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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인문학]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이 둥글고 땅 사각형이라 믿어 동전은 둥근 모양에 정사각형 구멍 뚫어서 세상 표현알파벳과 한글에도 0과 닮은 ‘O’와 ‘이응’이 있어 … 일본, 2차 대전 때 ‘제로센’이란 영식 전투기 개발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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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3.16  08: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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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상평통보(사진 왼쪽)는 하늘이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고대 중국인들의 사고에 영향받아 만들어진 조선 시대의 동전 화폐이다. 마찬가지로 원불교의 상징인 ‘일원상’(一圓相)도 가운데가 텅빈 원 모양을 통해 부처의 깨달은 마음과 우주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이번 주엔 0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빌어다 쓴 상징들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문자 이야기이다. 0이라는 개념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0과 유사한 부호를 사용해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 체계로는 알파벳을 꼽을 수 있다. 발음도 쉽고 기호도 간단한 알파벳 ‘O(오)’는 서구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키릴 문자에도 있는 문자이며 한글에도 자음의 하나인 ‘이응’으로서의 O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한자나 일본어에는 ‘이응’ 또는 알파벳 ‘O(오)’에 해당하는 부호가 없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알파벳과 함께 숫자 0의 위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국가가 한국이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이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고 생각해, 주요 화폐로 통용되던 동전은 납작하고 둥근 가운데 중심을 정사각형으로 뚫어 세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우리에게는 상평통보로 유명한 조선 시대의 동전이 바로 중국에서 기원한 형태를 고스란히 본뜬 것이다.

더불어, 아라비아 숫자 0과 닮은 동그라미는 종교에서도 이용되고 있는데 원을 활용한 가장 유명한 종교로는 원불교를 거론할 수 있다. 원불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토속 종교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수학적인 영 개념을 도입했다. 원불교는 이름만 보면 불교의 한 종파로 오해되기 쉽지만, 정통 불교와는 결이 다른 종교이다. 물론, 불교와 동학 사상을 혼합했기에 불교와 완전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원불교를 창시한 이는 승려가 아닌 불교 수행자였다. 그런 원불교에서는 ‘일원상(一圓相)’이라 부르는 두터운 노란색 고리 모양의 원을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는데 ‘일원상’은 부처의 깨달은 마음과 우주의 근원을 의미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늘이 둥글다고 믿었던 고대 중국인들과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나 할까?

한편, 부호로서의 원을 전투기에 활용해 ‘영식 함상 전투기’를 개발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명 ‘제로센’으로 더욱 잘 알려진 영식 함상 전투기의 정식 명칭은 ‘A6M 영식 함상 전투기’인데, ‘영식’이라는 것은 한자어로 ‘零式(영식)’, 즉 ‘0을 활용한 수식’이라는 뜻이며, ‘함상’은 ‘배 위의 갑판’을 의미하기에 곧 상징 기호가 O인 해군 전투기를 지칭한다. 저속에서 기동성이 탁월했던 ‘영식 함성 전투기’는 일제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으며 일본 해군의 자살 공격인 가미카제에도 이용됐다. ‘제로센’은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 전쟁 초기에 앞선 성능을 바탕으로 한때는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도 했지만, 미국이 신형 함상 전투기를 개발하면서 제공권을 빼앗긴 이후에는 가미카제 공격용으로 전락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겐 ‘이웃집 토토로’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2013년 작, ‘바람이 분다’는 ‘영식 함상 전투기’의 설계 및 개발로 유명한 호리코시 지로에 관한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개봉된 바 있다. 하지만,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한국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참고로, 미아자키 하야오의 아버지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투기의 방향타를 제작하던 공장을 운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버지의 인생을 영화에서 다뤘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일본이 패전한 후, 아버지의 비행기 관련 공장은 망했으며 가세가 기울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한편, 우리 주변에서 0을 이용한 또 다른 기호로는 혈액형을 꼽아볼 수 있다. A형, B형, AB형과 함께 4가지 종류의 혈액형을 형성하는 O형은 A형 또는 B형이 각각의 항원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항원이 없기에 처음에는 C형으로 불렸다가 나중에는 없다는 뜻의 O형으로 바뀌었다. 그런 까닭에 피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할 뿐, 다른 혈액형으로부터의 수혈이 불가능한 O형은 흔히, 박애주의 타입으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일 뿐, 요즘의 대세는 어디까지나 MBTI 구별법이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사람의 심리적 성향을 16가지로 나눈 MBTI에서 정작 알파벳 O는 눈에 띄지 않아 이제껏 듬뿍 사랑받아온 길과는 다른 운명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것으로써 0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시간부터는 1에 대한 숫자 인문학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어느덧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었다. 날이 갈수록 캠퍼스의 꽃망울들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조만간 온갖 꽃들이 만화방창(萬化方暢)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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