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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본견문록] “유전대학 무전가업”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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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2  09: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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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그게 정말입니까? 게이오(慶応) 대학교나 와세다(早稲田) 대학교 부설 유치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결국 게이오 대학교나 와세다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선배: “그렇다네. 게이오나 와세대 대학 부설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면 이변이 없는 한 게이오나 와세대 소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역시 성적이 미달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같은 계열의 부설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다네.”

필자: “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난리가 날 텐데요.”

선배: “물론 그렇지. 하지만 명문 사립 교육 기관은 학비 부담이 만만치 않아서 결국 있는 집에서만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 실제로, 이들 유치원의 입원(入園) 경쟁률은 10대 1 안팎이거든.”

믿을 수 없었다. 일본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게이오 대학으로의 방문을 주선해준 선배 교수로부터 일본에 관한 여러 정보를 듣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의 수업에는 그렇게 유치원과 소학교에서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게이오 대학교까지 도착(?)한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고 했다. 물론, 선배는 그들 대부분이 가르칠 만한 재목은 되지 못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일본 교육이 전해준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웃에 위치해 있지만 정치에서부터 종교는 물론, 교육에 이르기까지 마치 우리의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는 듯한 나라. 그런 일본은 교육에 있어서도 우리만큼이나 개성적인 붓질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는 독특한 국가다.

