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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견문록]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희망, ‘온천’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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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14  10: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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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도 같은 최고 온천, 쿠사츠

지난 2009년 가을, 도쿄(東京) 북쪽에 위치한 군마(群馬) 현의 쿠사츠(草津)에 다녀 온 적이 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셨기에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교통비와 여관비가 워낙 비싼 일본이다 보니 어디 나서려 마음만 먹어도 절로 위축되는 분위기에서 자동차까지 빌려가며 다녀온 일정은 1박 2일 코스.

우리나라의 영동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간에츠(關越) 고속도로를 한 시간 정도 주행한 후, 다시 꼬불꼬불한 산길을 무려 두 시간 이상 달린 끝에 도착한 목적지는 흡사, 지옥도와 같은 풍경을 펼쳐놓고 있었다. 주변이 온통 시커먼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발 밑이 푹 꺼진듯한 지형에 자리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자욱한 유황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만여 개에 달하는 일본 온천 중에서도 열도인들이 명천(名泉) 중의 명천(名泉)으로 꼽는다는 쿠사츠 온천이었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 들러 여장(旅裝)을 풀고, 해당 숙소의 온천에 들어가 보니 삶은 계란 껍질에서 나는 듯한 비린내가 진동한다. 산성 성분에서 비롯된 유황 특유의 냄새라는 것이 주인장의 설명. 유황과 수증기가 뒤범벅된 연기를 헤쳐가며 온천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발끝에서 찌르르한 기운이 감돈 까닭에서다. 유황 온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데, 워낙 유황 함유량이 많다 보니 피부가 잠시 경기(驚氣)를 일으켰던 것이다.

실제로, 쿠사츠 온천은 일본 최고의 유황 함유량을 자랑하고 있기에 10엔짜리 동전을 1주일만 담가두면 동전이 삭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벽에 난 구멍을 통해 탕으로 흘러 들어오는 온천물은 낙하 지점에 위치한 돌 역시, 푸르스름하게 변색시키며 한움큼 삭여 놓았다. 후에 자료를 찾아보니 하도 강한 산성 때문에 어떤 세균이나 유해 미생물도 몇 초 안에 죽고 마는 곳이 쿠사츠의 유황물이란다. ‘명의(名醫)도, 쿠사츠의 온천도 상사병만큼은 치료하지 못한다’는 속담을 낳은쿠사츠의 명성이 결코 허언(虛言)만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몇 달간 온천욕을 계속하면 웬만한 아토피 역시 씻은 듯이 낫는다는 후문(後聞)이다.

다음 날 아침, 다시 한번 온천욕을 하러 탕에 들어왔을 때 마침 떠오르는 햇빛 한줄기가 필자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곧이어, 말로는 표현못할 감동과 행복이 몸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왔다. 나중에 도쿄로 돌아와 쿠사츠 온천에 다녀온 이야기를 전하며 당시의 기분을 어눌하게 설명하자, 일본어 선생은 “그래서 열도인들은 그런 순간, 일본인으로 태어난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느낀다”는 말로 화답해 주었다.

겨울 여행의 꽃, 온센 료쿄(온천 여행)

이제껏 일본을 소개하면서 신(神)마저 저버린 재난의 땅임을 유달리 강조한 것 같아, 이번엔 신이 준 ‘작으면서도 큰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한다. 재앙과 불행, 고통 등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으로 튀어나온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태풍과 폭우, 호설(豪雪)과 지진으로 끊임없이시달리는 일본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계절 축제로 봄엔 벚꽃을 즐기는 ‘하나미’(花見), 여름엔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하나비’(花火), 가을에 단풍을 만끽하는 ‘모미지가리’(紅葉狩)가 있다면, 열도의 겨울엔 단연코 온천 여행으로 불리는 ‘온센 료쿄’(溫泉 旅行)가 있다. 그러고 보면 길고 습한 여름을 나기 위한 일본의 가옥은 대부분 안방에 다다미를 깔아 놓는지라 추운 겨울엔 온돌식 난방이 불가능하다. 결국, 아랫목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냉방에서 한겨울을 나야 하는 일본인들은 잠들기 전에 욕조에 한참 동안 들어가 몸을 발갛게 데운 후, 그 열기가 식기 전에 이부자리에 드는 방식으로 겨울을 나왔다. 이와 함께, ‘유탄포’(湯たんぽ)라 불리는 보온 물통을 가슴에 끌어안고 잠자리에 드는 것도 냉기 가득한 방안에서 겨울을 보내는 방법이었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온센 료코’로 일컬어지는 온천 여행은 그 연장선상에서 명승지도 구경하고 온천욕도 하며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해왔다.

사실, 온천은 지진 및 화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열도 자체가 유라시아 판, 태평양 판, 북아메리카 판 그리고 필리핀 판과의 경계부에 정확히 위치하고 있다 보니 땅 속에선 지각끼리 부딪치며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가 고스란히 지하수를 끓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세계 활화산의 10%에 해당하는 86개 화산이 일본에 집중돼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근래 들어서는, 지난 2000년에는 도쿄 앞바다에 위치한 미야케지마(三宅島)에서 화산이 분화해 섬주민 전원이 대피한 바가 있으며, 몇 해 전부터는 홋카이도(北海島)의 우스잔(有珠山)과 큐슈(九州)의 운젠다케(雲仙岳) 등에서 분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1월에도 큐슈 지역의 신모에 다케(新燃岳) 화산이 분화를 재개해 해당 지역이 한바탕 소동을 겪은 바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富士山) 역시,지금까지 여러 차례 분화했고 앞으로도 계속 불을 뿜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후지산과 같이 용암류나 화산 방출물이 두텁게 퇴적된 화산엔 온천이 없다는 것. 해서, ‘후지산이 보이는 곳엔 온천이 없다’라는 하코네(籍根) 지방의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쨌거나 온 나라를 뒤덮다시피 한 온천 덕에 온갖 종류의 관련 상품들이 발달한 곳 역시, 일본이다. 당일 치기 온천 여행인 ‘히가에리 온센’에서부터 ‘로텐부로’(노천 온천)는 물론, ‘온천 테마파크,’ ‘온천 영화제’ 등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상품만도 수백 가지다. 필자 가족들이 종종 들르곤 했던 지바(千葉)현의 ‘우라야쓰 만게쿄’(浦安万華鄕)란 온천은 퇴근 길의 직장인들을 겨냥해 온천욕과 함께 저렴한 저녁식사를 패키지로 묶어 팔기도 했다. 이 같은 배경 속에 지난 2007년 도쿄 스기나미(杉並)구에 위치한 한 소극장에서는 두 달간 온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당시, 영화관측이 엄선한 일본 영화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즈의 무희’와 ‘설국’(雪國)을 비롯해 ‘온천여의’(溫泉女医), ‘48세의 저항,’ ‘젊은 녀석,’ ‘애정,’ ‘온천의 게이샤’ 등 무려 32편에 달했다.

그래서일까? 세계에서 가장 청결하다는 일본인들의 습성에는 풍부한 물과 함께 도처에 널린 온천이 한몫 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열도의 온천은 태풍과 지진에 시달리는 일본인들에게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가 준 조그마한 선물인셈이고.

/심훈(언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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