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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견문록] ‘구관이 명관이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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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24  12: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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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맹주의 폭정 고발하면 위계질서 이유로 반드시 사형 당해
죽을 정도로 살기 힘들면 마을 위해 희생할 농민 영웅 등장


문 1: 일본 지하철에서 가장 시끄러운 나라 사람들은?
답 1: 미국인들입니다.
문 2: 그렇다면 일본 지하철에서 두 번째로 시끄러운 나라 사람들은?
답 2: 중국 사람들입니다.

전철 내부가 마치 성당처럼 조용하며 엄숙하기까지 한 일본 지하철. 그런 경건함 속에서도 주변 환경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소프라노와 테너 목소리를 다투는 인종들이 바로 미국인과 중국인들이다. 고성(高聲)이라면 어디서도 뒤지지 않는 이들이 한국인이라지만, 일본 지하철의 소음 표시 앞에서는 어느 정도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정서다.

반면 미국인들의 경우, 전화 금지 표지가 사방에 붙어있건 말건 당당하게 전화하거나 자신들끼리 마음껏 대화를 나누다가 목적지에 도달하면 휑하고 내리는 게 다반사다. 마찬가지로 중국인들 역시, 선천적으로 큰 목소리와 함께 주변을 들었다 놨다 하는 대국적 기질로 일본 전철을 뒤집어 놓는다. 해서, 미국인과 중국인들이 내린 이후의 전철은 그야말로 폭풍우가 지나간 형국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소음엔 짜증스런 표정으로 항의하는 일본인들도 미국인들의 자유분방함 앞에선 당혹스러움과 어색함이 가득한 눈동자만 굴릴 뿐이다. 영어에 대한 알레르기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역사적인 이유가 자리한 까닭에서다.

   

‘개성’과 ‘자유’라는 스펙트럼을 놓고 볼 때, 최대치인 오른편 끝에 위치한 나라가 미국이라면 왼쪽 끝에 자리한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말하자면 미국이 어려서부터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며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반해, 일본은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을 주변에 맞추도록 강제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여행은 열대 지방과 한대 지역을 오가는 극한 체험과도 유사하다는 생각이다.

차이가 있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대상이 피부냐, 머리냐의 문제일 뿐. 그래서일까? 일본에 머무르다 미국으로 떠난 필자의 지인(知人)은 첫 몇 주간 “양국 간의 생활양식이 너무 달라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털어 놓았다. 어디서나 조용하고 깨끗하며 모든 것이 감탄스러우리만큼 완벽하게 운영되는 일본을 떠나, 주변의 눈초리는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 개성대로 마음껏 행동하는 미국에서 지상 최대의 문화 충격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냉탕에 있다가 곧바로 열탕에 들어간 느낌”이라는 지인의 경직된 몸이 미국에서 완전히 풀리기까지는 몇 주가 걸렸다는 후문(後聞)이다.

돌이켜 보면 일본인의 수동적인 행동 양식은 그네들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정치 체제는 한, 중, 베트남으로 연결되는 동-남아시아 벨트와는 판이하게 전개돼 왔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베트남 모두, 과거(科擧)에 급제한 관료들이 국가를 운영했던 것과 달리, 지역의 맹주가 해당 지역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수천 년간 쥐고 흔든 국가가 일본이었다.

