나이 41세 때의 일이다.

타이티에서 고갱은 원주민들의 낙천적인 삶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를 화폭에 마음껏 담으며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기에 생활고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고국으로 돌아와 타이티에서 그린 그림을 파리에서 새롭게 선보였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번에도 그의 작품은 고국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하여 다시 타히티로 돌아오지만 역시, 정착에 실패한 후 고갱은 파리로 돌아오고 급기야는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천만다행으로 그의 자살은 실패로 끝나면서 이후, 마지막 작품을 남긴다는 심정으로 그린 작품이 오늘날 우리가 미술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음직한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이다. 당시 고갱은 스스로가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 여겼지만 파리 미술계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했다.

   
▲ 사진 설명. 고갱의 역작인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인간의 일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에는 막 태어난 간난아이가 있고, 중간에는 한 젊은이가 나무 열매를 따고 있으며, 화면 왼쪽에는 인생의 말년을 맞이한 노파가 있다. 말하자면 그림 속의 인물들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삶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 하겠다. 현재 이 그림은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있으며 가로 3.7m, 세로 1.4m의 대작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구릿빛 피부의 원주민들을 적갈색으로 묘사하며 거친 붓터치와 강렬한 채색으로 캔버스를 장식하고 있다. 물론, 그림 전반에 흐르는 색깔은 원시 세계를 표현한 깊고 농밀한 갈색이고. 그가 1892년에 완성한 ‘언제 결혼하니’라는 명작 역시. 결혼에 대한 행복한 꿈을 꾸는 원주민 처녀를 진한 적갈색으로 생기있게 표현했다. 더불어 이들 작품은 훗날 상징주의와 원시주의, 그리고 야수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고갱에게 크게 감명받은 상징주의와 원시주의의 화가, 앙리 루소는 그의 화풍을 이어받아 비록 가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곳이지만 상상 속의 밀림과 야생 동물을 갈색 붓터치로 강렬하게 묘사해 냈다. 그런 앙리의 대표작, ‘잠자는 집시’ 또한, 갈색 사막 위에 누운 적갈색 피부의 집시에게 갈색 사자가 다가가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고갱의 갈색 사랑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이름이 같지만 성은 따른 또 다른 야수주의 화가 앙리 마티스 역시, 파란색과 초록색 배경 속에서 손에 손을 잡고 적갈색의 나체로 춤추는 사람들을 묘사함으로써 구성과 피사체, 색채 사용에서 당시의 화단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한편, 눈동자가 없는 까만 눈의 화가 모딜리아니도 갈색을 즐겨 사용했던 화가로 유명하다. 특히 1917년에 완성된 그의 대표작 ‘모자를 쓴 여인’은 자신의 아내 잔 에뷔테른을 모델로 그린 그림으로, 화폭 전반에 걸쳐 채색된 부드러운 갈색이 무척 인상적이다. 생을 마감하는 의미로 단 한 점만의 자화상을 남긴 그의 부인 에뷔테른은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겠다는 의미로 자화상을 허락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영국의 유명 화가, 터너에 대해 알아본 다음, 한국의 갈색 화가를 다루도록 하겠다. 이제는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됐다. 정말 엔데믹이 오긴 온 모양이다. 그럼, 모두들 신록의 5월을 만끽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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