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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대학문화의 이념적 가치, 감성적 쾌락으로 희석화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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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0.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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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문화는 거의 전세계적으로 일종의 ‘과잉현상’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런 ‘과잉현상’속에서 문화는 상품화가 가능한 또 하나의 자본시장으로 등장했다. 이 시장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공간이 대학이다. 이에 문화부에서는 대학문화 속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그에 대한 대학의 대항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대학이란 큰 공부를 하는 곳이다. 큰 공부란 기존의 지식들을 모두 의심해 보는 공부, 새로운 지식들을 생산하는 공부이다. 지식이란 인간이 자신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을 정당화하는 핵심적 수단들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대학의 그런 성격은 대학의 위치를 종교와 비슷한 것이 되게 한다. 종교가 세속의 일부이면서도 그 정체성의 한 지점은 그 세속을 초월하는데 있는 것처럼 대학 역시 주어진 사회의 일부이면서 끊임없이 그 사회의 한계를 돌파하는데, 즉 보다 발전된 사회적 관계들의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관심있다.

  그 탐색이 교수들만의 몫인 것은 아니다. 1년마다 물갈이가 되는 학생에 비해 자리를 더 오래 지킨다고 해서 교수가 대학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소박하다. 대학의 학풍이나 교수들의 실력은 어떤 학생들에 의해서 어떤 자극을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거나 제약된다. 사실 기득권에서 더 떨어져 있고 연배로 보아서도 더 순수할 수 있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그 탐색을 가능케 하고 심지어는 주도까지 할 수 있는 핵심적 자원이 된다. 1968년 5월 학생혁명이 프랑스 인문사회과학계의 지형도 전체가 바뀌는 데 일조를 한 것은 좋은 예가 된다.

  발랄한 청춘은 결코 머리만으로 그 탐색을 수행하지도 않는다. 그 탐색은 강의실이나 도서관의 경계를 벗어나며 때로는 실천적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대학 내부와 그 주변에서 벌어지거나 이루어지는 모든 조직화된 행위들이나 이벤트들이 몸으로 행하는 탐색이나 탐색의 결과의 실험적 검증이라는 성격을 갖게 된다. 가끔 그 탐색이 아주 명백한 결론을 보여줄 때는 위에서 예를 든 프랑스 학생혁명이나 우리 사회의 80년대 학생운동의 경우처럼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기존 사회로 하여금 자신의 불완전성을 절실히 깨닫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대학문화이다. 아니, 대학문화의 이념이다. 대학문화가 그 이념과 무관한 것이 될 경우 대학은 정형화된 지식을 생산하고 체제에 순치된 인력을 배출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  고등학교때까지의 학교들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된다. 큰 공부가 아니라 조금 더 어려운 공부를 하는 곳에 불과한 곳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대학들이 처해있는 상황인 것 같다. 90년대 초까지 나름대로 그 이념을 구현한 대학문화는 실종되고 대학생들은 자신들을 불온한 상상력의 근거지라는 소명을 부여받은 특권계층이 아니라 또하나의 대중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대학생의 관심사는 이제 예전만큼 보편적이지 않다. 민중이니 통일이니 하는 이념적 가치들은 중립적인 시선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는 관심거리는 될 지언정 가슴으로 직접 파고들어 오는 호출신호같은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정치 및 경제체제가 그런 가치들에 대한 지향을 어느 정도 회석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개선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요하게는 그들이 이미 마음껏 뿌리내린 자본주의 대중문화가 뿜어대는 감성적 쾌락들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대학가에 온갖 대중적 유흥업소들이 빼꼭히 들어찬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 감성적 쾌락들의 다양성이나 그것들에 대한 집착의 매니아적 성격같은 새로운 현상에서 무언가 진정한 다원주의적 대학문화의 가능성이라는 고무적인 측면을 기대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예전의 대학문화는 획일적인 이념적 가치들의 감성적 호소력을 너무나 당연시했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창작물들이나 활동들은 막 부상하기 시작한 영상매체 중심의 자본주의 대중문화 산물들에 비해 훨씬 소박했다. 장기적인 주체화의 과정으로서의 문화라기보다는 다분히 즉각적인 실천적 효과나 인원의 동원을 위한 문화라는 성격이 강했다.

  결국 대학문화가 대중문화에 포섭되고 있는 것은 대학문화가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인 과정인지도 모른다. 차용을 통해서 그것을 거듭난 대학문화의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먼저 그것의 매력을 경험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내내 그 매력 속에서만 허우적 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더욱이 분명한 것은 OECD 가입과 민주노총의 시대에 이제 더 이상 대학문화는 대항문화의 중심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거듭나게 하는 동력도 외부의 다른 세력에서 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80년대 같은 사회적 위치를 갖는 대학문화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몇 년전 과 후배들의 술자리에 끼어 나의 80년대적 감성에 충격으로 다가온 풍경을 본 적이 있다. 남자 선배한테 애인한테 말하듯 반말로 엄마가 골라주었다는 향수를 자랑하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선배는 그 여학생한테 ‘너 참 섹시하다’라고 말하는, 그런 풍경, 남녀가 둘씩 끼리끼리 앉아 ‘다정한 토론’을 하고 거리낌 없이 서로 어깨를 흔들어주는 등의 요란한 몸짓으로 친근감을 표시하는가 하면 어느새 나즈막한 목소리로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풍경. 지금으로서는 역겹지 만은 않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왠일일까?

/ 정성철 (현실문화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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