역사적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일본을 통일했다고는 하나, 중앙집권적인 의미에서 전국을 통치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지방 호족들의 기득권은 그대로 인정해 줌으로써 19세기말의 메이지(明治) 유신 때까지 중세 유럽의 봉건제를 면면히 이어간 게 일본이란 얘기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전국 통일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호족간의 전쟁이 사라졌다는 것일 뿐, 한 지역의 호족은 여전히 자신의 터전에서 절대적인 존재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자연히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할 경우, 세습도 불가능해 지역의 통치 기반 전체가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연유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손(孫)이 끊긴 지배계층이 고육지책으로 도입한 것이 ‘입양’이었다. 우리의 입양이 사후(死後)에 공양 받기 위한 민속지학적 의미의 문화였던데 반해, 일본의 입양은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진화생물학적 의미의 문화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가로지른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지배 계급의 선출방식이었다. 한번 상상해 보라! 군부대가 지배하는 지역에서 태어나 사단장의 고조 할아버지 때부터 현 사단장에 이르기까지 4~5대에 걸쳐 세습 군인에 의해 다스려져 온 사회 환경을. 왕회장의 소유물로서 아들과 손자에게 대물림 된 회사, 이사장인 할아버지가 설립한 대학을 아버지로부터 승계 받은 자식. 이런 분위기에서 애당초, 자유와 개성, 자율과 창의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서도 교직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이사장에 의해 독단적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들은 초, 중, 고교 및 대학을 막론하고 구성원들의 행동거지가 극도로 위축되게 마련이다.

철저한 유교 국가답게 과거제를 통해 지배 계급을 구축해 나간 조선에서는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아무리 부자여도 관직에 진출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통치 계급은 지역에 부임해 와서도 임기제에 따라 일정 기간 후면 떠날 수밖에 없었기에 통치자에 대한 백성들의 인식이 일본인들의 그것과는 천양지차로 달랐다. 세습 신분인 사무라이와 문관 국가시험의 경쟁을 통해 계획적으로 선발된 한국과 중국의 관료 지식인들은 그렇게 동아시아에서 일본과의 차이를 벌려 나갔다. 이에 대해 「사무라이의 나라」를 쓴 이케가미 에이코(池上英子)는 일본의 정치 체제가 태생이라는 우발적 사건에 뿌리내리고 있는 데 반해 한반도의 관료제는 그 본질부터 완전히 다른 유형의 조직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열도의 백성들은 성주(城主)에 대한 절대 복종을 생존 양식으로 자연스레 익혀 나갔다. 만일 백성들이 지역 맹주의 폭정에 항거해 중앙 정부에 탄원을 제기할 경우, 이들에게 돌아오는 결과는 대단히 가혹했다. 비록, 중앙 정부가 직접 개입에 나서 지역 민원을 해결해 주기도 했으나, 위계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청원을 올린 이들은 모두 사형을 당해야만 했다.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핍박을 받게 되는 백성들은 중앙 정부에 청원서를 전달하기 앞서, 자신들을 위해 죽어줄 지도자를 먼저 뽑아야 했다. 그렇게 마을을 위해 기름 가마에 들어가거나 교수형을 당해 죽는 탄원 주동자는 이후, 농민들의 영웅으로 구전(口傳)돼 갔다. 실제로, 열도에서는 이렇듯 마을을 위해 살신성인한 의민(義民)들을 기리는 사당이 전국 곳곳에서 지금도 슬픈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결국 죽을 정도로 내몰리지 않는 한 웬만하면 참고 버티며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이 봉건 제도 하의 일본인이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는 그런 중세 일본인들의 모습이 간단하지만 명료하게 묘사돼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 중인 어느 해, 국민들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며 어느 정치인이 털어 놓은 불만이 바로 그것.

나는 선거구민들과 거의 매일 밤 좌담회를 열어 의견을 들으려 했지만, 그들은 두려워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전의를 북돋는 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국민은 이른바 전시특별형벌과 치안유지법에 의해 철저한 통제를 받고 있어서 마치 봉건시대의 국민처럼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당연히 발휘되었어야 할 전력이 지금도 발휘되지 않고 있습니다. (61~62쪽)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인들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모습)는 함부로 의중을 보일 경우, 목숨을 보장받기 어려운 봉건 시대 일본인들의 슬픈 생존 본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임기에 따라 위정자(爲政者)가 끊임없이 바뀌는 한국의 통치 문화는 할 말 못할 말, 다하고 사는 한국적 기질을 탄생시킨 제도적 무대장치였다는 생각이다. 후임 사또를 겪어 보니 전임 사또가 좋은 사람이었음을 일컫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우리 속담이 일본인들의 입장에선 더더욱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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