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고시가 왜 고시입니까? 그런, 고시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고시라면 당연히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같이 국가에서 주관하는 공식적인 시험들을 일컫는 것이 아닌가요?

  백번 지당한 말이다. 그래서 지난 해 말 준공된 한림대학교 국제 교육원에 여러 고시반들이 개설되기 시작했을 때, 언론고시반 신설을 놓고 여타 단과대학에서 심하게 반발했다. 가뜩이나 공간도 모자란데, 언론고시반까지 만들어야 되겠냐며….

  정부 부처는 아니지만 어느 곳보다 진입 문턱이 높은 곳, 희망과 환상 속에 21세기의 젊은이들이 한번쯤 일할 기회를 얻어 보고 싶은 곳이 언론사이다. 언론 자유화와 함께 80년대 중반부터 불어 닥치기 시작한 언론 고시 열풍은 때문에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닌 대표적인 사회 현상이 되어 버렸다. 언론사는 그런 악다구니 속에서 최우수 인재들을 가려내 자신들의 상품력을 놓이기 위한 일꾼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수개월 간에 걸친 여러 테스트 단계를 거쳐 어렵사리 쓸만한 인재들을 가리고 골라 뽑아도 당장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습보다는 이론을 중시하는 한국의 대학 교육 특성상, 기사 생산 능력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당장 기사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병아리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언론사의 다음 순서는 수습이라는 교육 과정이다.

  현재 대부분의 중앙 일간지들은 6개월 동안의 수습 기간을 두고 병아리 기자들을 집중 훈련시키고 있다. 이 동안, 언론사들은 오로지 미래를 위해 비싼 돈과 금쪽같은 시간을 지불해가며 양계장에서 병아리를 키우듯 인내로 수습기자들을 길러낸다. 수습 교육 기간 동안에는 ‘일진’ 또는 ‘사수’로 불리는 고참 기자들이 개인 교사 마냥 수습기자 한 사람 당 한 명씩 달라 붙어 가장 단순하고 평이한 사건, 사고 기사 작성법에서부터 철저하게 글의 ABC를 가르쳐 주게 된다.

  주로 저녁의 마감 시간 이후에 편집국내 여기저기서 과외 마냥 진행되는 이 같은 교육 방식은 수습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발로 뛰며 취재해 저녁에 기사를 작성한 후, 외부에서 귀사하는 고참 앞에 불려가 자신의 글을 보여야 되는 심정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 기간 동안에 수습은 주로 짧게 글 쓰는 법, 주술간의 호응 이루는 법, 반복 어구 생략하는 법 등에 대해 모멸과 설움 속에 하나하나씩 배우면서 언론사 글쟁이로 조금씩 가다듬어 지게 된다.

  6개월이 지나면 대부분의 언론사들에서 ‘어느 정도’의 글을 쓸 줄 아는 기자로 대접하는 의미에서 ‘수습’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준다. 공식적으로 회사 이름과 소속 명을 밝힐 수 있는 명함도 비로소 이때부터 만들 수 있다. 한 명의 쓸만한 기자는 그렇게 탄생된다. 이후 기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글발과 취재발이 늘면서 3~7년차가 되기 시작하면,  ‘금값’으로 치솟는다.(보통 8년차가 넘어가면 주로 수석 기자나 차장 대우라는 직함으로 취재보다 기사 아이템 개발 및 취재 지시, 교정 편집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죽어라 키워 놓았더니 더 좋은 곳을 찾아 날아가려는 기자의 사표 앞에 회사와 부장이 내뱉는 장탄식은 그래서 더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매일 매일 온 국민이 슬쩍 보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일류 신문들은 그런 기자들의 발품으로 만들어 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한국의 일류 신문들은 재미있고 유익하며 다양하다. 모르긴 해도 전 세계 어디에서도 우리나라만큼 신문을 풍성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여간해선 남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까다로운 한국인들의 유전적 속성이 까다로운 시장으로 작용해 언론사들의 극강(極强)을 유도했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신문 기사의 기본인 스트레이트와 사설, 해설 기사는 차치하고서라도 사건 현장의 뒷이야기를 담고 있는 기자 칼럼, 전문가들의 비평과 에세이, 언론사 논설위원들의 칼럼, 특집면을 통해 제공되는 각종 서평과 문화 소개, 만화와 TV 프로그램 소개 등은 이 같은 연유로 무궁무진한 콘텐츠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봄 학기 글짱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새삼스레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신문이 글짱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서평으로 고민하는 이들은 주말에 제공되는 북 섹션, 북 리뷰 코너에서 최고의 서평들을 만날 수 있다. 논설과 작문으로 밤잠을 설치는 이들에게 칼럼과 사설은 살아 숨쉬는 지표인 셈이다. 외부 기고가들이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비평과 에세이는 수필과 일기의 훌륭한 표본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자신의 취약한 글쓰기 분야가 어디인지, 어떤 분야의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지에 5백원을 투자한다는 것에 대해 무슨 생각이 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