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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인문학] 이슬람 최고의 수학자였던 알 콰리즈미는 0으로 1, 2차 방정식을 포함하는 ‘대수학’을 발명해5세기 지나서야 서서히 0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유럽 … 하지만 로마 교황청은 0을 ’악마의 숫자‘라고 여겨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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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1.25  06: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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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최대의 수학자이자 천문지리학자인 알 콰리즈미의 초상. 오른쪽은 그가 펴낸 「대수학」으로 책의 이름을 따 ’알제브라‘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소개됐다. (이미지 출처: 구글)

지난 시간에는 숫자 0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번엔 그 후속편.

돌이켜 보면, 0은 이미 2세기의 중국 산수에서 점으로 표시된 바 있으며 마야인들의 문명에선 나선으로 표시된 바 있다. 하지만, 0이 수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그 무궁무진한 발전의 디딤돌이 된 것은 전적으로 인도의 수학자, 브라만굽타 덕택이었다.

더불어 이러한 0의 수학적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이들은, 당대 최고의 문명 수준을 누리고 있던 페르시아 계열의 아바스 왕조였다. 이미 고대부터 중동에서 맹주로 군림하며 미 헐리우드의 영화 ‘300’에서는 악마 국가로 등장한 바 있는 페르시아는 7세기 이후에 아랍의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며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세워지기는 했지만 페르시아인인 이란인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들어선 아바스 왕조는 지금의 이란과 중동 전역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를 지배하며 당대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이에 따라 최고의 패권 국가로 등장한 아바스 왕조에서는 문명도 자연스럽게 화려한 꽃을 피우며 이웃 나라 인도의 수준 높은 점성술과 과학 서적들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더불어 그러한 책들 가운에 함께 들어온 것이 0의 유용성을 강설했던 브라만굽타의 「브라마숫부타 싯단타」였다.

「브라마숫부타 싯단타」가 지닌 수학적 가치를 한눈에 꿰뚫어본 이는 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알 콰리즈미였다. 알 콰리즈미는 0에 관한 브라만굽타의 책을 읽은 후, 이슬람 최초로 수학책을 집필했으며 1차 방정식과 2차 방정식을 개발해냈다. 지난 시간에 1차 방정식을 소개하기는 했지만, 수학사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의미의 1, 2차 방정식과 그 해법을 개발한 이는 바로 알 콰리즈미였던 것이다. 결국, 그에게 붙여진 명예로운 명칭은 바로 ‘대수학의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대수학’이란 방정식에 관한 수학으로 ‘대(代)’란 대신한다는 의미의 한자어로 정답을 모를 경우에 이 수를 X 또는 Y로 대체해 문제를 푼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그런 ‘대수학’의 영어명은 ‘알지브라(algebra)’인데, 이는 알 콰리즈미가 자신의 저서명으로 사용한 ‘알 자부루’에서 유래했으며, 이전에 설명한 바 있는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수학을 배운 그는 평생에 걸쳐 엄청난 양의 저술들을 남겼는데 대부분 천문학과 지리학, 그리고 수학에 관한 것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저서는 훗날,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책은 라틴어로도 번역돼 이후, 서구에서는 ‘알지브라’와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학 이외에 천문과 지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워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에 관한 정밀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동이 인도의 0과 아라비아 숫자를 수입해 화려한 문명을 향유하는 동안, 유럽은 중세 암흑기의 봉건 시대 속에서 사실상 과학 문명이 정체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수준 높은 이슬람 문명이 조금씩 서구로 흘러들어오면서 유럽은 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아라비아 숫자 0은 피보나치 수열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에 의해 처음으로 유럽 대륙에 소개되었다. 참고로 피보나치 수열은 첫 번째 및 두 번째 수가 1이며, 세 번째 수부터는 바로 앞의 두 수를 더한 숫자로 전개된다. 이에 따라 1, 1, 2, 3, 5, 8, 13, 21과 같이 전개되는 수열을 피나보치 수열이라고 부른다.

피보나치는 ‘피사의 레오나르도’라고도 불렸는데, 그 별명과는 달리 그는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이었다. 피보나치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0의 개념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설명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당시의 이탈리아인들은 그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시 유럽인들의 정신과 문화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교황청이 ‘0을 악마의 숫자’로 인식했기에 0이 유럽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대단히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서양에서 0이 겪은 역사와 더불어 중국에서 0이 맞이한 운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어느새 12월 코앞이다. 모두들 잘 마무리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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