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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말이 칼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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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3.16  08: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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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 발언이 공공의 영역에서 문제시되면서 이에 대한 자각도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말 안에 담긴 차별과 타자화는 쉽게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계층, 성별, 인종, 장애 여부, 성적 취향에 따라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때로는 두려워하는 습성을 쉽게 버리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혐오 발언의 미묘한 문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조차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된 사고방식이나 다른 이의 상황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 말이든 다른 이의 말이든, 말이 칼이 되는 순간은 언제나 있어 왔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문단에 비약적으로 증가한 퀴어 소설들은, 그중에서도 성적 취향에 따른 공공연한 차별과 폭력, 그리고 칼이 된 말들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가족에게마저 ‘아픈 이’로 취급되거나, 연인과의 소중한 순간을 다른 이들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긴장 상태에서 보낸다.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혹은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사랑의 형태가 그 순수성에 균열을 일으키기도 하며, ‘왜’라는 끝없는 질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자기 파괴를 행하기도 한다. (박선우, 『햇빛 기다리기』) 이들의 소설에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거나, 존중의 외피를 쓴 교묘한 무관심, 그 안의 미묘한 타자화를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 그것이 “미제의 악습, 자본주의의 산물” 이라는 민족 담론의 언어를 경유하든,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므로 존중하지만, 제도적 인정은 다른 문제’라는 ‘평이한 다수’의 언어를 경유하든(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이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칼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와 같은 혐오 발언들에 매몰되지 않고, 가볍게 그 날카로움을 딛고 날아가려는 ‘대항언어로서의 소설’을 꿈꾸는 작품들도 있다. 누군가의 생물학적 성별을 궁금해하던 주인공이 그것을 보고도 굳이 서술하지 않거나, ‘왜’라는 질문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대신, 분홍빛 솜사탕 같은 사랑 받은 기억 속에서 다른 이들을 먼저 행복하게 해줄 다짐을 하기도 한다. (김멜라, 『제 꿈 꾸세요』) 혹은 자기 안의 다중적 젠더, 섹슈얼리티의 모습들을 끄집어내 서술하는 자아가 가진 윤리성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김세희, 『항구의 사랑』) 말이 칼이 되는 순간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상처를 덮어주는 반창고 같은 말을 꿈꾸는 사람들도, 어딘가에 계속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 사전에서 찾아본 ‘존중’의 의미이다. 우리는 쉽게 나와 다른 이들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 다른 이를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며 존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나오는 동시대 한국 퀴어 소설들은, 다른 이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그리고 그것을 삶의 태도로 내면화하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서은혜 국어국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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