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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패배의식은 자신감 결여에서 생겨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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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0.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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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러시아에는 미래주의를 이끌며 예술의 사회참여성을 강조했던 마야코프스키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기존의 모든 문화적·예술적 전통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취향에 뺨을 때릴 것’을 주장할 만큼 극단적이고 동시에 열정적이었다. 행동하는 예술가로서 그의 시는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결국에는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비난을 받게 됐지만, 러시아 혁명 초기에만 해도 그의 시는 선전시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의 시는 강력함과 소란스러움으로 인해 주목을 받았지만 시인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보여준 기이하고 과장된 행동에 의해서도 세인의 관심을 끌어왔다. 이러한 그의 행동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특히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불을 꺼달라고 신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인의 객기와 예술가다운 자유로움의 표현으로서 이 일화는 종종 인용되며 사람들로 하여금 마야코프스키의 무모하지만 정열적인 성격에 찬사를 보내게 한다.

  그런데 지난 만우절에 우연히 TV에서 이와 매우 유사한 상황을 접하게 됐다. 한 아주머니가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가슴속에 불을 꺼달라고 했다는 한 해프닝에 관한 보도였다. 이것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마야코프스키를 떠올렸고 그 아주머니의 행동으로 인해, 러시아 시인의 예술가다운 객기가 희화되는 것 같아 솔직히 기분이 언짢았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시인으로서 러시아 문단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야코프스키의 그러한 비이성적인 행동은 그것이 무모하기 때문에 더욱 시인의 이름에 걸맞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이름없는 한 아주머니가 그와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은 시인의 이름과 예술성에 손상을 주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마야코프스키에게 허용된 행위라면 그것이 왜 다른 사람에게는 안되겠는갗라고 말이다. 더욱이 ‘그 전화의 주인공이 누군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 그 사람이 러시아의 시인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됐는갗 하는 의문이 스쳐갔다. 결국 문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나의 인식의 문제였던 것이다. 문학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택한 후 나는 항상 작품을 손에 들었을 때 어떠한 식으로든 그 작품들에 대해 기존의 판단에 따른 선입관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고 고정된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하지만 어느새 그토록 거부해 왔던 선입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됐던 것이며, 만우절의 에피소드는 나로 하여금 그것을 깨우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나는 새삼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게 됐다. 특히 ‘학생들을 대할 때 내 나름대로의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나의 기준에 따라 그들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려 하지 않았는지’ 하고 말이다. 자유로운 사고를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학생들의 다양한 태도와 입장을 무시한 채 그들을 기존의 규칙이나 관점으로 억지로 이끌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도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불신적인 사회 풍조의 문제, 부모자식 간에, 스승과 제자 간에, 친구들 사이에, 즉 나와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와의 사이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이처럼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갖는 선입관 그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신뢰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가치 기준에 꿰맞추려는 욕망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러한 선입관의 문제는 단지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자신이 스스로를 어떤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패배의식 즉 나는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세상은 전혀 나를 받아 들여 줄 의사가 없고, 하는 식의 불평의 상당 부분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부정적인 태도로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자신에 대해, 그리고 타인에 대해, 세상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바라봤으면 한다. 그래도 우리의 세상은 살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 박혜경(러시아학과)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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