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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견문록] 쇼생크 탈출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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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4.07  16: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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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 좀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살인죄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레드(모건 프리먼 분)가 40년 만에 석방돼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된 어느 대형 슈퍼마켓의 계산대. 잠시 한가한 틈을 타, 주변에 서 있던 지배인에게 조용히, 그러나 공손하게 물어본다. 

“그런 건, 내게 묻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발, 가고 싶을 때는 언제든 갔다 오세요.” 당황과 곤혹, 짜증과 경멸이 섞인 지배인의 귓속말. 이후, 시청자들에게 들려오는 모건 프리먼의 독백. ‘감옥에선 화장실을 다녀오려면 반드시 간수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40년을 살아왔다……내가 이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1995년 개봉된 영화, ‘쇼생크 탈출’은 여러 면에서 세간의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스티븐 킹 원작의 베스트 셀러였던 소설이 영화화된 것도 그러했고,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등 쟁쟁한 배우들이 펼친 명연기 또한 그러했으며, 영화 후반부의 극적인 반전 역시 그러하였다. 하지만 필자에게 있어 ‘쇼생크 탈출’은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도쿄 신주쿠 역 출입구에 붙어 있는 금지 표시 목록. 집회·무단 노숙·배회·음주·대규모 성냥 반입 등 모두 10가지의 금지 목록이 지하철 역장과 명의로 나열돼 있다.


나는 이 나라에서는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해, 또 내가 이때까지 받아온 예절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는 환경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나는 나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감각과 감정을 가진, 다른 유성에서 떨어져 온 생물체처럼 느껴졌다. 모든 동작을 얌전하게 하고, 모든 말투를 예의에 맞도록 하기를 요구하는 나의 일본식 예절이, 이 나라(미국)의 환경 속에서—거기에서 나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장님이었지만—나를 극도의 신경과민과 자의식에 빠지게 했다. (「국화와 칼」, 299쪽)

일본과의 전쟁이 한창 중이던 1944년, 미 국방성은 당대의 저명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적국에 관한 심층 연구를 의뢰한다. 서구적 관점에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일본의 광기를 상대로 백전백승(百戰百勝)하기 위한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교전 중인 상황이었기에 현지 실사가 불가능했던 베네딕트는 수많은 자료 및 재미(在美) 일본인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완성시켜 나간다.

대일(對日) 서적 가운데 지금껏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국화와 칼」의 탄생 비화(秘話)다. 그런 책 속에서 베네딕트는 태평양 전쟁 전, 미국으로 유학 갔던 어느 일본 여성의 자서전을 인용하며 미국과 일본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여성의 ‘문화 충격’은 이후, 수동적이고 타율적으로 길들여진 일본인들의 본성을 논하는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단골 문구가 됐다.

지난 800년간 군인들이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움켜쥐어 온 나라. ‘금지’라는 규범과 ‘복종’이라는 도덕률로 열도 안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칼 아래 굴복시켜온 나라. 명령과 지시, 무력과 강압이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순종과 침묵, 타율과 몰개성이 자연스레 하부구조로 뒤따라온 나라. 그런 일본은 ‘쇼생크 탈출’에서 바깥 사회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 모건 프리만이 자살을 기도했던 ‘금지의 왕국’이다.

이런 ‘금지’와 ‘통제’의 상부구조는 일본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군인 정권을 수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막부에 이르러선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막부의 허락 없는 영주들 간의 통혼(通婚)은 불법으로 규정됐거니와, 지방의 모든 영주는 막부 정권의 감시를 위해 격년제로 수도인 에도(東京)에 올라와 근무해야 했다. 물론, 그들의 부인과 아이들은 에도에 항시 볼모로 잡혀 있어야 했고. 해서, 지금은 온천 명승지가 된 에도 막부의 서쪽 관문, 하코네(箱根)에서 행해졌던 가장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볼모들의 탈출 방지였다. 

