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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짱]문장의 ‘첫머리’는 글의 생명
심훈 교수  |  shim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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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12.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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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첫 회가 생명이다. 글은 첫 문장이 전부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리드를 완성한다면, 이미 그 글은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뻔한 스토리, 당연한 장면, 지루한 대화와 충격적인 스토리, 쇼킹한 장면, 자극적인 대화. 어느 것에 손을 들어줄 지는 자명하다. 그러나, 역으로 말한다면, 그만큼 첫 문장과 첫 장면을 깔끔하게 소화하기가 녹녹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글의 첫 머리는 요리의 에피타이저  

  필자는 글 쓰는 작업을 요리에 곧 잘 비유하곤 한다. 다년간의 교육 경험을 통해 적절한 비유가 학생들의 이해력을 높이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신념에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글을 소개함에 있어 요리는 최고의 비교 대상이다. 요리 재료는 당연히 글의 소재요, 글을 쓰는 작업은 요리 과정에 속하며, 결국 최고의 요리사는 ‘글짱’인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난 시간에 소개한 ‘짧은 글’은 소화하기 쉬운 부드러운 음식을 일컬을 게다.

  반면, 길고 장황한 글은 질기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 힘줄로 견줄 수 있다. 그렇다면, 글의 첫 머리는 요리의 어떤 것에 속할까? 필자는 문장의 첫 머리를 요리의 에피타이저(전채)로 표현하고 싶다. 뒤의 메인 요리를 받쳐 주되 미식가의 관심을 자아낼 오프닝이라는 것이다. 양이 적지만 입맛을 적당히 자극시켜 줄 청량제 역할. 바로 전채의 몫이다. 여기에서 적은 양은 짧은 분량을, 청량한 개운함은 신선한 자극을 의미할 게다.

  ▲ 간결하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핵심주제  

  그렇다면 어떤 첫 문장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말하는 독자는 꼭 대중적인 사람들일 필요는 없다. 필요에 따라, 나의 리포트를 평가하는 선생님, 대자보를 읽는 선, 후배, 싸이의 글을 돌려 읽는 친구들이 모두 독자에 속한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잘 먹혀 드는 요령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리드 문장은 반드시 간결 명료해야 한다. 둘째,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유행적인 사회 현상, 재미있는 인용구, 주변에서 벌어진 일상사적 이야기 등 온갖 상황들이 첫머리를 장식할수록 글에 머무르는 시선이 좀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필요 조건 이라기보다 충분 조건에 가깝다. 가급적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를 담으라는 것이다.

  百聞이 不如一見.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을 테니, 예를 한번 들어 보겠다. 여러분들이 평범한 리포트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학과, 학부, 전공에서든 리포트를 한 학기에 한번은 쓸 테니…. 만일, 경제학과, 사회학과, 언론정보학과에서 각각 최근의 경기 침체에 대해 간단한 분량의 리포트를 과제로 내주었다고 하자. 경제학과는 경기 침체의 원인 및 정부 차원의 가장 효율적인 치유 방안에 대해, 사회학과는 이 같은 상황에서 흔히 발생하는 부정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 언론학과는 경기 침체와 관련해, 어떤 종류의 보도가 최선일 수 있는가에 대한 리포트를 요구했다고 하자.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많은 학생들의 논문이 다음과 같은 고전적인 방향으로 흐를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경기 침체는 1997년의 IMF를 능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사회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 앉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경제학과)  

  “경기 침체는 사회의 활력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고용 및 실업 문제 등 각종 사회 문제를 야기시켜 저소득층의 존재 기반을 약화시키는 중대한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사회학과)

   “최근 들어 연일 한국 언론의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경기 침체는 결국 본질을 과대하게 호도해 필요 이상으로 경기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언론학과)  

  과연 이러한 글들로 튈 수 있을까? 읽는 사람은 수십 개의 보고서를 쌓아놓고 채점을 하는데, 몇 초안에 하나의 보고서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성의를 가진 선생이라면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꼼꼼하게 들여다보겠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그것이 가능할까?  

   경제학과의 경우, 필자는 먼저 자신이 현 경기 침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머리 속으로 정리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느낌, 사고, 생각을 첫 줄에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재미있고 짧게…. 다음의 예제를 통해, 필자의 시도와 의도를 가감없이 평가해 보기 바란다. 경제학과 사회학에 대한 무지를 탓하기 보다는….  

  “영양실조로 쇠약해진 환자에게 단지 처방전을 내준다는 것은 결국 환자를 죽이는 행위에 불과하다. 정작 환자가 필요한 것은 영양 보충을 위한 돈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경기 부양책은 사태의 근본을 파악하기 보다 반짝 효과 만을 내린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의도)  

  “나에게 필리핀은 후진국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아버지에게는 아닙니다. 60년대까지 사업차 필리핀을 자주 방문하셨던 아버지에게 당시의 필리핀은 상당한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러던 필리핀이 경기 침체와 고질적인 인플레, 사회 불안으로 결국 선진국 진입 대열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 학생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서두에 꺼냄)  

  “나 자신은 언론에 이성적으로 반응하지만, 대다수의 타인들은 언론에 감정적으로 휩쓸리고 있다” (언론 보도의 호도 가능성에 대해 일반인들의 우려만 강할 뿐 실제로 그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한 학생의 견해가 ‘제 3자 효과 이론’이라는 언론 이론을 통해 표명됨)  

  어떤가? 다음 번 리포트 제출 때 한번 그 효과를 가늠해 보자. 밑져야 본전 아닌가?           / 심훈 교수(언론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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