사실, ‘풀 세트’로 불리는 일본 명문 사립대의 에스컬레이터식 진학 시스템은 열도에만 존재하는 특허품이다. 부모가 능력이 있어 자녀의 학비를 감당할 수 있다면 명문 사립대의 부설 유치원 앞에 줄 서는 것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사고방식은 그래서 더더욱 힘을 받는다. 물론, 이 같은 제도가 가능한 이유는 아직껏 홋카이도(北海島)에서부터 오키나와(沖縄)에 이르기까지 열도 전체를 깊숙이 감싸고 있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적 사고방식 때문. 수천 년 동안 가진 자가 고등 교육을 독점해 온 폐해가 아직껏 이 나라에선 ‘현재 진행형’의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필자가 두 아이를 보낸 도쿄(東京)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 지역의 공립 소학교는 어떤 과외 열기도 느낄 수 없는 사교육의 무풍지대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필자가 거주했던 지역은 도쿄에서 가장 번화한 신주쿠(新宿)로 소학교들이 대거 몰려 있는 지역이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상이 필자가 거주하던 지역에만 국한돼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교육을 시키려 해도 학원 강사의 인건비와 학원의 건물 임대료가 워낙 비싼 일본이기에 사교육비 자체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까닭에서다. 예를 들어, 피아노의 경우 한 번에 45분씩 한 달에 네 번 레슨을 받는 데 지불해야 하는 학원비는 2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초등학교 3학년인 필자의 딸이 일주일 내내 피아노 레슨을 받아도 필자가 지불해야 하는 강습료는 월 9만 원에 불과했다. 해서, 일본에 거주하는 1년 동안 두 초등학교 아이들을 한국처럼 몇 군데 학원에 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이미 도쿄에 체재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월세가 3백만 원 가까이 드는 현실에서 열도의 버거운 생활비에 다시 사교육비를 얹는다는 것은 필자의 봉급만으로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을 ‘지도칸’(児童館)이라 불리는 방과 후 교실에 보내거나 공원, 수영장 등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모가 능력 없는 무산 계급이라면 자녀에게 “대학을 가지 말고 가업을 이으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국가 또한, 일본이다. 어차피, 복지시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우니 밥 굶을 염려는 없고, 그렇다면 괜히 대학에 가서 헛돈 쓰느니 차라리 확실한 돈벌이를 택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아들이 가업을 잇는 것이 밥을 먹듯 일상적인 일본에선 결과적으로 3대, 4대, 5대에 걸쳐 전승되고 발전된 가업 기술들이 해당 분야에서 극강(極强)의 경쟁력을 발휘하는 아이러니를 낳게 된다. 따져 보면, ‘가쿠슈인’(學習院)이라는 귀족 학교가 아직껏 버젓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한국과의 동떨어진 열도의 교육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슈큐인’이란 에도(江戶) 시대 말기인 1847년, 귀족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으로 교토(京都)에 세워졌다가 메이지(明治)유신 직후인 1884년 도쿄로 옮겨진 왕실 직속 관립학교다. 1926년부터 ‘왕족 취학령’이 공포돼 왕족은 원칙적으로 ‘가쿠슈인’에서 공부하도록 규정됐으며 2차 세계 대전 때까지는 모든 왕족이 예외 없이 ‘가쿠슈인’에 다녔다. 지금은 왕족들과 더불어 일본 지도층 및 상류 사회의 명사 자녀들이 주로 다니고 있고.
  하지만 유전대학 무전가업의 일본 교육에서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질 높은 공교육과 이를 위한 국가의 아낌없는 투자라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 공립 소학교는 어디든지 수영장과 함께 완벽에 가까운 음악 시설을 갖추고 있어, 학생들이 수영과 더불어 악기 한 개씩은 다룰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다목적 실내 체육관을 비롯해 조리실습실과 도서실 등 교육 유관 시설들은 부러울 정도로 훌륭하게 갖춰놓고 있는 곳이 일본이었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공립 소학교에서부터 공립 중학교를 거쳐, 공립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공립으로만 학교에 다녀도 그다지 불만스러울 것이 없다는 게 일본 주부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이렇게 공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는 대부분 학생은 ‘한 사람의 몫’을 의미하는 ‘이치닌 마에’(一人前)를 성실히 수행하게 되면서 비로소 진짜 일본인으로 대접받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몫을 성실히 수행해 진짜 일본인으로 대접받는다는 말은 뒤집어 말해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경우, 제대로 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취업에서 실패하고 주변에 폐만 끼치는 이들은 결국,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다 못해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라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방 안에 틀어박혀 한 가지에만 집착하는 ‘오타쿠’(オタク)로 전락하기에 십상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청소년들이 귀가 따갑도록 듣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회에 보탬이 되라’는 의미의 ‘야쿠니 타츠’(やくに たつ)라는 말이다. ‘야쿠’가 역할을 의미하는 한자어 ‘역’(役)의 일본식 발음이며, 설 ‘립’(立)을 의미하는 단어가 ‘타츠’라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이 표현은 결국 ‘역할을 세우라’는 뜻으로 결코 무의미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을 뜻하는 셈이다. 그리해 사회 초년병들에게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반드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당부이며 사회 초년병들이 주변에 밝히는 일성(一聲) 역시, 언제나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꾼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 속의 부품으로, 맡은바 자기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역할을 한정 지우는 일본 교육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직장을 통한 자아실현보다 회사와 사회만 강조하는 자사(自社)실현으로 몰고 가는 부작용을 양산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쟁을 통해 상대방을 제치라고 가르치는 한국 교육이나 반드시 주변에 발맞춰 함께 걸어갈 것을 강조하는 일본 교육은 한번 뒤처진 낙오자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대안(代案)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사진 설명 1
45분짜리 피아노 레슨을 주 1회씩 월 4회 받을 경우, 레슨비가 1만6300엔이라는 어느 학원의 인터넷 광고. 환율을 100엔 당 1400원 정도로 환산해 보면 23만 원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45분짜리 레슨을 주 2회 받을 경우, 한 달 교육비는 무려 44만 원에 이른다. (이미지 출처: 야후 재팬)



사진 설명 2
한국의 웬만한 음대보다 더 좋은 악기들을 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 일본 소학교다. 사진은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 지역의 한 소학교 음악실에 구비된 악기들. 드럼 세트에서부터 ‘튜뷸러 벨’이라 불리는 타악기와 전자 피아노 등이 눈에 띈다. (저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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