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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가을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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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1.10  16: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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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17살 연상의 큰누나는 미국 ‘Oregon'의 'Sweet home'이란 곳에 산다. 작은 도시지만 캐스캐디아 같은 큰 산맥에 자리 잡고 있어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누나의 집은 마을에서 떨어진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동네가 아주 특이하다. 주로 은퇴한 사람들이 사는 이곳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까지의 거리가 보통 수백 미터가 넘는다. 그러니 대부분 뜻하지 않게 1만평에 가까운 작은 숲과 커다란 정원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정원의 풀과 잔디를 깎는 일은 날을 잡아 하는 큰일이었다. 누나는 매번 500불을 주고 풀을 깎고는 했는데 건조한 날씨에 풀들이 부딪혀 불이 날수도 있어서 안 깎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돈이 드는 일이니 풀 깎는 것이 더뎠고, 나는 내 키만큼이나 웃자란 풀밭을 바라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매형이 한국식 정원을 짓겠다고 오래전 가져다 놓은 커다란 바위들이 그 풀밭들 사이 곳곳에 놓여 있었는데, 이것이 또 나름대로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나는 가장 큰 바위 위에 올라 앉아 가만히 해질녘 가을 풍경을 즐겼다. 시인의 표현대로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의 갈빛 풍경이 눈물 나게 아름다워 가슴이 뭉클해졌던 것이다. 특히 어스름밤의 정취가 내게 주는 묘한 감정들은 과거나 현재에 존재했던 내 사랑이거나, 아니면 있지도 않았던 사랑의 감정들이 마치 나의 것인 양 나를 위태롭게 감정의 절벽으로 내몰곤 했다. 그때마다 바위위에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곤 했고 사위가 어두워져 귀뚜리 소리가 들릴 때 까지도 자리를 뜨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이런 ‘Sweet Home'의 가을 정취 때문에 난 가을이면 꽤나 먼 누나 집을 번질나게 드나들곤 했다. 달 밝은 밤에 창을 열면, 멀리는 달빛에 흔들리는 호수가 보이고, 가까이는 갈빛이 한창인 풀밭 뒤로 키 큰 아메리칸 삼나무 숲이 대조를 이루며 내 마음속에서 반짝 거렸다. 그럴 때면 난 잠든 가족들 몰래 집밖으로 나가곤 했다. 곰이나 쿠거 같은 위험한 동물이 곧잘 나오는 곳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혼령처럼 동네 숲길을 어슬렁거렸고, 내 발소리에 놀란 말이 푸르륵 목줄을 채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고슴도치 한 마리가 내 발길에 채일 듯 스쳐가고 사슴은 풀을 뜯다 말고 멀리서 나를 훔쳐보았다. 블랙베리를 한손에 가득 따 우물거리기도 하고, 길가 사과나무에서 딴 못생긴 사과를 옷에 문질러 한입 베어 물곤 어두운 숲속으로 던지곤 했다. 산벌레 울음소리를 밀고 당기며 걷는 사이에 어느새 나는 없어지고 두리둥실 가을서정의 작은 덩이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 작은 흙길에서 밤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그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난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가을이 오고 난 다시 그때의 ’Sweet Home'과 그 가을과, 그곳의 나를 그리워한다. 행여 내가 다시 그곳을 간다한 들 그때의 나는 다시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나는 이유 없는 그리움에 가슴을 터억턱 친다. 아, 그리운 나의 서정이여.

 

/ 이현준(소설가  現 철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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