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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견문록] 일본은 공산국가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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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4.14  13: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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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재산이 없으니 빈부 격차가 없고, 진주나 보석은 어린애들의 장난감으로 쓰인다.”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펴낸 「유토피아」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을 그렸다는 점에서 서양판 무릉도원에 속한다. 당시, 영국 사회는 농경지를 갈아엎고 목초지를 조성해 양을 키우는 ‘인클로저’ 운동이 열병처럼 번지고 있었다. 국제적으로 양털값이 크게 오르자 소작인들로부터 얼마 되지도 않는 소작료를 받느니 차라리 양을 길러 떼돈을 벌자는 움직임이 상류 사회를 강타한 것이다. 결국, 하루아침에 농경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부랑자나 떼도둑으로 전락하고, 영국 왕실이 이들을 폭도로 규정, 무자비하게 사형시켜 버림으로써 사회 민심은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5백 년 뒤의 한국 용산에서도 유사한 비극은 되풀이된다.
  토마스 모어가 꿈꾼 ‘유토피아’ 건설은 그의 후계자인 이상주의자와 혁명가들에 의해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시도돼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수많은 희생만을 남긴 채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한데, 지구상에서, 그것도 인구 1억이 넘는 땅덩어리에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정신을 가장 근접하게 구현하고 있는 국가가 있다면?
  중국보다 더 공산주의적이고 러시아보다 더 사회주의적이라는 면에서 일본은 분명, 공산국가다. 비록, 공산당이 집권한 적은 없지만, 공산당이 집권해도 외형상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래서 더더욱 힘을 받는다. 실제로, 지난 2009년 총선에서 일본 공산당이 내걸었던 최대 공약 가운데 하나가 ‘의료비 무료화’와 ‘아동 수당 2배 인상’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슬로건이었다. (참고로, 필자가 거주했던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의 경우에는 중학생까지의 의료비가 무료였다.)
  ‘경제적 동물’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인간의 욕망을 상품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일본이 자본주의도 아닌 공산주의 국가라니? 이유는 바로 일본 국민들의 삶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지향하는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열도에 사는 일본인들은 모든 면에서 놀라우리만큼 비슷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빈민촌과 ‘타워팰리스’가 한 동네에 공존하며, 3.3m2(한 평)짜리 쪽방에서부터 330m2(100평)이 훌쩍 넘는 고급 빌라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집들이 다양하게 들어선 한국과 달리, 도시-농촌을 막론하고 주택들의 크기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사정은 자동차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개나 소나 모두 몰고 다니는 게 자동차”라지만, 일본에서는 사람조차 쉬이 갖지 못하는 게 자동차다. 좁은 평지에 워낙 밀집돼 살다 보니, 차를 소유할 경우에는 살인적인 주차료를 지불해야만 자신의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까닭에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하더라도 15층짜리 건물에 모두 52세대가 살고 있지만, 아파트에 주차 가능한 자동차 대수는 고작 12대. 한국에서라면 52세대분에 해당하는 52대의 주차장을 마련해도 “차 댈 곳이 모자란다”고 난리가 날 판일 텐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금과 보험료, 휘발유 값 등은 고사하고서라도 주차료로만 월 30만~40만 원(도쿄의 경우)을 각오해야 차를 소유할 수 있다. 물론, 도쿄 인근 지역의 아파트도 금액의 차이는 있을망정, 월 20만 원은 줘야 자동차 주차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요컨대, 자기 땅에 집을 짓고 살지 않는 한, 주차 요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비싼 주차료를 지불해가며 자동차를 갖는다손 치더라도 시내에 몰고 나가보면 차 댈 공간이 전무(全無)하다. 한국처럼 주차시설을 완비한 백화점과 대형 마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전철 역 인근의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려면 못해도 시간당 1만 원은 예상해야 되는지라, 시내에 살면서 자동차를 갖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돈을 물 쓰듯 도로 위에 뿌리겠다”는 생각과 진배없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하루는 자전거와 전철로 시작되고 자전거와 전철로 끝난다. 그러고 보니 자전거와 전철이 일본에선 ‘자전車’와 ‘전車’로 불리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일본을 공산국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제도가 ‘지도칸’(児童館)으로 대표되는 육아 시설이다. 소학교 인근에 반드시 한 개씩 설치돼 있게 마련인 ‘지도칸’은 그야말로 저녁 6시까지 아이들을 무료로 맡길 수 있는 곳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지도칸’이 토요일은 물론, 공휴일과 일요일까지 포함해 1주일 내내 문을 연다는 것. 해서, 소학교 아이들의 경우에는 학교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지도칸’에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실컷 뛰어놀다 부모가 돌아올 시간에 귀가하는 것이 하루 일과다. 맞벌이 부부이기에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는 방과 후의 시간을 건사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던 우리 가족에게 그런 면에서 일본은 분명, ‘유토피아’다.
  대단히 잘 정비된 의료시스템 역시, 일본을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로 인식시키는 제도 장치다. 한국의 의료 보험과 단순히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필자가 일본에 거주하던 당시, 일본의 암 연구센터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던 어느 지인(知人)은 “한국에선 할인을 받고서도 40만 원 가까이 지불했는데, 일본에선 똑같은 검사에 3만 원을 냈다”고 놀라워했다. 실제로 웬만한 초음파 검사나 CT 촬영은 3~4만 원 선에서 마무리되며, 치과 치료는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곳이 열도다. 한국 학부모들이 귀국 전, 아이들의 치과 치료를 몽땅 마치고 들어간다는 구전(口傳)은 일본에서 전혀 낯설지가 않다. 이 같은 의료시스템 덕분에, 몇 해 전 신종 조류 독감이 열도에서 기승을 부렸을 때 필자의 아이들은 무료로 예방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한국에서는 검사비용과 진찰비 등으로만 최대 30만 원까지 부모들이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인간 빈곤지수’라는 지표 역시, 공산주의 일본을 수치로 잘 나타내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이용하는 평가 수치로 해당 국가의 빈부격차를 가름하는 ‘인간 빈곤지수’에서 일본은 지난 2002년, 200개국 가운데 9위를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1위부터 8위까지가 모두 독일,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이고, 이들 가운데 인구가 1억을 넘는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극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이뤄낸 성과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대부분 20평 안팎의 월세 집에 살며, ‘자전車’와 ‘전車’로 출퇴근하고, 육아 및 아동 의료비에서 별다른 부담을 지니지 않다 보니, 생활 수준과 하루 일상이 비슷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더욱이 생활보호 대상자는 물론, 노인에 대한 복지도 부러울 정도로 잘 돼 있어 외양만 자본주의이지, 알맹이는 공산주의 국가가 일본이다. 이러한 일본을 잘 표현한 슬로건이 다름 아닌 ‘1억 총중류’ 1억 국민들이 모두 중류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1970년대의 슬로건은 이후, 일본과 일본인의 자긍심을 미쁘게 드러내는 대명사가 됐다.
  그런 면에서 볼 때, 1990년대 들어 ‘1억 총중류’의 신화를 무너뜨리며 국민들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승자’와 ‘패자’로 냉혹하게 갈라버린 고이즈미(小泉) 전 총리(自民黨)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공산주의 일본을 자본주의 일본으로 일거에 바꿔버린 폭거(暴擧) 중의 폭거(暴擧)였다. 이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2009년 총선을 통해 55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룩함으로써 신자유주의 반란을 진압시켰고, 일본은 여전히 공산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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