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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마비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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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3.05  22: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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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선


나는 얼음의 집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흘러가는 나에게 함부로 흐르지 마!라고 경고하는 집이었다 흘러서 투명해지며 풍경을 담고 싶은 나에게 아무것도 담지마!라고 경고하는 집이었다 멀어져서 어느 한적한 강가에서 낯선 두 손을 씻고 싶은 나에게 절대 씻지 마!라고 경고하는 집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꿈이 많다고 걱정하는 집이었다 ……마!, ……마!, ……마! 하루종일……마!가 비처럼 쏟아지는 집이었다 나는 ……마!를 비처럼 맞고 지냈다 마!는 비처럼 나를 흠뻑 적셨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마!비 폭우처럼 쏟아붓는 마!비 때로 밤을 새우며 중얼거리는 마!비 종일 귓바퀴에서 맴도는 마!비에 나는 마비되었다 나는 얼음이 되었다 나는 드디어 내 속에 갇힌 걸 축복해주는 집이었다 나는 드디어 나말고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게 된 걸 행운이라고 여겨주는 집이었다 나는 드디어 내가 흘러가는 집을 가두고 있는 사실에 모두 얼음이 돼버린 집이었다 나는 마비된 채로 내가 녹는 꿈만 꾸게 된 집이었다 나는 드디어 얼음의 집의 꿈과 내 꿈이 일치한다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여기 한 생명이 태어나려 하고 있다. 이 예비 생명체는 태어나기 전에 인간의 삶에 대해 OT를 받는다. OT강사는 나다. 나는 이 예비 생명체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누구는 동의하고 누구는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요즘 들어 자꾸만, 사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그럴 테지. 그렇다고 봤을 때, 삶이란 것이 독 몇 개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독에 끊임없이 물을 부어대는 것이라고 했을 때, 무엇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까? 

어렸을 때는 어서 어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가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또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 머리스타일, 생각, 가치관, 취향, 신체의 변화, 친구들. 그런데 어쩐지 구멍 뚫린 독에 물을 계속 붓고 있다는 느낌은 변하지가 않아. 어려서부터 우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해. 공부, 일, 공부, 일, 놀이, 연애, 사교, 아부, 시험, 뒷담화… 그런데 이런 건 대체 뭐고, 왜 하는 걸까? 

어쨌거나 이런 것들을 살아있는 동안 계속 할 수밖에 없다면, 결국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생각해. 

답은 간단해. 사람이란 늘 제 함정을 제가 파는 법이라서, 아주 이상적인 답을 이미 준비해두었으니까. “자유”야! “자유롭게” 하는 거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련의 과정들(일, 공부, 놀이, 연애, 사교, 아부, 눈치, 시험, 뒷담화, 유머 등)은 그것을 얼마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어. 

공부하고 싶은 이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사회, 연애하고 싶은 이들이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 거지.

내 OT를 들은 이후 태어난 이 생명체는 ‘조말선’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리고 어느 집의 딸로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집은 어떤 집일까?

‘하루종일……마!가 비처럼 쏟아지는 집이었다’

‘유교’에 대한 공부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게 유교적인 거야!”라고 말하며 어린이들에게 복종과 틀에 박힌 태도를 강요하는 이 사회에서는, 자유롭게 생각하거나 자유롭게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도 일종의 빛나는 재능일 수밖에 없다.

비를 맞으면 아프지 않다. ‘마!비’를 맞아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마!비’를 맞아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별로 어색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가 하고 싶은 데로 해봐!”라고 하면 괴로워하기도 한다(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이거다, “너가 하고 싶은 데로 해봐” 하니까 진짜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을 봤을 때). 

이제 대학생이 된 분들, 이제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들. 어떻게, 자유롭게 살아볼 자신이 있으신지?

‘나는 드디어 얼음의 집의 꿈과 내 꿈이 일치한다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 김원국(시인ㆍ카피라이터ㆍ국문학과2005년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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