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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 하루] 꽃이 울어도 듣지 못할 때가 있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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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4.24  18: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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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차에 실려 가는 꽃

 

                                       정호승

모가지가 잘려도 꽃은 꽃이다

싹둑싹둑 모가지가 잘린 꽃들끼리 모여

봄이 오는 고속도로를 끌어안고 운다

인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일만큼

더한 아름다움은 없다고

장의차 한쪽 구석에 앉아 울며 가는 꽃들

서로 쓰다듬고 껴안고 뺨 부비다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마냥 졸고 있는

상주들을 대신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아름다운 곡비(哭婢)다

 

요즘 우울한 일들이 많다. 장자연처럼 아름다운여자가 자살한 것도 어쩐지 나의 큰 손실인 듯싶고. 그래서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한 시를 한 편 골라보았다. 아마도 장례식을 마치고 관을 실은 장의차가 묘지를 향해 달려가는 풍경인 듯하다. 그런데 시인은 이 풍경 중에서 ‘인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게’ 된 꽃들의 울음을 듣는다.

사람들이 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이 사람과는 참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사람이 이 시에서처럼 어떤 다른 생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가지가 댕강 잘려서 데코레이션 되어 죽어가고 있는데, 죽어가는 중에 할 말은 있어서 떠들어 댄다면 이런 식으로 온화한 말이 되진 않을 것이다. 별별 욕과 분노가 시퍼렇게 피어오르겠지. 어쩌면 꽃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제물이 되는 건,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례식을 위한 꽃들은 현대판 제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가끔 2천 년 정도 뒤의 미래 사람들이 오늘날의 모습들을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장례식이야말로 촌스럽고 야만적으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왕들이 죽었을 때는 짐승도 제물로 바치고, 부인이나 첩들, 노예들도 제물로 다 묻어버렸다는데(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지금은 꽃들을 제물로 삼는다. 솔직히 사람들에겐 꽃 몇 송이는 생명도 아니겠지.(그리고 어떤 이들은 사람을 꽃으로 보기도 한다)

학교에 다니던 때, 좋아하던 여자 후배의 방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토스트를 만들어줘서 먹고 있는데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나자, 후배가 내게 휴지를 쥐어주며 죽여! 죽여!라고 말했다. 그때는 이 여자후배를 꽤 좋아해서 말없이 눌러 죽이고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후배에 대한 감정은 다 없어져 버렸는데, 그때 그 죽여! 죽여!하던 목소리가 지워지질 않는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땅을 소유한다는 가치관 자체가 없었다지만, 불행히도 오늘날 한국인들은 땅과 소유에 민감해서, 바퀴벌레나 개미를 상대로 여기는 내 집이니까 네가 나쁜 거야 정도의 합리화와 함께 손을 더럽히고는 한다. 그래도 뭐랄까 청부 살생은 좀 더 나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기왕 꽃을 꺾어 데코레이션 할 거라면 돈 주고 사기보다 직접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꽃들이 덜 희생되고, 또 그렇게 상업적으로 대량 재배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꽃이 필요할 상황을 위해 우리가 직접 꽃들을 키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꽃들을 하나하나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무감각하게 꽃들을 꺾어버리지도 않을 텐데....

우리가 죄책감 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건, 우리가 소나 돼지나 닭을 직접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종의 청부 살생이다. 꽃들도 다 남들이 죽여준다. 이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희생이라고 해야 할지, 경제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이렇게 뭔가를 죽이는 걸 남들이 다 해준다면, 대신 우린 무얼 해야 할까? 더럽혀지지 않은 우리의 손은, 어쩌면 뭔가를 살리려고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죽음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결혼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 같다. 사실 죽음에는 형식이 없다. 산 사람들이 죽음에 형식을 만드는 것이다. 산 사람들이 산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가공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남한에서만도 앞으로 죽을 사람이 4천8백만 명이 넘는데, 더는 누구를 매장할 땅이 없다고 한다. 살아생전 지하에 사는 걸 그리도 싫어하고 타워 팰리스, 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던 이들이, 죽어서는 또 기어코 땅 밑에 들어가지 못해, 선산에 자기 묻힐 자리 몇 평 마련하려고 암투를 벌인다. 언제쯤이면 이런 형식에 대한 욕구가 수그러들지 모르겠다. 달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시대가 온다면, 묻힐 자리를 원하는 많은 사람이 검은 장의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서 묻히고자 할지 모른다. 맙소사.

/ 김원국(시인․국문학과 0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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