   
‘도에이 미타’라는 지하철 노선의 ‘가수가’ 역 스크린 도어에 붙어 있는 금지 표시들. ‘스크린 도어에 기대지 말라’는 것에서부터 ‘스크린 도어를 넘어가지 말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7개의 금지·주의 표시가 붙어 있다.


지방 영주와 해당 가족들에 대한 감시가 이럴진대 백성들에 대한 통제는 오죽했을까? 당시 막부의 근간을 이루는 농민들은 사농공상의 분리 원칙에 따라 한평생 농촌에 살아야만 했으며 여행 허가증 없이 여행하다 발각될 경우에는 바로 사형에 처해졌다. 물론, 전답의 매매 역시 불가능했다. 농민들은 또, ‘5인조’ 제도라는 상호 감시 제도를 통해 세금 불납(不納)과 범죄에 관한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 이러한 상호 감시 제도는 메이지 시대에 다시 ‘도나리구미’(隣組)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농민들을 괴롭힌다. 더불어 상인 역시 봉건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 집중 감시와 밀착 통제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상인들은 옷을 입는 것에서부터 우산을 사용하는 종류, 혼례나 장례식에 사용하는 비용 등에서 온갖 제약을 받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실이 단지 과거 속의 비극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장면을 현재로 옮겨와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가는 곳과 보는 것, 앉는 자리와 일 보는 장소가 온통 금지투성이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전철과 공공장소는 금지와 통제의 성지(聖地)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전철역에 들어서면, ‘24시간 금연,’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두 줄 서기 금지’가 승객을 맞이한다.

지하철 승강장에 당도하면, 승강장 스크린 도어에 기대지 말라고 경고하고, 전철 문이 열릴 때면, 손이 문틈에 끼인다고 겁준다. 전철 문이 닫힐 때면 전철 안으로 뛰어들지 말라고 확성기로 다짐하고, 전철 벽과 전철 손잡이에선 전화벨을 진동 모드로 바꾸라는 경고장을 날린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일본어, 영어를 총동원해가며 차내 방송을 통해 끊임없는 통화 드잡이에 나선다. 지나친 경고는 눈치를 불러오고, 눈치는 위축으로 이어지는 법. 공손하지만, 수동적이며 남의 일엔 무관심하기만 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연립 방정식의 ‘정해’(正解)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끔 도를 지나치는 황당 주의도 종종 마주치게 된다. ‘선로 안에 뛰어들지 말라’는 금지 표시는 애교에 가깝고, 자전거를 갖고 탈 때는 반드시 비닐로 잘 포장하고, 애완동물은 동물 전용 가방에 담고 타라는 주의 표시가 그것이다. 물론, 전철 손잡이에 매달려 노는 행위도 금지이며, 쇼핑에서 산 물건을 전철 내에서 꺼내보는 행위도 금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최고봉은 역시, 도쿄 신주쿠(新宿) 전철 역 입구에서 만나는 ‘금지 종합선물세트’다. ‘무허가 판매 금지,’ ‘집회 금지,’ ‘침식 금지,’ ‘배회 금지,’ ‘흡연 금지,’ ‘음주 금지,’ ‘폭발물 반임 금지’ 등 상상하기조차 힘든 카테고리들이 10가지나 열거돼 있는 표지판을 보노라면 그만 넋을 놓게 된다. 

그래서인지, 주변을 온통 시뻘겋게 감싸고 있는 주의 표지판과 금지 표지판은 사람으로 하여금 날개를 펴고 마음껏 행동하게 하기보다 주눅 들고 주변 눈치를 살피게 만드는 마력(魔力)을 발휘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 국민들이 가장 온순하며 질서를 잘 지키는 데는 이러한 금지 및 주의 표시가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남에게 절대로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라온 이들 역시, 일본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 금지’ 표시만 없는 일본의 현실은 더욱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자살 금지 표시가 없어선지, 아니며 여타 금지 표시에 시달려서인지 모르지만, 선진국 가운데 최고의 자살률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국가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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