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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무의미로 세상을 변혁하라"다다 예술의 냉소적 현실 비판
신혜경 교수  |  shinh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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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0.26  16: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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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울 하우스만 <예술 비평가>(1919/20)
 
이번 작품은 라울 하우스만의 <예술비평가>이다.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지? 고백하건대, 내게 처음 떠올랐던 생각은 "이건 나도 할 수 있는데"였다. 실상 이것은 우리가 소싯적에 한 번쯤 해보았던 미술기법에 의존하고 있다. 신문기사나 잡지사진 등을 오려내어 붙여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 말이다. 초등학교 시험에도 종종 등장하는 단골문제, "이 기법의 이름은 무엇일까?" 정답은 "콜라주"이다. 특히 이렇게 사진을 오려붙여서 원래의 이미지를 뒤틀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 이것을 "포토몽타주"라고 한다.

포토몽타주의 대가 하우스만은 "베를린 다다"라는 예술운동의 대표자이다. '다다'라는 이름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한편으로 다다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라고 한다. 트리스탄 짜라는 <다다선언>에서 "다다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프리카 크루족은 신성하게 여기는 소의 꼬리를 다다라 부른다. 이탈리아에서는 정육면체나 어머니를 다다라 부른다. 장난감 목마나 보모를 부르는 단어도 다다이고, 루마니아어로 이중긍정을 할 때도 다다라 한다." 다른 한편, 휠젠벡은 자신과 휴고 발이 마담 르루아의 예명을 만들어 주려고 사전을 펼치고 그 위에 칼을 던져서 우연히 꽂힌 말이 다다라고 했다. 이러한 유래에서 보이는 듯, 다다는 논리성과 합리성 대신에 우연성과 비합리성을 주장하는 예술을 지향했다. 다다의 출발은 1차 대전기간에 스위스 취리히에 모여든 일군의 예술가들이 카바레에서 시 낭송과 연주, 다양한 퍼포먼스를 행한대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전쟁의 참상을 낳은 현대 물질만능주의와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이에 길든 대중의 무비판적 순응주의와 자기만족을 조롱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세상에 타협하고 대중에 영합하는 예술에 침을 뱉을 뿐만 아니라, 고고한 척 세상과 담을 쌓는 순수예술의 상아탑 또한 허물어버리고자 했다.

하우스만의 <미술비평가>는 이러한 다다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사진, 신문기사, 활자와 같은 수많은 회화적 자료들로부터 구성되었는데, 화면 중앙에 있는 비평가의 모습은 동료 다다 예술가인 그로스의 얼굴이 붙여졌다. 격식 있는 정장 차림의 비평가는 거대하게 확대된 연필을 들고 있다. 마치 칼처럼 들려진 이 연필은 타인을 찌르고 괴롭히는 비평가의 무기임이 강조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가분수의 느낌을 주는, 대충 그려진 눈과 입의 조각으로 덧붙여진 비평가의 얼굴이다. 큰 머리는 머리에 든 것만 자부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조롱하는 듯하고, 쳐진 눈초리와 입가는 거만함과 고집스러움을 보여준다. 특히 두 눈은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비평가가 예술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작품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음을 야유하는 것 같다. 색연필로 그려진 이빨 위에 붙여진 시뻘건 혀는 비평가가 세 치 혀로 대중들을 혹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특히 그의 목 뒤에는 세모 모양의 은행권이 날카롭게 붙여져 있다. 아마도 누군가가 그의 깃에다 슬쩍 꽂아준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좋은 비평을 바라는 뇌물일지도 모른다.

오른쪽에 있는 젊은 여인의 사진은 비평가가 비평해야 할 대상인데, 그 아래에는 하우스만의 명함이 보인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태양의 회장"이자 “다다소퍼”(이는 철학자 하우스만의 별명이다) 하우스만 자신을 상징한다. 비평가의 등 뒤로는 두 줄의 커다란 활자가 보인다. 개개의 알파벳은 식별할 수 있지만 전체의 단어나 의미는 알아볼 수 없는 이 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암호문처럼 되어버린 비평문들을 풍자하는 것은 아닐까.

다다는 "예술은 죽었다"는 외침으로, 순수하고 고상한 딴 세계의 존재로서의 예술을 이 땅으로 끌어내렸다. 때론 시끌벅적하게 야유하고 냉소적으로 조롱하며, 때론 맹렬한 공격과 비판을 내뱉는 다다의 예술은 우리에게 과연 예술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을 되새기게 한다.

/ 신혜경(인문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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