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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죽음을 가까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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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0.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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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한보게이트나 김현철 농단(壟斷) 의혹은 사람의 욕심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성경에 의하면 욕심은 결국 사망을 낳는 법인데, 과연 욕심 때문에 YS 정권은 거의 코마(coma, 假死) 상태에 가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경구(警句)로부터 권력의 허망함을 익히기 보다는, 반대로 권력을 악용하는 술수만을 배운 탓일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볼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나 지배계층이 내뿜는 악취에는 우리 시대의 문화사나 사회사가 책임질 요소도 있다. 그것은 요즘 세상이 과거 어느 때 보다 죽음을 멀리하는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한 개인에게 죽음은 분명 생물학적인 현상이지만, 죽은 자를 떠나 보내는 방식은 사회학적 연구의 대상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일상적으로 공존했다. 부모와 조부모에 대해 3년상을 치를 경우, 한 개인은 최대한 12년을 상주(喪主)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 윗대에 대한 제사까지 합치면 한 집안에는 늘 사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와중에서도 아낙네들은 흰 상복 아래 하복부를 부풀리고 가라앉히면서 거의 폐경기때 까지 생명이 점지되는대로 자식들을 낳았다. 그리고 대략 그 가운데 반은 죽었다. 곡(哭)소리와 아기 울음소리는 전통 사회의 이중창이었던 것이다. 이때 죽음과 장례는 삶을 엄숙하게 만들고 이승에 초연하도록 했던 하나의 교훈이었다.

  프랑스의 사회사가(社會史家) 아리에스(Philippe Aries)에 의하면 현대 사회에 들어와 죽음과 장례는 의료화(medicalization)됐다고 한다. 현실의 풍요와 위생관념의 발전은 죽음을 더럽고 추한 것, 따라서 가정과 일상사로부터 가급적 멀리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병원이 죽음을 처리하는 것에 덧붙여 아파트 문화는 장례를 결례(缺禮)로 치부하게 됐다.

  이렇듯 죽음은 가정이나 당사자의 것이라기 보다는 전문 대행업자나 종교단체에 의해 철저히 상업화되거나 관료제화돼 있다. 입시 때문에 학교를 빼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손자가 할아버지의 시신을 보지 않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흔한가? 지인(知人)의 죽음을 문상객 숫자와 분묘의 크기로 평가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 그리고 그 이면에서 새 생명의 출산도 얼마나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며 또한 반윤리적인가? 이처럼 현대 사회는 죽음으로 부터 교훈을 얻는 것에 너무나 소홀하고, 생명 그 자체를 외경(畏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데 너무나 인색하다.

  죽음을 멀리하는 사회가 죽음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리 없다. 사자(死者)가 뭘 가지고 무덤 속을 들어가는지, 그리고 망자(亡者)에 대한 최종평가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그렇게도 ‘죽음에 이르는 욕심’에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그나마 평등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죽음은 생물학적으로는 반생산적일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는 매우 생산적인 것이다. 한보사태나 김현철 파문 앞에서 법과 감옥이 주는 가르침은 차라리 경미하다. 오히려 이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무한권력이나 무한재력이 없는 것 훨씬 이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한생명이기 때문이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전도서 1장 2-3절) 죽음을 알자. 죽음을 가까이 하자. 그래야 욕심을 버릴 수 있고, 욕심을 버려야 삶이 경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전상인(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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