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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듣는 음악] 팝의 황제를 그리며..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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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3  20: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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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의 사망소식을 듣고 전 세계는 슬픔에 빠졌고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단지 팝가수가 세상을 떠났구나 라고 단순하게 다루어질 사건이 아니었다. 이제는 전설이 되었지만 ‘팝’ 하면 ‘마이클잭슨’, ‘마이클잭슨’ 하면 ‘팝’이라고 답이 나올 정도로 그는 팝의 역사였고 산증인이었다. 마이클잭슨의 진가는 그가 어려서부터 발휘됐다. 1963년 그의 나이 6세 때부터 친척들과 형제들로 이뤄진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와 후의 '잭슨스(The Jacksons)'에서 활동했고 약 1억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다. 1971년 나이 14세 때 1집 앨범 Got To Be There내고 솔로로 데뷔했고 1979년 처음 솔로 앨범 Off the Wall을 발표했다. 특히 앨범 <Thriller>는 전 세계적으로 1억 4백만 장이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뒀으며 그의 앨범들은 현재까지 7억 5천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고 또한 그래미 시상식에서 13개의 상을 받았다. 마이클 잭슨은 1990년에 역대 최연소인 33세로 그래미 레전드상(Grammy Legend Award)을 받았고 2001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으며, 2002년에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는 노래, 춤, 작곡, 기획까지 모든 것을 해냈으며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전 세계인들에게 이슈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쌓은 그의 음악인생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은 선천적으로 백반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었고 1984년 광고 촬영 도중 심한 화상을 입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성형수술은 어린 시절부터 코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고, 공연 리허설 중 무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코를 심하게 다치면서 하게 됐다. 그러나 이로 인해 마이클 잭슨이 성형중독이라는 등, 백인이 되고 싶어 피부를 박피했다는 등의 루머에 시달리게 됐다. 무엇보다도 그의 인생에서 오점으로 남은 사건은 바로 두 번의 성추행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둘 다 무죄로 판명 났지만 그에게 있어서 이 성추행사건은 그의 명예뿐 아니라 음악인생에 있어서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아버지에 이끌려 음악활동을 하느라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던 그는 자신이 만든 왕국 '네버랜드'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해 마이클잭슨이 무혐의 판결을 받고도 아동성추행자로 몰리게 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자는 것을 좋아하는 버릇 때문이었다. 마이클잭슨의 음악적 스타일은 매우 다양하다. 모타운 시절에는 댄스, 소프트 락, 재즈, 발라드를 주 장르로 했고, 1979년 Off the Wall을 발매하면서, 펑크, 팝 발라드, 재즈, 소울 등의 성숙한 음악을 장르로 했다. 80~90년대에는 거기에다 R&B, 뉴 잭스 윙 적인 음악을 했으며, 2001년에 발매한 Invincible에서는 마이클 잭슨 스타일로 알려진 독특한 어번 R&B 음악에 그가 지향하던 미래적인 사운드를 첨가해 음악의 장벽을 깼으며, 뮤직비디오를 대중음악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만들었다. 또한 팝 뮤직의 정석을 잘 정리하고 포장했으며, 그의 목소리는 R&B와 힙합, 팝 아티스트 등에게 많은 영향를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쟁 반대, 인종차별, 학대, 범죄의 위험성, 지구환경 등을 강조한 음악적 메시지로 세계평화와 인종적 장벽을 깨는 데 기여했다. 마이클잭슨은 3차례나 방한 할 정도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그는 대한민국이 통일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으며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대한민국의 통일을 돕고 싶어 했다. 또한 대한민국이 통일되면 다시 대한민국을 방문해서 남한과 북한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안타깝게 그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 마이클잭슨은 단순한 팝가수가 아니었다. 그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아마도 그의 이름과 그의 음악은 이 세상에 음악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박병훈(기초교육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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