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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소나무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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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3.09  07: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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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소나무밭 가지치기를 도울 일이 있었다. 산밭에 다닥다닥 소나무 묘목을 심어놓은 게 오랜 시간 방치되어 성인 키 네다섯 배 높이의 작은 숲을 이뤘다. 문제는 나무들을 너무 바짝 심어 놓아 나무들끼리 서로 엉켜 있어서 가지를 쳐내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방학 중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선뜻 나섰다. 나무꾼 체험이랄까 재미있을 것 같았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였다. 웃자란 녀석들 아래로 죽은 소나무들이 많았다. 먼저 그것들을 거둬내라는 작업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농로를 접한 밭의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들이었다. 경계라인 조금 안쪽의 나무들이 옆으로 쓰러져있었다. 빛 바라기 경쟁에서 광합성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 녀석들은 거의 90도 각도로 몸을 뉘어 몸부림치듯 숲 바깥으로 자라났다.

죽은 가지들을 쳐내며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깜짝 놀랐다. 극단적으로 옆으로 누운 자세를 한 녀석들은 세 그루의 나무가 합쳐져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세 개의 줄기가 합쳐져 있었고, 그중 큰 줄기가 몸을 뉘어 숲 바깥으로 가지를 뻗어 무성하게 솔잎을 피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가능한가?

오해는 금방 풀렸다. 세 줄기가 합쳐진 것이 아니라 기둥이 되는 줄기 맨 아래에 위치한 굵은 가지 두 개가 땅으로 내려와 나무 전체를 받치고 있었다. 그 끝에 뿌리라도 내렸나 흙을 거둬내 보았는데 뿌리는 없었다. 마치 목발을 짚듯이 나무 전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경이롭기까지 했다.

사실 하늘로 솟구친 키 큰 녀석들도 상처를 입기는 매한가지였다. 일정 높이 아래로는 가지들이 죽어 손으로 꺾어도 쉽게 부러졌다. 마치 야자나무처럼 윗부분만 솔잎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앙상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나무밭의 가장자리, 옆으로 뉘어 위태롭게 자란 녀석들의 맨 아래 두 개의 가지는 수분을 충분히 유지한 채 생생하게 땅을 박차고 제 몸 전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야자수처럼 웃자란 모습에도 그 가치가 있겠다. 빛 바라기를 위해 애를 쓴 결과, 아래가지를 죽여 기둥 줄기를 높게 만들었으니 살신성인이랄까 의미 있는 일이다. 인생사 해석하기 나름 아닌가. 같은 논리로, 살기 위해 하늘이 아닌 땅으로 방향을 틀어 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역할을 수행한 녀석들 역시 죽지 않고 버텨냈다는 게 기특했다. 솔잎을 피고 송홧가루를 날려 솔방울을 맺지 못하더라도 두 개의 가지는 제 일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빗대어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평소 교조적인 태도를 경계한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가르치려는 태도가 몸에 뱄다. 그래서 취한 태도가 성찰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바라보며 가끔 자신을 합리화한다. 지난날을 복기하고 반성도 하지만, 따먹지 못한 포도를 바라보는 여우처럼 ‘그러려고 그랬나 보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날들이 많았다. 교수랍시고 지면을 빌어 학생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공감을 선택한다. 나 자신도 숱한 실패와 핑계로 점쳐진, 목발을 쥔 청춘이었음을.

 

/이황석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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