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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하루] 가을
이현준 작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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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2.05  01: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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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정호승

하늘다람쥐 한 마리
가을 산길 위에 죽어 있다

도토리나무 열매 하나
햇살에 몸을 뒤척이며 누워 있고

가랑잎나비 한 마리
가랑잎 위에 앉아 울고 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난 평소처럼 움직였고, 지갑이 사라질 찰나 따윈 없었다. 뭔가 뒤죽박죽 엉켜 버렸다.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매듭을 풀 수가 없다. 정말 이상한 한 주야, 혼잣말을 할 뿐이다. 

피곤했는데, 자꾸 잠에서 깼다. 매트의 온도를 줄여보고 불빛이 눈에 거슬려 휴대전화를 엎어놓았다. 하지만 겨우 감겼던 눈은 다시 뜨였다. 누구지? 방 한구석에 누군가 서있다. 용성이니?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큰누이는 죽은 셋째 누이를 새벽 어스름에 종종 본다고 했다. 나도 그런 것은 아닐까. 역시 그렇군. 아무래도 실루엣은 벽에 걸린 내 옷인 듯 했다. 그래도 한 번 더 묻고 싶었다. 용성아! 내 부름에 잠시 실루엣이 움직이는 듯 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슬프긴 한 거니? 내게 묻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은 용성이의 첫 월급날이었다. 동문회 술자리에서 녀석은 취직했다며 씽긋 웃었다. 월급타면 한 턱 낼께요. 오지랖 넓은 녀석이 나에게까지 인사치레를 하나 싶어 고맙다, 했다. 즐겁다니, 그것으로 족했다. 그런데, 그 어이없는 녀석이, 첫 월급날에 운명을 달리했다. 모꼬지를 간 후배들에게, 첫 월급 턱을 내려 달려가던 녀석의 차가 깊은 계곡으로 추락을 했단다. 후배들이 기다리던 엠티장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녀석은 혼자 먼 길을 가고 말았다. 미친 놈…. 이른 아침, 비보를 접한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짧은 장례식을 마치고 이른 새벽 화장장으로 향하기 전, 용성이의 시신을 실은 차가 부모님 집에 들렀다. 잘 가라고, 미련 없이 가라고 부모가 자식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젠장, 세상에서 이보다 가슴 아픈 장면은 없다. 두 분의 슬픈 뒷모습에 콧날이 시큰거렸다. 그렇게 집을 떠나 화장장으로 향한 녀석은 서른 살의 가을이 채 가기 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자신을 위해 소리 내어 우는 지인들의 울음소리를 훨훨 태우면서 말이다. 

며칠 후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교수님이 용성이의 이야기에 말끝을 흐리셨다. 모두들 또 훌쩍거렸다. 하지만 난 울지 않았다. 장례식 때도, 화장장에서도 울지 않았다. 그깟 놈, 눈물이 아까웠다. 그런데, 벽에 걸린 옷을 보고 용성이의 이름을 부르다니 나란 인간이 가증스러웠다. 옷 가까이 가서 용성이가 아니라는, 너무 뻔한 확인을 하고서야 나는 술을 꺼내들었다. 싼 가격에 마트에서 사다놓은 와인은 제법 괜찮았다. 너도 마실래? 혼잣말을 했다.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더니 감정이 요동쳤다. 함께 예비답사여행을 가고, 소양5교 밑에서 고기를 구워먹던 일들이 어제일 같이 느껴졌다. 술 한 잔 하러 나오세요. 평소엔 날 보면 맨송맨송 쑥스러워하던 녀석이 술만 취하면 전화를 했다. 다음에 하자. 습관처럼 웃으며 거절했건만 영원한 거절이 되어 버렸다. 술 한 잔 할래? 잔을 건넸다. 그러죠, 뭐. 용성이가 어느새 내 앞에 앉아있었다. 핑 눈물이 났다. 거참, 본때 없는 녀석이 정말 나타나 버렸다. 그 지갑 제가 가져갔어요. 그래? 그랬구나, 잘했다. 노잣돈이든 술값이든, 네가 가져갔으니 됐다. 주거니 받거니 금세 한 병을 비웠고, 이내 용성이가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어느새 아침이 왔고, 나는 지갑 잃어버린 일을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추운 가을의 끝…, 산길위에 죽어있는 하늘다람쥐를 보며 가랑잎나비가 울고 있다. 나비가 앉아있던 가랑잎이 바람에 휩쓸리고, 나비는 미련 없이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있다.      

故 안용성, 어디서든 평안하길…….

/ 이현준(소설가 ․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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