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시가있는하루] 강의실 7101호
이현준 작가  |  skdaks@empa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8.05.31  14:45:1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딸깍. 소리가 났다. 누구지?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다. 벌써 며칠째 환청에 시달렸다. 소리가 난 곳에 아무도 없으니 환청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귀신인가? 하지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율곡관 1층의 작은 강의실. 복도 끝에 자리한 강의실은 6시가 넘으면 항상 입을 다물었다. 낮 동안 사람들이 일으킨 먼지가 가라앉으며 투욱 툭 소릴 낼 뿐이다. 난 그걸 눈 내린다 말한다.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간 사람들의 발걸음에 눈이 허공으로 솟았다가 다시 소복이 쌓인다. 강의실의 저녁은 항상 눈 내리는 겨울이 한창이다. 밤마다 강의실을 찾은 지 벌써 수년이다. 마음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 고르고 골라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이 강의실은 내 학창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구도서관 자리로 철학과 전용강의실을 옮기기 전, 이 강의실은 철학과 전공이 1교시부터 9교시까지 이어지던 곳이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창문은 아이비가 넝쿨째로 뒤덮어 어두운 곳. 그나마 그 너머는 의대건물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젠장 맞을 강의실!! 지청구꾸러기 같은 강의실이었지만, 전용강의실이 바뀌던 날, 난 교수님의 삐뚤빼뚤한 칠판 위 글씨와 허름한 책상들의 나열을 꽤나 오래 바라보았다. 순간 위잉, 천장 위 프로젝터가 움직였다. 램프 수명이 다한 프로젝터는 누런빛을 쏘아대더니 어느새 다시 원위치로 머리를 돌리고 멈추었다. 벌써 그게 3년 전 일이다.

내가 이 강의실에서 하는 일은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 일이다. 가끔 아이비 열매의 개수를 세거나 창문 앞 라일락의 잎사귀 수를 세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건 별을 헤는 것과 같아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바람이라도 불면 잎사귀는 그 위치를 바꾸고 나는 다시 하나, 둘……, 헤고 있다. 딸깍, 다시 소리가 났다. 놀라 뒤돌아 본 곳엔 무뚝뚝한 표정의 경비아저씨가 서있다. 그가 나가고 나는 그간의 환청이 그의 탓 이었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난 다시 가만히 앉아있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멀리 건물 입구에 자물쇠 채우는 소리가 들린다. 강의실 불을 켜는 법이 없는 나는 아저씨에게 들키는 법이 없다. 아침 5시, 다시 입구는 열린다. 그뿐이다.

8년 전, 나에겐 작은 사건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고양이와 쥐, 개와 같은 동물들이 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정이 가까운 겨울밤에 난 곧 잠길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율곡관 옆 구름다리 위를 뛰고 있었다. 술에 취한 내 다리는 휘청거렸고, 어어 하는 사이 나는 구름다리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야아옹, 한참 후 나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놀랍게도 사위가 온갖 동물로 가득했다. 무얼하는 걸까? 고양이가 내 낯을 핥았고, 난 인상을 썼다. 어느 새 눈이 내렸고, 주위엔 온통 눈 위에 찍힌 동물들 발자국으로 가득했다. 눈은 계속 내려 내 시야를 가렸고, 나는 젠장할, 젠장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따 만큼 사랑해!! 8년 전 여자 친구가 쓴 낙서가 흐릿해지긴 했지만 아직 창틀 아래에 온전히 남아 있다. 내가 죽고 몇날 며칠을 울던 그녀는 내 후배와 사랑에 빠졌다. 내가 앉았던 이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이 나란히 수업을 듣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이비 큰 잎에 숨어 숨을 죽였고, 난 책상 아래로 꼭 잡은 두 사람의 손을 보았다. 다 지난 일이다. 두 사람이 졸업한지도 벌써 5년 전 일이다. 나는 머물렀고, 모두 떠났다. 늙어가는 교수님의 얼굴이 그래도 반가운 건 어쩔 수 없다.

딸깍, 소리가 났다. 뒤돌아 본 곳엔 아무도 없다. 난 문으로 다가갔다. 웬걸, 소리의 주인공들이 어느새 강의실 가득이다. 고양이가 내 다리에 등을 문질렀고, 쥐들은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기니피그들은 구석에서 뭔가를 계속 갉아대고, 토끼는 의자위로 뛰어올랐다. 어느새 개와 돼지들도 들어오고 강의실은 난장판이었다. 동이 터오고 동물들은 하나 둘씩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줄지어 나가는 그 끝에 나도 섰다. 그들은 줄줄이 창문 밖 동물위령탑 안으로 들어갔다. 위령탑 앞에서 주저하던 나는 차마 그들을 따라 들어가지 못했다. 그저 한없이 슬퍼졌다. 결국 나는 다시 커다란 아이비 잎 밑으로 숨어들고 바람에 몸이 흔들렸다. 이내 강의실에 교수님이 오시고 수업은 시작되었다. 기나긴 낮은 끝나지 않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내 입에서 바쇼의 하이쿠 시 하나가 어이쿠 튀어 나왔다.

너무 울어 / 텅 비어 버렸는가 / 이 매미 허물은…….


/ 이현준(소설가 ․ 국문과 박사과정)
이현준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한림대 수시모집 경쟁률 5.09대 1로 ‘3년 만의 상승’
2
[보도] 2023학년도 국가장학금 신청, 재학생 1차 필수
3
[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졸업, ‘유예 신청’ ‘심사료 납부’
4
[보도] 4차 동아리 대표자 회의로 ‘유종의 미’ 거둬
5
[보도] 겨울밤을 수놓은 하나의 목소리, ‘한림합창단 정기공연’
6
[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 캡스톤 경진대회 실시
7
[기획] 1년 만에 부활한 총학, 4곳서 연장투표도 진행돼…
8
[선거특집] “학우들의 선택에 부응하는 학생회가 되겠다”
9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1
10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2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