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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인문학] 이집트서 도형 안에 조약돌 채운 면적 계산 발명 피타고라스, 각지에서 기하학 배운 뒤 학파 세워페르시아의 이집트 침공 때 포로로 바빌론에 잡혀 간 피타고라스 12년간의 포로 생활 끝에 이탈리아 남부 도시 크로토네에 정착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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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23  04: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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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의 둘레 및 면적을 구하는 공식에서 사용되는 수학 기호인 ‘파이(π)’가 발명되기 전부터 이집트인들은 원의 길이와 면적을 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사진은 EBS에서 방영했던 숫자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비슷한 크기의 돌들로 원을 만들어 지름에 해당하는 돌의 개수에 따라 대략 몇 개의 돌들이 해당 원에 들어가는지를 측정했다는 기록이 이집트 고대 왕국의 사료에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장면이다. 지름이 돌 아홉 개인 원의 경우, 면적은 64개의 돌들로 채워진다고 기록된 사료에서는 실제로 파이 값을 이용해원의 면적을 측정했을 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결과 값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 출처: EBS)

지난 시간에는 매년 범람하는 나일강 때문에 토지 분쟁이 발생하자, 이를 없애기 위해 길이와 면적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집트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이번 호는 그 후속편이다.

비록 길이의 단위와 땅의 모양을 이용해 면적을 계산했다고는 하지만, 아라비아 숫자와 사칙연산 가운데 곱셈도 없던 5천년전의 이집트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토지의 넓이를 산출해 냈을까? 참고로 아라비아 숫자는 5세기 경 인도에서 만들어졌으며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12세기에 아라비아, 즉 중동에서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 전까지의 산수는 1에서부터 10까지의 숫자를 포함해 100, 1000 등의 숫자에 해당하는 기호나 상징을 일일이 기억해야 했기에 수학은 상인과 지식인, 그리고 상류 계급을 중심으로 독점적으로 활용됐다. 더불어 이집트에서 수학을 발명했던 이들은 바로 조약돌을 활용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시행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인들은 가로 5m, 세로 4m의 땅을 측정할 때 50cm 단위의 길이를 상징하는 지름 3cm 정도의 조약돌들을 땅 위에 가로와 세로로 나란히 늘어놓으며 땅의 면적을 측정했다. 이를 위해, 실제 토지의 가로 길이인 5m에 해당하는 10개의 조약돌들을 한 줄로 늘어놓은 뒤, 다시 세로 길이인 4m에 해당하는 조약돌을 여덟 줄의 열에 맞춰 아래로 나란히 늘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가로 10개, 세로 8개의 조약돌들로 채워진 직사각형 안의 조약돌들을 일일이 세어, 모두 80개가 직사각형을 이루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로 5m, 세로 4m의 땅 면적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토지 소유주의 땅 면적에 해당하는 가로와 세로 길이를 알기만 하면 자신들의 원시적인 곱셈을 이용해 전체 면적을 환산함으로써 이집트 정부에서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토지 간의 경계가 흐트러진 이후에도 농민들에게 정확한 면적의 토지 배분을 재시행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만일 땅이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 아니고 원이나 타원, 삼각형, 오각형 등과 같을 경우에는 어떻게 면적을 측정했을까? 이집트인들은 토지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 아닐 경우 역시, 둘레와 지름과 빗변 등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한 다음, 50cm를 상징하는 지름 3cm 정도의 조약돌들로 해당 모양에 해당하는 도형의 둘레나 지름을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도형 안에 다시, 조약돌들을 빼곡하게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전체 면적을 계산했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도형의 면적과 모양에 따른 특성을 연구하는 기하학이 탄생했고 또 비율과 분수에 관한 개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피라고라스가 활약하던 시대의 패권 국가가 그리스도 아니요, 이집트도 아닌 페르시아였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 헐리우드의 영화 ‘300’에서 악마의 제국으로 묘사된 바 있는 페르시아는 실제로도 틈만 나면 이오니아와 그리스, 그리고 이집트를 위협했다. 그리하여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 피타고라스는 포로가 돼 바빌론으로 끌려갔으며 12년 간이나 포로로 잡혀 있었다. 이후, 그의 나이가 60세 되던 때에 피타고라스는 마침내 바빌론에서 벗어나 여러 곳을 방랑하다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인 크로토네에 정착했다. 크로토네는 이탈리아의 국가 모양을 길다란 장화로 가정할 때 구두 앞부분의 밑바닥에 해당하는 곳으로 당시, 남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인구 또한 30만 명에 육박했던 메트로폴리탄이었다.

밀레토스와 이집트, 바빌론 등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곳에서 가장 선진적인 수학과 천문학 등을 공부했던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방대한 지식을 이용해 코로토네에서 그리스 정착민들을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능력과 명성에 이끌려 자신을 흠모하던 제자들을 모아 대단히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도 건설했다. 공산주의적 개념을 도입해 구성원들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함께 생활하는 피타고라스 학파가 그것이었다. 당시, 피타고라스가 세운 학교는 남녀 모두 동등하게 입학이 허용됐으며 교육은 체계적으로 단계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런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을 엄선해서 받았으며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무려 5년간에 걸쳐 묵언 수행을 통과해야 피타고라스 학파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피타고라스의 황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어느덧 추석이 코앞이다. 바쁜 가운데 한가롭다는 의미의 ‘망중한(忙中閑)’이라는 말처럼 지친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으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버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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