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오피니언
[한림원] 모스크바 방문기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4.03.23  08:20:0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2023년 여름 오랜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해마다 러시아를 방문했지만, 코로나 사태와 뒤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 발발로 최근 들어 러시아를 찾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와 단절된 러시아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찾아보기로 했다. 물론 방문까지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 직항로가 폐지되어 중국을 경유해야 했으며, 모든 국제금융거래가 차단되어 러시아 내 숙소나 교통수단을 예매하기 위한 카드 결제도 불가능했다. 그 큰 나라가 완전히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 점차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마침내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처음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와 같은 설레임까지 느껴졌다. 도착 후 처음으로 들은 소식은 놀랍기는 했지만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그날 오전 우크라이나 드론이 모스크바의 초고층 건물을 공격해서 건물 일부가 부서졌다는 소식이었는데, 그 뉴스를 전해주는 택시 기사의 덤덤함에 나도 덤덤한 척 반응했다.

며칠 동안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느꼈던 인상은 도시 전체가 지나치게 평화롭고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외국인들로 넘쳐나던 유명 관광지들은 현지인들의 산책 장소가 되어있었고, 이전 같으면 무뚝뚝한 얼굴로 어딘가로 정신 없이 걸어가던 사람들이 지금은 온화한 표정으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모스크바와는 너무도 달라서 기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이 전쟁이 아니라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전쟁을 전쟁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상에서는 이러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도 <특별군사작전과 평화>라고 불러야겠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막상 모스크바 현지에서는 전쟁 반대의 목소리도, 푸틴에 대한 비판의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부의 언론 통제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공포나 분노보다는 한가한 일상을 즐기는 여유로움이 훨씬 더 많이 느껴졌다. 물론 기분 탓인지 그 여유로움 속에서 미약하나마 편치 않음의 기운을 느끼기는 했는데,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난 2월 16일 대표적인 야권 지도자 나발니가 수감 중에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서방 언론들에서는 분노하는 러시아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했지만,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3월 15일 러시아 대선 결과 푸틴 대통령은 87.3% 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다섯 번째 재선에 성공하였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결국 획기적 전환이 없다면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제재도 멈춰 서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러시아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이러한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박혜경 러시아 교수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2024 대동제...한림人들은 ‘싱글벙글’
2
[보도] 변화 가져간 축제 진행 방식 ‘엄지척’
3
[보도] 전공박람회, 진로상담·체험 ‘일거양득’
4
[보도] 현직 종사자와 만남, ‘미니 비전 페어’ 열려
5
[보도] 전공 바꾸고 싶다면 27일부터 신청
6
[기획] 오결제ㆍ개인통장 혼용 등 곳곳에서 ‘삐걱’
7
[보도] 대학 넘어 지역 취업까지 돕는 ‘일자리플러스센터’
8
[보도] 지역정주센터, 지역상생의 첫 발걸음 내디뎌
9
[사회] 교육도시 춘천 ‘지역과 대학이 협력하는 선순환 체제 만들 것’
10
[보도] “110년 만에 제자리 찾은 오대산사고본”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성민(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