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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보도]연극 『전태일』을 보고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의 외침을 기억하라!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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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1.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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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죽어간 민중의 아들 전태일이 연극 무대에서 다시 살아났다. 전태일 30주기를 맞이해 극단한강은 지난 6일 강원대 백령문화회관에서 전태일의 불꽃같은 삶을 무대에 올렸다.

  전태일의 어린시절 품팔이 시절부터 노동운동을 하다 분신자살 하는 날까지의 모습을 그린 이 연극은 영웅으로서 ‘전태일’을 나타내기보다는 지옥 같은 노동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고뇌하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인간적인 모습의 ‘전태일’을 표현했다.

  50년대를 6·25가 60년대를 4·19가 대표한다면 70년대를 대표하는 것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일 것이다. 이처럼 그가 우리들의 가슴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세상에 알린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적 전태일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하고 싶어하던 공부를 포기한 채, 신문과 우산을 팔고 구두닦이를 하면서 겨우 끼니를 채워간다. 그때 그는 사회의 냉담함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그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는 안정된 직업을 얻기 위해 평화시장에 가서 시다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노동지옥이라고 불릴 만큼 노동자에게는 가혹한 곳이였다. 타이밍을 먹으며 계속되는 철야작업에 한 미싱사가 폐결핵으로 각혈을 하고 해고당하는 일이 생긴다. 이때 전태일은 억눌려 있던 분노를 느끼지만 이에 저항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의 무력함에 절망하게 된다.

  극단한강은 이러한 작업장의 모습을 언어로써 표현하지 않고, 소리와 동작을 살려서 나타냈다.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잔혹한 노동 장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전태일이 직접행동을 하게 되는 계기는 아버지에게 근로기준법의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고 그 책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의 노동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이 사실을 재단사들에게 알리고 그들과 함께 ‘바보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는 재단사인 자신을 바보라고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쓰러져 가는 어린 시다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바보라고 말이다. 이처럼 그는 자기 자신에게 벌어지는 부당한 처사보다는 병들어가는 여공들과 아직은 너무 어린 시다들에게 주어지는 가혹한 현실 때문에 분노했다. 어찌보면 운동가로써 그는 마음이 약했다. 연극에서는 그를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노동운동가로써가 아닌 이런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간 ‘전태일’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바보회’가 조직되고 나서 그는 근로감독관에게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등 이런 현실을 알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게된다. 하지만 기다리라는 말 외에 더 이상의 답변을 들을 수가 없게 되자 그는 점점 지쳐가게 된다.

  그가 바보회를 조직한지 1년이 다 돼가도록 작업장에는 환풍기 하나 설치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생계의 어려움, 실직자로서의 우울과 불안, 친구들 속에서의 고독, 바보회의 파탄, 사회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그에게는 죽음과 같은 시련이 다가오게 된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그의 그런 고뇌들을 몸짓으로 표현해냈다.

  계속되는 좌절 속에서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인간자체에 대한 그의 연민과 또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이 사회에 대한 깊은 분노였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마친 그는 동료들과 투쟁을 결의하고 근로기준법 책 화형식을 제안하게 된다.

  11월13일 투쟁을 준비하던 그는 지금까지 그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됐던 것처럼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경찰들의 폭력진압에 쓰러져 가는 동지들을 보면서 자신의 희생을 각오한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11명의 전태일이 등장한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자 전태일이라는 의미에서 설정된 것이라고 한다. 각 장면의 전태일이 독립성을 가지면서 다른 장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전태일의 가장 특징적인 사상인 ‘전체의 일부인 나’라는 개념을 살린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11명의 전태일이 분신을 하게된다.

  또 대사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 않고, 상징적인 몸짓과 노래로써 대사를 대신하고 있다. 하루 16시간 고된 노동의 현실을 한 두마디 말로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느낌으로 전하고자 했다. 그의 분노는 세상에 대해 처음에는 단지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비리와 모순뿐인 사회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열사의 정신을 타고난 것은 분명 아니다. 단지, 어린 시다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마음 착하고, 정직한 청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에 불꽃으로 남아있는 것은 차마 아무도 요구하려, 실천하려 하지 못했던 일들을 그가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못 배우고 어리고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어린 시다들도 먼지 구덩이 속에서 16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도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가 산화해 간지도 3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만약 살아있다면 52세의 중년이었을 그이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전태일은 언제나 22살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려던 것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넘어서 인간 최소한의 존엄성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약자의 존엄성은 존중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발딛게 되면서 전태일이 느꼈던 분노들을 느끼고, 사회의 모순들에 부딪혀 방황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숭고한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사회의 억압과 불평등을 보면서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최진영 수습기자 wlsdud8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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